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왕을 사로잡고, 역사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우리의 초문왕은 마음을 온통 식나라에 두고 온 사람 같았다. 종일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고 입맛조차 잃었다. 오죽하면 꿈속에서도 그녀를 만났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써봐도 금방 넋을 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제대로 상사(相思)의 사랑 병에 빠진 것이다.
그날도 낭창낭창한 남만 여인 둘을 데리고 밤을 보냈는데 전혀 흥이 나질 않았다. 여자들은 뽀얗게 살색이 피어났고 이목구비가 제법 희끔하였으나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규희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밀어닥친 경이와 충격이 너무 컸다. 날이 새자마자 그녀들을 쫓아 보내고, 습관처럼 다시 연회를 벌였다. 작은 북소리가 동당거리고 생황과 거문고가 음률을 타는데, 하필 그 노랫말이 사내가 여인을 희롱하는 내용이다.
끼룩끼룩 물수리는 관관저구 (關關雎鳩)
황하의 강섬에서 울고 재하지주 (在河之洲)
아리따운 요조숙녀는 요조숙녀 (窈窕淑女)
사내의 좋은 짝이다 군자호구 (君子好逑)
올망졸망 마른 풀을 삼치행채 (參茬荇菜)
이리저리 헤치며 찾고 좌우류지 (左右流之)
아리따운 요조숙녀를 요조숙녀 (窈窕淑女)
자나 깨나 구한다 오매구지 (寤寐求之)
찾아도 찾을 길 없어 구지부득 (求之不得)
자나 깨나 생각한다 오매사복 (寤寐思服)
끝없는 그리움에 유재유재 (悠哉悠哉)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을 지새운다 전전반측 (輾轉反側)
올망졸망 마른 풀을 참치행채 (參茌荇菜)
이리저리 헤치며 뜯는다 좌우채지 (左右采之)
아리따운 요조숙녀와 요조숙녀 (窈窕淑女)
금슬 좋게 사귄다 금슬우지 (琴瑟友之)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주남(周南)편, ‘관저(關雎, 물수리)’
이 시 ‘물수리 (관저,關雎)’는 《시경》 311수 중 맨 먼저 실렸다. 그만치 《시경》의 얼굴 같은 작품이다. 그 표현도 은근하고 함축적이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공자의 말씀집 《논어》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공자 가라사대(子曰, 자왈), 예(禮)의 근본은 절제이다. 말하자면 시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관저’의 시 구절과 통하는 것이다. ‘관저는 악이불음(樂而不淫, 즐기되 지나치게 음란하지 않고),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플 때도 화기를 상하게 않는다) 하는 절제의 정신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후세인들은 ‘관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암수가 평생을 함께하는 물수리가 즐거운 소리를 내며 모래톱에 내려앉는 모습으로서, 군자와 숙녀의 아름다운 만남을 칭송한 내용이다.”
공자 말씀에 걸맞게 무난하여 흠잡을 데 없는 표현인데… 사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해석이다. 그런 뜻이라면 공자가 말한 ‘절제’는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인적 없는 강섬, 끼룩끼룩 물수리만 울고 있는 그곳에서 마름 풀을 따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을 보고도 다짜고짜 덮치지 않고, 무심한 척 시를 읊고 있는 군자의 모습이 ‘절제’라는 것인가?
오늘날에는 《시경》이 춘추시대의 유행가 노래 가사집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당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詩)라는 장르 자체가 없었고, 노랫가락에 붙인 가사가 있었을 뿐이다. 악곡은 사라지고 가사만 남은 경우이다. 국풍(國風)! 말 그대로 ‘나라별 유행가’라는 뜻이다. 과연 민간에 유행하던 가요가 인간 내면의 절제를 소재로 삼았을까? 오히려 질박하고 절실한 행위 자체를 묘사했을 개연성이 짙다. 물수리 시의 등장인물은 군자와 요조숙녀, 둘 뿐이다. 인적 뜸한 강섬에서 남녀가 단둘이 만나 할 일은…, 그야말로 뻔하다. 그런데도 공자는 ‘절제’라고 하였다. 공선생이 말한 ‘절제’는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과 비유가 은근하게, 절제되었단 말이다.
먼저 주(洲)라는 단어부터 보자. 섬을 뜻하는 ‘주’는 섬은 섬이로되 바다에 있는 섬(島, 도)이 아니라 강이나 호수 가운데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이다.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물살에 떼밀리고 쌓이다 보니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삼각주’라고 불린다. 델타지역이란 말이다.
첫 구 ‘관관저구’에 ‘관관(關關)’은 물수리의 울음소리를 적은 의성어이다. 우리말로는 ‘끼룩끼룩’이나 ‘꺽꺽’에 해당한다. 이 대륙에서 하(河)는 황하를 가리키고 강(江)은 장강을 일컫는다. 그래서 이 시는 황하를 소재로 하고 있다. 끼룩끼룩 물수리가, 황하의 강섬 삼각주에 산다? 사실은 남녀의 사랑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강에 있는 섬, 강섬을 뜻하는 주(洲)는 여체의 델타 부위를 가리키고, 강섬에 산다는 물수리 소리 ‘끼룩끼룩’은 여자가 깜박깜박 자지러지며 들숨 날숨과 함께 뱉어내는 교성이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 ‘요조숙녀 군자호구’에 나오는 ‘군자’는, 그런 여인의 부위를 더듬고 희롱하는 ‘사내’라고 해석함이 맞다. 그러고 보면 ‘올망졸망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찾고…’라는 표현이 사내의 은근하면서 집요한 애무 동작에 어울린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 ‘찾아도 찾을 길 없어, 자나 깨나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사랑하던 여인과 헤어지고 오매불망 잠 못 이루는 사내의 모습이다.
주남(周南)편에 실렸다. ‘주남’은 왕실이 직할하던 땅의 남쪽, 대략 황하에서 한수(漢水) 사이였다. 음악은 남쪽 계열의 밝으면서 명랑한 악곡이었을 것이다. 초문왕이야 사후에 글월 문(文) 자를 시호로 받을 만치 중원의 문화에 어둡지 않았으니 당시 유행하던 이런 악곡의 내용을 몰랐을 리 없다. 지금 왕이 느끼고 생각하는 노래 가사의 의미는 이랬다.
“올망졸망 보풀이 무성한 여체의 부위를 사내가 이리저리 헤집으며 여인을 즐긴다. 결국 여인이 꺽꺽 교성을 질러대는데 본래 이 강섬에 살고 있었던가? 물수리가 우는 듯하다! 헤어지고 보니 끝없는 그리움에 자나 깨나 생각뿐이고, 이리저리 뒤척이며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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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어느 순간 왕의 가슴이 짜릿하니 아리다가, 뜨거운 덩어리가 꿈틀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덩이가 한계에 이르러 폭발하듯 용틀임하자, 결국에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래, 요조숙녀! 마음에 있는 여인을 탐내는 것은 사내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내가 왕인데 어째서 여자 하나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할까? 그렇다면… 왕이라는 이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일개 촌장이 되더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마침 봄이 오고 있었다. 망설임의 시간이 길었지 일단 갈피를 정하자 한시가 급했다.
“지난가을 사냥터가 군사의 조련에 딱 좋더구나. 당장 봄 사냥을 준비하라. 군사는 1만이다…!”
구릉마다 능선마다 사나운 군사들이 넘쳐났다. 그날 저녁 연회 자리에는 특별히 식나라 임금이 초대되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왕이 숨겨둔 말을 꺼냈다.
“과인은 군후의 부인과 인연이 있다. 이제 내일이면 사냥을 끝내고 돌아갈 터인데 부인이 나를 따라가면 어떻겠는가?”
실로 직설적인 말이었다. 식후는 졸지에 아득하여 말문이 막혔다가, 그나마 정신을 가다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왕의 분부를 받들 수가 없나이다. 통촉해주십시오. 따로 아름다운 동녀 스물을 바치겠나이다.”
“너는 교묘한 말로 잘도 과인을 우롱하는구나.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자를 포박하여 꿇어앉히라……!”
대기하던 시위장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식후를 결박하였다. 군사들은 즉시 궁으로 달려가 식 부인을 찾았다. 규 씨는 이 사태를 듣고 탄식했다.
“누구를 원망하리오. 모두가 내 탓이구나! 이 몸이 모든 일의 화근이 되었구나…!”
막 후원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하던 참이었다. 초나라 장수가 달려오면서 소리쳤다.
“부인은 식나라 군주의 목숨을 생각하십시오! 왜 부부가 다 같이 죽으려 하십니까?”
그 말에 규씨가 고개를 숙였다. 결국 그날 밤 야영지 막사에서 왕이 그녀를 취하였다. 남자의 손길이 지날 때 여자의 얼굴에서 경련이 일었지만, 저항은 앙탈밖에 무의미했다. 스며든 달빛이 벗은 몸을 비추었다. 남자는 이제야 그토록 바라던 몸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렇고 그런 대용품이 아니었다. 그가 안고 싶고 더듬고 싶었던 여인이 눈앞에 있었다. 기다리고 고대한 시간이 길어선지, 아무래도 오늘 밤 왕은 제 욕심 채우기에 바쁘다. 규 씨의 몸속은 따뜻하고 찰졌다. 거기가 먼 곳인지 가까운 곳인지 사내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급히 솟구쳤고, 오래 헤매었고, 어느 순간 괴로운 듯 황홀한 듯 진저리를 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제야 펄펄 끓던 가슴속 욕망이 분출구를 찾았다.
이후 초나라 백성들은 그녀를 규희(糾嬉)라고 부르든지, 혹은 눈언저리가 복숭아꽃을 닮았다고 해서 도화(桃花) 부인으로 부르면서 나라의 강성함을 자랑하였다. 왕은 식후를 여수 땅에다 안치시키고 천여 호의 식읍을 주어 조상의 위패를 모시게 하였다. 그토록 갈망하던 여인을 마침내 손에 넣은 초문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규희는 남편 식후의 처지로 인해 항상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다. 그나마 얼마 후에 식후가 울화병이 도져 세상을 떠났다.
규희도 마침내 남편이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히려 그녀는 어떤 홀가분함을 느끼고, 차츰 다리를 들어 사내를 깊이 받아들였다. 죽은 사람은 마음에서 떠나는 법이고, 그만큼 사람의 몸은 간사한 것이었다. 왕은 중독처럼 그녀에게 매몰되어 갔다. 시작은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엽색 행각이었으나, 드디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불같은 열락의 밤과, 애틋한 사랑의 차이는 그다지 큰 게 아니었다. 공선생, 공자가 《시경》을 편찬하면서 사랑의 행위를 그린 ‘물수리’ 시를 첫 장에 배치한 것도 남녀의 사랑이 세상의 근본이 된다는 이치를 통달한 결과다.
규희도 남자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이나 하듯 두 아들까지 낳았다. 그녀의 몸은 리드미컬한 악기였고, 왕은 그녀의 감창소리를 즐거워했다. 대신 다시는 천하 제패의 야망을 펼치지 못했다. 천하를 얻고도 여인의 치맛자락에 휩싸여 일을 망친 인물이 수두룩한데, 하물며 멀쩡한 이웃 제후의 부인을 겁탈하고 나라를 빼앗았으니 이제 대의명분과는 담을 쌓았다. 세상은 그를 철모르는 개망나니쯤으로 여기고 아예 왕래를 끊었다.
대신에 제나라 환공이 천하 대의의 깃발을 세우자 그 아래 모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초문왕은 중원 경영의 야망을 규희와 맞바꾸었다. 그러고 보면 패자는 결코 실력이나 의지만으로 쟁취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은 운명이 어디선가 작동하고 있었다.
규희의 몸에서 난 아들 중 둘째가 다음 대를 계승하게 된다. 다른 자식도 많았으나 규희의 아들로 후계를 삼았다. 사랑에 빠지는 건 죄가 아니다. 헤어나고자 할수록 늪처럼 빠져드는 감정의 기복…! 다만 그 뜨거운 욕망을 가능케 하는 절대군주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민간에 내려오는 속설이 있다.
“골이 깊고 못이 좋은 곳에서 용이 난다….”
깊은 물웅덩이를 용소(龍沼)라고 부르는 것도 다 그런 연유이다. 과연 규희의 유연하고 매끄러운 몸은 깊고도 은근했다. 훗날 그녀가 낳은 초성왕은 장강 하류까지 진출하여 만여 리의 영토를 지배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대놓고 규희라고 부르지 못하고 초문왕의 부인이라 하여 문 부인으로 높여 불렀다. 여자의 운명은 남편과 아들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다.
골짜기의 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곡신불사 (谷神不死)
이를 오묘한 여신이라 한다 시위현빈 (是謂玄牝)
그 신비로운 여신의 문이 현빈지문 (玄牝之門)
바로 천지 만물의 근원이다 시위천지근 (是謂天地根)
끊임없이 언제나 면면약존 (綿綿若存)
작용하는데도 지치지를 않는다 용지불근 (用之不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중
노자(老子)는 BC 500년 경, 공자보다 얼마간 앞서 살았던 사람이다. 초나라 고현(苦縣) 사람으로 성은 이(李) 씨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耼)이다. 성이 이(李) 씨인데 왜 노자일까? 노자라는 호칭은 ‘지혜로운 늙은이’라는 의미의 존칭으로서, 요샛말로 노선생(老先生) 정도의 의미이다. 그의 저서인 《도덕경(道德經)》은 상, 하 두 편으로 나뉘어 상편을 도경(道經), 하편을 덕경(德經)이라고 부르고 이를 합쳐서 도덕경이라고 한다. 《도덕경》의 이 구절은 고도의 형이상학적 사상을 빈(牝, 여인의 골짜기)과 같은 형이하학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계곡의 물이 마르지 않듯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약한 것 같은 ‘빈’이지만 그 힘은 마르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계곡의 물길 하나로 천지 만물이 잉태하고 영속하는 이치이다.
노자의 도(道)는 유가에서 말하는 도와 근본부터가 다르다. 인위적인 예의(禮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만물의 근원으로서, 스스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자연의 섭리이다. 사람은 제대로 인지할 수도 없지만, 세상에서 그것에 포괄되지 않는 것이 없다. 쉽게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그것이 들어 있지 않은 것도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곧 도가 된다면 이성을 갈망하는 감정과 행위 또한 지극히 도(道)다운 것이다. 탄생과 번식을 담당하는 여인이 인간 삶의 근본이되 듯이, 천하의 대세는 또 한 번 미인의 허리에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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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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