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이낙연’의 재발견

안재휘의 시시비비 / 안재휘 기자 / 2025-04-27 20:45:11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아니, 그의 용감한 행동을 만나고 싶다.
이낙연의 ‘개헌연대 국민대회’ 연설, 일파만파 파장 일으켜
모처럼 들어보는 상식과 품격, 덕성을 갖춘 정치연설이었다는 감상평
‘노련한 어부는 안개를 무서워한다’는 말, 나라 현실 정확히 표현
“똑같은 죄,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다르면 그건 이미 사법부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위기 극복, 정치 개혁, 사회 통합 위해 다 내놓겠다”

 

 

첫째는 위기 극복, 둘째는 정치 개혁, 셋째는 사회 통합입니다. 이 일은 어느 한 세력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민 여러분과 정치권에 호소드립니다. 이 세 가지 국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모읍시다. 위기 극복과 정치 개혁, 사회 통합에 뜻을 하는 세력이라면 그 누구와도 협력하겠습니다.”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개헌연대 국민대회에서 한 연설이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고문의 연설을 듣는 순간 전율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참으로 모처럼 들어보는 상식과 품격, 덕성을 갖춘 정치연설이었다는 감상평도 나온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정상적인 정치연설을 듣는 일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는 소감도 나온다.

 

우리는 정말 오랫동안 비열한 모함과 욕설에 가까운 비난과 왜곡된 요설에 중독돼 살아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악다구니 속에서 건강한 토론은 사라지고 입씨름만 난무하는 게 현실이다. 정치가 통합을 일궈내기는커녕 하고한 날 갈등만 증폭시키는 살풍경 속에 우리 국민은 동서남북 좌우 상하로 갈가리 찢긴 채 살고 있다.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 탓은 자취를 감추고 삿대질만 증폭되고 있다.

 

이낙연의 말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야 할 일을 명쾌히 진단한 논리에 공감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 언론계에서는 이 나라 최고의 엘리트 기자였고, 정치권에서는 다선 국회의원에 도지사, 국무총리를 거친 베테랑 정객이었다.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이라는 변수 앞에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지위를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이 나라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개헌연대 국민대회에서 한 이낙연의 연설은 구절구절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나라에 대한 그의 진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그의 다짐 또한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참마음이 읽혀진다.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온 국민이 해방 이후 80년 동안 피땀 흘려 이룬 대한민국이 지금 길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습니다. 위기 극복과 정치 개혁, 사회 통합에 뜻을 하는 세력이라면 그 누구와도 협력하겠습니다. 초보 어부는 파도를 두려워하지만, 노련한 어부는 안개를 무서워한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잠재적 경쟁자가 점수 따서 자기들 대선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그런 겁니까? 그런 못난 정치 끝내주세요.

 

이낙연은 연설 초반부터 이재명 전 대표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맹폭했다. ‘노련한 어부는 안개를 무서워한다는 말로 작금 국가가 처한 백척간두의 위기 현실을 지적했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거대 야당이 1극체제라는 이름으로 1인 지배체제에 빠지고, 3권 분립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지, 그의 개탄은 깊은 공감을 부른다.

 

대한민국이 진정 위기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법부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판사에 따라 판결이 다르게 나오면 그건 이미 사법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죄를 짓고 나서, 판사가 어디 소속이고 누구와 친한지를 따져야 한다면 그건 선진국가가 아니라 야만국가입니다.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 위기의 뿌리를 사법부 불신이라고 진단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재판이 벌어질 적마다 판사의 출신성분을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정치권 친분 관계를 헤아려 갑론을박하는 일이 정상일 수는 없다. 이낙연의 말처럼 이 나라는 선진국가는커녕 이미 야만국가로 아득하게 추락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헌법재판관의 임기 6년은 헌법에 정해진 겁니다. 헌법에 정해진 임기를 하위법률로 맘대로 늘린다? 그러고도 국정을 맡겨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할 수 있습니까? 그런 난폭한 짓 좀 그만 하세요. 38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있었는데 8명 중 4명이 감옥가고, 2명의 아들이 감옥 가고 한명은 헌법 수사 받다가 참담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치욕이 예정된 자리예요.

 

헌법에 정해진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법률로 마음대로 늘린다고 설치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의 언행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다수를 차지한 정치권력의 도를 넘는 오만함이야말로 나라를 말아먹을 천박한 병폐다. ‘다수결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는 될 지언정 권력을 휘두르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다수이니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 불법·편법으로 자기 편을 다수로 만들고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곧 독재. 이 나라는 지금 독재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민주적으로 훈련되신 경험이 풍부한 분들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 민주적이지 않은 사람 또는 덕성이 온화하지 않은 사람, 위험한 사람, 불안한 사람이 이 많은 권력을 가지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불행은 필연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험한 사람이 많은 권력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개인도 불행, 국가도, 국민도 불행해집니다. 그걸 막아야 됩니다.

 

국민의힘은 마치 자영업자 집합소같이 보입니다. 자기 생계를 위해 보따리 싸고 왔다가 가는 그런 모습, 제발 이런 위기를 초래했으면 이제는 국가를 위해 내 한몸 바치겠다는, 그런 비장함과 결연함을 보여줄 순 없겠습니까?

 

집권여당 국민의힘에 대한 이낙연의 비판은 굳이 그가 좌파 쪽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적확하다. 정치 자영업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서 몰려다니며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준 실망은 도대체 더 이상 형언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헌법재판관 임기를 헌법과 관계없이 연장하는 법을 만들고,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지난 3년 동안 방탄 외에 국민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친구나 가족도 정치 얘기하면 쭈뼛쭈뼛해지는 그런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내전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이낙연의 비판 또한 대단히 날카롭다. 지난 3년 동안 방탄과 정권 발목 비틀기 외에 국민을 위해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세상에 보다 보다 이런 난폭한 다수 야당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사회 통합을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통합형 지도자가 필요하고, 둘째는 통합형 정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 통합을 이루려면 모질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덕성이 있는 그런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모질고, 치우치고, 덕성도 천박한 그런 지도자가 온다면 권력은 흉기가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사람을 보십시오. 선거할 때 사람을 보자, 이 말씀을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무척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우리, 상식으로 돌아갑시다. 진영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진영이 나라를 살리지도 못합니다. 이번만이라도 통합형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고 그 대통령이 거대 양당의 온건합리적인 사람들에게 연정을 제안해서 내각을 꾸리고,

 

통합형 지도자를 뽑고, 동합형 정치가 전개돼야 한다는 이낙연의 호소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 가장 합당한 최상의 처방이다. 이번만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통합형 지도자를 뽑기 위해 사람(의 품격)을 보고 뽑자는 그의 말 또한 한 치도 그르지 않다. 우리는 분명 지금 흥망의 분기점에 다다라 있다.

 

통합형 정치를 하려면 다당제가 가장 빠른 길입니다. 아무거나 통과시키다 보니까 헌법을 무시하는 헌법재판관 임기 연장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 세력에게 권력은 흉기입니다. 저는 제게 남은 알량한 힘으로 모든 것을 대한민국의 위기 극복과 정치 개혁과 사회 통합을 위해 다 내놓겠습니다.

 

이낙연의 역할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상황으로 볼 때 그가 직접 대선후보로 뛸 공간은 없어 보인다. 그가 분명 대한민국의 위기극복과 정치개혁과 사회 통합을 위해 다 내놓겠다고 했으니, 그의 다음 행동을 기대한다. 백척간두에 선 국가의 위기 앞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사로움을 버리고 나라의 명운을 결정하는 일에 헌신하는 의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낙연의 위기 의식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그가 흉중에 어떤 의지를 품고 있는 지를 다 알 수는 없으나 일단은 그의 의기를 믿어보고 싶다.

 

지금 이 나라가 무참히 망가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다해야 한다. 기다리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애국(愛國)’을 입줄에 올리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정말 그가 애국을 실천할 속마음과 열정이 있는지 아닌지는 행동을 봐야 비로소 판별이 된다. 이낙연의 속 시원한 연설을 보며, 많은 사람이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있다. 절실한 마음으로 이낙연의 대의를 보고 싶다.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아니, 그의 용감한 행동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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