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역사소설-안 휘] 동해영웅 이사부 -<10>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0-07-10 20:19:56
<독도수호 예술문화 프로젝트-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전쟁사>

마당 넷. 잠입(潛入) / 4.1 밀행

[장편 역사소설-안 휘] 동해영웅 이사부 -<10> 그림 : 문악보 화백

 

전쟁의 승패를 점치기 위해서 헤아려보아야 할 요소들을 놓고 이사부는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 땅 넓이를 보고 비교하는 도()에서나, 두 나라의 물질적 크기를 달아보는 양(), 그리고 병력이나 동원 가능한 인력의 여유를 헤아리는 수()의 비교에 이르기까지 우산국은 결코 신라국과 견주어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총체적 실력을 비교하는 칭()에 이르면 결코 승리를 무조건 장담해서는 안 되는 형국임이 분명했다.

 

신라는 우선 우산국의 장수를 모르고 지리조건과 병사, 그리고 전략전술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1차 출병에서 실패한 것은 도량수에서의 우위를 과신하고 칭을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아무리 궁리해보아도, 우산국에 대한 정보부족이라는 가장 큰 약점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승전을 장담하기가 어려우리라는 것이 이사부의 결론이었다.

 

*

산과 바다에 봄빛이 완연한 이월의 어느 날이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이사부는 시종장 명진을 침소로 은밀히 불렀다. 긴 겨울 동안 밤낮으로 조선장과 연무장을 오가면서 우산국을 공략할 비책을 궁구하는 일로 소일한 이사부의 얼굴이, 봄볕을 안고 달려드는 해풍에 많이 그을려 있었다.

 

명진은 군주의 갑작스런 부름에 긴장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앉아 하명을 기다렸다. 이사부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너를 따로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작전이 있어서다.”

 

이사부가 목소리를 한껏 낮춘 것과 동시에 명진의 눈이 토끼눈처럼 동그랗게 열렸다.

 

중요한 작전이라 하오시면…….”

 

너와 나 단둘이서 장사꾼을 가장하여 배를 탄다.”

 

명진은 불에 댄 듯이 놀란 눈을 뜨악하니 올려 뜨고 껌벅거렸다.

 

어디를……가고자 하십니까요?”

 

이사부가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말했다.

 

우산국이다.”

 

에에? ……우산국이라 하셨습니까?”

명진은 놀라움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목소리를 낮춰라.”

 

, ? .”

 

배를 준비하고 대기하라. 지난번에 사개 준모를 싣고 울릉도를 다녀 온 사공을 중심으로 배꾼들을 꾸려라. 물론 그들에게도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목적지가 우산국이라는 언질을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우리의 행선지가 알려지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목숨 또한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너와 나 단둘이서만 알아야 할 극비사항이니 절대로 함구해야 한다. 알겠느냐?”

 

, . 명심하겠습니다요.”

 

명진은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며 다짐을 했다. 극에 달한 긴장으로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명진이 물러간 다음 이사부는 아장 직삼을 처소로 불렀다.

 

내가 명진과 함께 은밀히 다녀올 곳이 있어 한동안 주청을 비울 것이다. 그러니 직삼 그대가 그 동안 주청의 모든 임무를 통할하라.”

 

어디를 다녀오시옵니까?”

 

아무것도 묻지 말라. 또 함부로 나의 출타를 언급하지 않도록 단속하라. 내가 없는 동안 전선제작과 군사훈련에 일체 차질이 없도록 하라.”

 

신명을 다 바치겠나이다.”

 

그리고…….”

 

이사부가 말을 잠시 끊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직삼이 긴장한 눈빛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금으로서는 나의 출타 기간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다. 다만, 보름이 넘도록 나와 명진이 돌아오지 못하거든 서라벌에 나의 유고를 전하고 대안을 찾도록 도모하라.”

 

도대체 어디를 가시옵기에?”

 

알려고 하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이사부가 목소리를 높이며 직삼의 입을 막았다. 직삼이 무르춤하여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명 받잡겠나이다.”

 

영문을 알 턱이 없는 직삼은 군주의 뜻을 다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주청을 나갔다.

 

이제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되겠구나……. 이사부는 심호흡을 했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

울릉도가 저만큼 보이도록 바다가 내내 조용한 것은 천행이었다.

 

이사부와 명진은 건삼(乾蔘)과 연지, , 머릿기름, 거울, , 비녀, 은수저등 인삼과 귀금속품을 비롯한 방물 따위가 가득 담긴 대나무 궤짝 등짐을 하나씩 꾸렸다. 그리고는 사개 준모를 싣고 울릉도를 다녀온 적이 있는 사공이 부리는 큼지막한 고깃배를 타고 한밤중에 동해로 나섰다. 포구를 출발한 이후 비로소 행선지가 울릉도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배꾼들은 깜짝 놀라서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사공을 돕는 두 명의 배꾼들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인 그들 일행은 만 이틀이 지난 날 해 저물 무렵 울릉도 먼바다에 이르렀다. 멀리서 바라보는 울릉도는 여전히 깎아지른 바위가 병풍처럼 막아선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이사부는 사공과 배꾼들을 가까이 불렀다. 그들은 눈을 껌벅거리며 명을 기다렸다.

 

속도를 조절하여, 어둠이 완전히 내린 다음 섬으로 접근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와 명진을 내려놓는 즉시 너희들은 하슬라로 돌아가라.”

 

사공과 배꾼들이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알겠나이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

 

너희들은 이번에 나와 명진이 울릉도에 잠입한 일을 함구하라.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만약, 내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하슬라에 이 사실이 알려져 있다면 너희들 모두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알겠느냐!”

 

!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사공과 배꾼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이 각자 제자리로 돌아간 다음 명진이 이사부에게 다가와 말했다.

 

군주님. 그동안 배가 많이 흔들렸사온데, 괜찮으셨습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타고 온 배는 제아무리 크다 해도 전선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규모의 어선이었기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파도에 여러 차례 뒤집힐 듯 춤을 추며 위기를 맞았었다. 멀미가 심하게 났지만 참아야 했다.

 

견딜만하다.”

 

섬의 어느 쪽으로 접안하는 것이 좋겠습니까요?”

 

아무래도 주성(主城)이 있는 남방 골계 쪽은 경계가 심할 터이니 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배회가 너무 길면 그 또한 의심을 사기 십상이니 적당할 때 배를 대어야 한다. 지세가 험한 곳일수록 경계가 허술할 게다. 그러니 가장 가까우면서도 지형이 완만치 않은 곳을 찾아야 한다. 접안이 쉽지 않겠으나, 요령껏 다가가면 작은 배 한 척쯤 댈 공간은 있지 않겠느냐.”

 

알겠나이다.”

 

명진이 사공과 함께 섬 쪽을 바라보며 한참을 쑥덕거렸다. 이사부는 멀리 바다 위에 둥실 떠 있는 울릉도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저기 저 섬 어디엔가 산단화 낭자가 잡혀 있을 터인데……. 그녀를 찾아서 데리고 나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나 지금껏 무사하기나 한 것일까. 아니, 살아서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볼 기회라도 있을 것인가…….

 

*

밤이 깊어 어둠이 짙게 깔린 다음, 이사부와 명진을 실은 배는 거친 파도에 흔들리며 힘겹게 섬을 향해 나아갔다. 내처 달려오던 바다 쪽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니 섬의 서북지역 어디쯤이 될 것이라 짐작하고, 시커먼 절벽을 향해 배를 움직였다. 예상대로 배를 해안에 붙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파도와의 실랑이 끝에 당도한 곳은 암벽 아래 그리 넓지 않게 펼쳐진 작은 몽돌해변이었다. 봉물등짐을 각각 짊어진 이사부와 명진은 배가 자갈밭에 닿자마자 펄쩍 뛰어내렸다.

 

애썼다. 가능한 빨리 섬을 빠져나가서 하슬라로 돌아가라.”

 

이사부가 사공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군주님! 부디 무사하시옵소서.”

 

그래. 내 걱정은 말고 무탈하게 잘 건너가라.”

 

알겠사옵니다.”

 

이사부와 명진은 재빠른 동작으로 자갈 해변을 사뿐사뿐 걸어서 암벽 사이로 난 작은 계곡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달그락달그락 발밑에 닿는 몽돌 자갈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계곡을 들어서면서, 그들은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른편 산등성이 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른 봄 부지런히 수분을 길어 올리고 있는 초목들이 향긋한 풀냄새를 풍겼다.

 

한참을 그렇게 재빠르게 기어오르던 그들은 숨을 돌릴 겸 잠시 뒤를 돌아다보았다. 별빛 아래, 해안을 저 만큼 빠져나가고 있는 사공의 배가 어슴푸레 보였다.

 

군주님. 일단 섬에는 무사히 들어온 것 같습니다요.”

 

명진아!”

 

. 군주님!”

 

지금부터는 나를 군주라고 부르면 안 된다.”

 

?”

 

명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섬을 다시 나갈 때까지는 나를 전주(廛主)라고 불러야 한다.”

 

하오나, 어찌 제가 감히…….”

 

이 섬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느니라. 지금부터 우리는 하슬라 저잣거리 시전(市廛)에서 유람 삼아 장사하러 건너온 부상(負商, 등짐장수)들일 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박이종(朴伊宗)이라는 이름을 쓴다. 알겠느냐?”

 

.”

 

명진은 영리한 사람이라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다, 이사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갈 길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능선을 타고 봉우리 쪽으로 올랐다. 칠흑 어둠 속이라 방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봉우리에 오른 이사부는 우선 내공을 써서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사방 가까운 곳 어디에도 인마의 기미는 없었다. 시린 밤바람이 날카로운 냉기를 품고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저기가 좋겠다. 저곳에서 이 밤을 넘겨야겠구나.”

 

바위 옆 오묵하게 패인 지형에 이르자 이사부는 명진에게 야숙(野宿)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명진은 등짐을 내려놓고 바닥을 살펴 돌들을 추려냈다. 익숙한 동작으로 주변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고 검불을 뜯어다가 바위 안쪽에다가 쌓았다. 그리고는 봇짐 속에서 꺼낸 부싯돌을 때려 모닥불을 피웠다.

바위를 끼고 우멍하게 생긴 그곳은 두 사람이 불을 피우고 앉아 시린 밤을 견디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조그만 화톳불이 잉걸불로 타오르다가 숯불로 잦아들면서 온몸에 따스한 온기를 깊숙하게 전해왔다. 고깃배를 타고 만 이틀 밤낮을 흔들려 온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지독한 졸음이 몰려왔다. 이사부는 귀를 반쯤 열어놓은 채로 선잠에 들었다.

 

*

이른 새벽. 바다 쪽에서 불어 온 칼바람에 발이 시려서 일어난 이사부는 온기가 사그라진 모닥불을 뒤적거려 불씨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명진이 주어다 놓은 나뭇가지를 한 움큼 집어넣어 불을 살렸다. 나뭇가지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타올라 다시 따뜻한 기운을 사방에 퍼뜨렸다. 영롱한 별들이 수를 놓고 있는 하늘이 찬연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여명의 바다는 온통 다양한 푸른빛으로 물들어 신비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울릉도 앞 바다의 새벽은 아름다웠다. 보이는 곳이 서쪽 바다인 까닭에 화려한 일출은 아니었으나, 희부옇게 밝아오는 하늘빛을 담아내는 바다의 변모는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바깥에서 보면 거대한 철옹성처럼 그렇게도 무뎌 보이던 섬이었건만, 막상 그 안 산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황홀하기만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한다.”

 

새우처럼 몸을 모로 뉘어 구부린 자세로 자고 있는 명진을 조용한 목소리로 깨웠다. 따스한 열기를 전해오는 모닥불에 취한 듯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명진은 도무지 잠 속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명진아!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

 

이사부는 좀 더 큰 목소리로 자는 사람을 깨웠다. 그 제서야 명진은 구부렸던 몸을 쭉 펴 부르르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그러다가 모닥불을 살려 놓고 앉아 있는 이사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면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군주님! 언제 일어나셨습니까요?”

 

어허이 사람. 군주님이라니?”

 

아차차. 죄송합니다요. 전주님이라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나옵니다요.”

 

그렇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실수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예.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요.”

 

명진이 대나무로 짠 등짐궤짝의 덮개를 열어 멧돼지 육포와 대추를 꺼내는 동안 이사부는 주변에서 솔잎을 뜯어왔다. 두 사람은 솔잎과 대추와 육포로 요기를 했다.

 

군주아니, 전주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요?”

이사부는 고개를 돌려 섬 한 가운데에 있는 산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성인봉이라고 했지……. 섬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 거기가 가장 높은 산봉우리 맞습니다요.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성인봉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요.”

 

저 봉우리부터 올라 보자. 거기에 가면 아마도 섬 전체가 한 눈에 가늠될 것이다.”

 

. 알겠습니다요.”

 

이사부와 명진은 아직 불기운이 남아있는 모닥불을 흙으로 덮어 끄고는 등짐을 다시 짊어지고 그 자리를 떴다. 날은 이미 밝았고, 하늘은 맑았다.

 

*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하고 가팔랐다. 구릉은 깎아지른 절벽이나 마찬가지였다. 묵직한 등짐까지 짊어졌으니 발은 돌덩어리가 매달린 듯 무거웠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잡목들이 가로세로 뒤엉킨 숲과 바위틈으로 새 길을 만들어가며 반나절 가까이를 기어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리쉼을 하기 위해서 잠깐씩 쉬는 동안 내려다보이는 사방의 절경과 신비한 바다가 고단함을 잠시 잊게 했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울릉도는 이름처럼 빽빽한 구릉과 깊은 계곡 투성이였다. 산정을 중심으로 마치 사방으로 주름을 잡아놓은 것처럼 등성이들이 뻗어있는 지형은 어디 한 뼘이라도 평평한 땅이 있으랴 싶을 만큼 험준해 보였다.

 

이사부는 울릉도의 지세를 짯짯이 살펴보면서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높은 파도가 몰아치는 거친 물길을 용케 넘어온다고 해도 난관은 여전히 남게 되는 형국이었다. 커다란 전선을 붙일 곳이 없어 보이는 암벽 사이에 어찌어찌하여 배를 댄다고 해도 문제는 결코 간단치가 않게 느껴졌다.

 

만일 적병들이 구릉이나 계곡을 타고 올라 골골이 박혀 저항한다면 더더욱 난공불락일 것이었다. 그야말로 섬 곳곳이 겹겹 천연장벽이요 요새인 셈이었다. 이사부는 은근히 근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천연요새를 정복할 묘책은 과연 있을 것인가. 이런 섬에 묻혀 사는 이들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으랴…….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은 산을 어슷하게 가로질러오르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뎠다. 발끝에 걸리는 자갈돌이 자꾸만 구르는 소리를 내며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적잖이 성가셨다. 산을 오르거나 산에 있던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발소리를 듣게 된다면 결코 좋을 일이 없을 것이었다.

 

성인봉 정상이 저만큼 보이기 시작했을 즈음, 산의 형세를 찬찬히 살펴보던 이사부는 크게 놀랐다. 눈앞에 보이는 높다란 봉우리는 명장(名將)을 품고 있는 희귀한 지리를 띠고 있었다. 저런 지세라면 틀림없이 이 섬에서 어마어마한 장수가 태어날 터인데……. 그렇다면 우해라는 자가 저 성인봉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바로 그 장수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지금껏 짐작해온 것보다도 훨씬 더 범상치 않은 인물일 수도 있으리라…….

 

더러 미끄러져 가면서 손까지 동원하여 어렵사리 산을 기어오르던 이사부의 귀에 두런거리는 남자들의 말소리가 아득하게 잡혔다. 소리가 나는 곳은 성인봉 정상 부근이었다.

 

잠깐! 멈추어라!”

 

이사부가 낮지만 단호한 어조로 명진의 발걸음을 잡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명진이 의아한 눈빛으로 이사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이사부는 남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정상 부근 언덕 위를 향에 기를 쏘았다. 열 명은 족히 될 법한 장정들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발소리를 내지 말고 천천히 나를 따르라.”

 

이사부는 명진에게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이르고는 조심조심 정상을 향하여 비스듬하게 앞장서서 나아갔다.

 

드디어 정상이 저만큼 모습을 나타낼 즈음, 사람들의 말소리는 더욱 또렷이 들려왔다. 그런데, 귀를 열고 끌어당겨 들어본 말소리는 쉬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반도의 언어가 아니었다. 좀 더 집중하여 들어보니 그 소리는 섬나라 왜국의 말이 분명했다. 그들은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곡괭이 소리도 나고 삽질 소리도 섞여 들렸다. 왜인들이 무슨 일로 이른 아침에 울릉도 성인봉에 올랐을까. 그들은 또 저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이사부가 성인봉 정상 가까운 곳에서 곡괭이와 삽으로 커다란 바위 하나를 파내고 있는 왜인 무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난 다음이었다. 숲속에 몸을 숨기고 올려다본 그들은 무엇엔가 쫓기는 듯이 바쁜 손길로 집채만큼 큰 바위의 아래쪽을 파고 있었다. 아마도 그 바위를 뽑아서 절벽 아래로 굴려 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미 작업을 한 지 오래 되었던지, 바위는 금방이라도 뽑혀 굴러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어깨가 떡 벌어져 평범치 않은 완강한 몸피를 지닌 남자 하나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저들은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것일까. 이사부는 왜인들의 행동을 찬찬히 살피며, 모습이 좀 더 잘 보이도록 자리를 위쪽으로 옮겼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더 흘렀을 무렵, 그들이 파내던 바위가 기우뚱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큰 바위는 아래쪽으로 서서히 넘어졌다. 바위의 밑둥치가 뽑혀 휘청하고 넘어지는 순간 이사부의 귀에는 무시무시한 비명이 들렸다. 바위는 거짓말처럼 아래로 쿨렁 굴러떨어져 내렸다.

 

산이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가 뽑힌 그 자리에서 용암처럼 솟구쳐 오르는 검붉은 피가 보였다. 선혈은 이내 폭포가 되어 계곡을 타고 아래로 콸콸 흘러내렸다.

 

! 저건?”

 

산세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던 이사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바위는 성인봉의 지혈을 장악하고 있는 대동맥의 혈 자리, 기맥의 급소였다. 그 바위자리에서 솟구쳐 오른 검붉은 정기는 아래로 콸콸 흘러내리면서 산의 영험을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었다.

 

이사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일순 화석처럼 굳어졌다. 명진은 그런 이사부의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군주께서는 대체 무엇을 보고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저리 망연자실한 것일까……명진은 그저 이상스러울 따름이었다.

 

바위를 계곡 아래로 굴려 내리는데 성공한 왜인들이 뭐라고 한바탕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자, 그들의 수장인 듯해 보이던 사내가 그들의 환성을 단호한 음성으로 막았다. 민나 시즈까다까라(모두 조용하라!)……. 사내의 윽박지름에 그들은 모두 소리를 뚝 그쳤다.

 

이사부의 뇌리에 새로운 깨달음이 스쳐 흘렀다. 저 왜인들은 울릉도의 정기를 끊으러 온 자들이로구나. 성인봉의 혈맥을 끊어 지세를 흐트러뜨리려는 것이로구나. 더 이상 이 땅에서 인재가 나지 못하도록 할 흉계를 품고 찾아 온 자들이 틀림없으리라.

 

저런, 쳐 죽일 놈들!”

 

이사부의 입에서 분노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당장은 우산국이 비록 적국이긴 하지만 반도의 땅이 분명할진대, 저놈들이 가당치 않은 흑심을 품었구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사부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전주님! 왜 그러십니까요? 저치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며 왜 저런 요상한 짓거리를 한답니까요?”

 

저들은 왜인들이다. 놈들은 방금 울릉도 대동맥의 정기를 끊어버렸다.”

 

? 대동맥 정기라고 하셨습니까요?”

 

명진으로서는 이사부의 말을 다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설명해도 다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저 바다를 건너온 왜놈들이 울릉도 땅의 기운을 영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이니라.”

 

울릉도의 기운을 못 쓰게 만들었다 하셨습니까요? 그런데 저 왜놈들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합니까요?”

 

이사부는 한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의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저들은 지금 울릉도를 침탈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들을 당장 쳐서 요절을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대업을 생각하면 그렇게 감정적으로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인 무리는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하염없이 수군거리고 킬킬거리면서 바위가 뽑혀 굴러떨어진 자리 근처를 번갈아 바장거렸다. 이사부와 명진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한동안 돌처럼 머물러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그들은 장비를 챙겨들고 성인봉 저 쪽 반대편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한바탕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병사들처럼 성취감에 도취된 듯 가뿐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후편에 계속>

 

안 휘 소설가

 

[작가 소개]

 

안 휘 소설가

문학21 신인상 수상(소설)/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저서-장편소설] ‘동해영웅 이사부’, ‘이인좌의 봄’, ‘애숙의 나라’ [소설집] ‘광어와 도다리’, ‘치와와 실종되다’ [연재소설] 경기신문 강남 여우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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