[시간들] 심수봉이 17살 김다현에게서 놓친 것들

기고 / 김백 기자 / 2026-09-29 08:34:58

가수 심수봉(71)이 후배 김다현(17)에게 던진 직설이 추석 연휴 가요계를 달궜다. 최근 진안군 트로트 페스티벌 무대에서 심수봉은 앞서 노래한 김다현을 두고 "젊은 아가씨가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다"고 혹평했다. "인생 경험도 해보고 고생도 해봐야 찾아온 분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지론도 덧붙였다.

 

심수봉, 김다현에 "젊은 아가씨가 노래가 뭔지 알아"

[출처: 홈페이지]

심수봉의 말마따나 산전수전을 다 겪어야만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 트로트 역사는 첫 장부터 다시 써야 한다.

문주란(77)이 이 질문에 답을 준다. 문주란은 김다현과 같은 열일곱 나이에 불멸의 히트곡 「동숙의 노래」를 불렀다. 노래엔 검정고시 학원 선생에게 헌신하다 약혼남인 사실을 알고 그를 흉기로 찌른 소녀공의 사연이 담겼다. 여공의 한을 문주란은 특유의 깊은 중저음으로 담아냈다. 물론, 그 나이에 배신과 치정의 고통을 몸소 겪어서가 아니었다.

심수봉과 동갑인 하춘화(71) 역시 열여섯에 「물새 한 마리」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듬해 「잘했군 잘했군」과 「영암 아리랑」을 잇달아 터뜨리며 국민 가수가 됐다. 이미자(85)도 열여덟에 「열아홉 순정」을 부르며 '엘레지의 여왕'으로 가는 서막을 열었다.

그 시절 그 소녀들에게 무슨 대단한 인생 경험이 있었겠는가. 전쟁의 상흔과 지독한 궁핍 속에서 일찍 철이 들었을지는 몰라도 삶의 굴곡을 겪어내고서 한(恨)을 목소리로 토해냈을 리는 없다. 예술적 재능과 천부적 감수성, 곡에 대한 몰입이 이른바 경험이란 것의 빈자리를 채웠을 뿐이다.

'동숙의 노래'로 스타덤에 오른 17세의 문주란

[자료사진]

주현미(65)처럼 굴곡진 삶 대신 엘리트 코스를 거쳐 정상에 오른 사례도 많다. 대만계 한의사 가정에서 태어난 주현미는 외국인 전형으로 중앙대 약대에 들어간 금수저 출신이다. 졸업 후 약국을 운영하던 그는 스물넷에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로 트로트 2세대의 대표주자가 됐다. 당시 언론이 주현미의 보컬을 설명하던 수식어는 이전 1세대의 '한(恨)'이 아니라 여유와 세련미였다.

심수봉의 설화(舌禍)는 1979년 10월 26일 청와대 궁정동 안가에서 시작된 긴 세월 모진 풍파를 재기발랄한 손녀뻘 후배의 앳된 얼굴 위에 투영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해도, 자신의 고통을 타인의 예술을 재단하는 잣대로 삼을 수는 없는 법이다.

심수봉은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그때 그 사람」을 불렀다. 그때 스물세 살의 심수봉에게 누군가 선배라는 이유로 "인생도 모르는 대학생 주제에 무슨 노래냐"고 따져 물었다면 무엇이라 답했을까.

미국의 맹인 가수 스티비 원더(76)가 13세 때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으며 세상을 뒤흔들었듯, 예술의 깊이는 경험과 비례하지 않는다. 무대 위 가수의 힘은 나이의 무게가 아니라 객석으로 전달되는 울림의 크기로 증명된다. 일흔하나든 열일곱이든, 대중 앞에서 마이크를 쥔 순간 가수는 그저 가수일 뿐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13세 때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른 스티비 원더

[자료사진]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백 / 편집국장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