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1739)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1-09-10 00:28:05
"길들여진다는 게 뭐지?" 여우가 답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복리를 조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동행은 늘 아슬아슬하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9월도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3일째이다. 세상은 2022년도 대선에 온통 눈이 쏠려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린 팬데믹의 심각한 상황인 데도, 이념과 계층, 세대, 지역으로 편을 갈라 죽기 살기로 싸운다. 사람들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보려 한다. 흑의 서사에는 백의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다. 백의 진영은 흑의 뿌리까지 도려내려 한다. 스스로 외눈박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는 흑백논리는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다. 외로운 이들은 진영의 울타리 안에 웅크린다. 왜 그래야만 하나.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하밀 할아버지는 말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치명적인 적들조차 운명적으로 연결돼 있다. 자아와 타자의 역설적 관계다. 관용과 협력 없이 팬데믹 같은 재앙을 넘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길고 복잡한 규율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럴수록 자유와 혁신은 시들어간다. 민주주의도 역설적이다. 다수의 힘은 가장 민주적인 정부도 투표로 끝장낼 수 있다. 온전히 관용적인 사회도 자기 파괴의 씨앗을 품고 있다. 관용 자들이 비관용자들을 참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복리를 조화시키는 건 쉽지 않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동행은 늘 아슬아슬하다.

 

시간이 흐르면 가장 성공적이었던 삶도 처참하게 실패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진정한 혁신보다 지대 추구에 몰두하는 자본주의로는 지속적인 번영을 이룰 수 없다. 기업은 사람들과 지구촌의 문제를 풀면서 이익을 얻어야 한다. 이제 주주 이익 극대화를 넘어설 때가 됐다. 지금은 인간의 창의와 혁신 능력이 자본인 시대다. 하지만 그런 재능을 가진 이들은 소수다. 그들을 키워낼 토양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체제의 불평등을 누그러트릴 해법은 거저 얻을 수 없다. 투기적 거품에 영혼을 빼앗기게 하는 사회에서 사람이 먼저라는 구호는 얼마나 공허한가. 다른 미래를 그리는 상상력은 빈곤하다.

 

<<어린 왕자>>의 핵심 키워드는 "길들여진다"는 말이다.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말했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 그러자 여우가 말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거든." 그러자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여진다는 게 뭐지?" 여우가 답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가 없는 한 소년에 지니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에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 관계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확장된다. 인생의 사는 맛은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은 관계의 폭을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하면, 원하는 활동이 확장되는 것을 최근에 배우고 있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다.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속에서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보르헤스의 말이다. " 우리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은 각각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든 항상 그의 무언가를 남기고, 또 우리의 무언가를 가져간다. 많은 것을 남긴 사람도 적은 것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무엇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누구든 단순한 우연에 의해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이다."

 

어딘가에 나에게 정해진 섭리나 계획이 있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난다. 지금의 내 삶에 그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온다. 9월도 그렇게 맞이할 일이다.

 

 

9월이 오면/김향기

 

 

웃자라던 기세를 접는 나무며 곡식들,

잎마다 두텁게 살이 찌기 시작하고

맑아진 강물에 비친 그림자도 묵직하다.

 

풀벌레 노랫소리

낮고 낮게 신호 보내면

목청 높던 매미들도 서둘러 떠나고

들판의 열매들마다 속살 채우기 바쁘다.

 

하늘이 높아질수록

사람도 생각 깊어져

한줄기 바람결에서 깨달음을 얻을 줄 알고,

스스로 철들어가며 여물어 가는 9.

 

 

다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난다.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멀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어린 왕자>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하는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의식이 뭐야?" 이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히는 거야.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내게 있어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런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 거고……" 여우가 말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 것만 같아!" 관계는 그런 거다. 우리를 울게 한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사막 같은 우리 사회에도 울음이 만들어져야 한다. 들뢰즈의 '접속'이란 개념이 떠오른다. 나를 열고 타자에게 접속하여야 한다. 최근에 늘 머릿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다. 삶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항상성을 위해 지속하고, 타자와 접속하라. 이게 영성의 지혜, 즉 자연지를 알고 사는 길이다. 이게 삶의 성장의 길이다. 인생의 사는 맛은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은 관계의 폭을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하면, 원하는 활동이 확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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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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