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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오나라 멸망(BC 473년) 이후 오족 왜인의 확산 경로 [자료] 구글지도 위에 필자가 그림 |
우리는 그동안 ‘왜인’(倭人)이 고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처럼 인식해왔다. 국내의 강단 사학자 중 한 사람은 ‘한반도 내 왜인설’에 대해 노골적으로 한반도가 열도의 식민지라는 임나일본부설을 추종하는 주장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이처럼 왜는 일반인이건 역사학자건 관계없이 대부분 고대 일본과 연결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중·일의 고대 사료들을 살펴본 결과 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 제시되고 있다. 『사기』 주본기에는 주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주공단보의 장자인 오태백이 왕위를 포기하고 형만으로 달아나 문신단발하였다는 기사가 등장한다. 『사기』에는 왜인이라는 직접적 표현은 없지만 왜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문신단발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기사가 등장한다.
『사기』 이후 『삼국지』 등에서도 머리를 짧게 깍고 몸에 문신을 하는 사람들을 그 정치적 위상과 관계없이 모두 왜로 파악해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른다면 오태백은 왜의 선조라고 말할 수 있다. 왜인들이 문신단발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물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긴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둘째는 큰 물고기와 물 속에 사는 짐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지』 위지 왜인조에는 “하후소강의 아들이 회계(會稽)에 봉해지자 머리를 깍고 문신하여 교룡(蛟龍)이 해치는 것을 피했다...문신은 큰 물고기와 물짐승들을 물리치려는 것인데 후에는 점차 장식으로 삼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왕충의 『논형』에 왜인이라는 직접적 표현이 나타난다. 주 성왕 시기(BC 1043~1021)인 “주(周)시대에는 천하가 태평하였으며 월상(越裳)은 흰 꿩을 바치고 왜인은 창초를 바쳤다”(周時天下太平 越裳獻白雉 倭人貢鬯草)는 것이다. 『산해경』에도 “개국(蓋國)은 거연(鉅燕)의 남쪽, 왜의 북쪽에 있으며, 왜는 연에 속한다”는 기사가 나온다. 여기서 거연은 크고 강한 연나라로서 연소왕(BC 311~279) 때를 가리키고, 개국은 연나라의 장성에서 멀지 않은 산동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서』지리지에는 “낙랑(樂浪)의 바다 한 가운데에 왜인의 나라가 있는데, 백여국으로 나뉘어 있다. 세시마다 와서 조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 각종 사서의 왜(倭) 관련 기록은 애초에 왜가 열도가 아니라 중국 본토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왜는 중국의 회계 지역에서부터 회대지역, 산동반도와 연나라, 환발해만 권역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지역은 동이족이 집중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동이 왜라고 부를 수 있다. 동이 왜는 어떻게 해서 동북아 전반에 걸쳐 널리 확산하게 되었을까?
왜가 동북 지역에 광범위하게 확산하게 된 것은 오·월전쟁 이후 오나라가 멸망하면서부터이다. 기원전 473년 오나라가 멸망한 후 월왕 구천은 오허(吳墟), 즉 오나라의 폐허라고 부를 정도로 오나라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오나라 왕족 대다수는 전쟁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고 유랑민이 되었다. 다수의 오나라 왕족과 백성들이 월나라의 박해를 피해 도망쳤다. 잔류한 오인들은 노예보다 못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산동반도 낭야까지 밀려난 오나라 사람들의 선택은 송나라나 초나라로 도망가거나 바다로 나가는 것 뿐이었다.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오나라 사람들이 왜인들로서 수많은 배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나라의 압박을 못이긴 다수의 오인들은 해중으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월나라 세력들도 BC 306년 초나라와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멸망하면서 오나라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도 초나라에 의해 바다로 튕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한서』 지리지에 기록된 것처럼 발해만 해협에 수많은 오·월 난민이 표류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나라 세력과 월나라 세력은 원수지간이었음에도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부르는 사자성어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시리즈 12편에 계속됩니다
▲ 박동(朴東) 박사 |
[필자소개]
-박동(朴東) 박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박사, 정치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국장을 거쳐서 현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무렵 도라산 통일사업을 하던 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도라산의 라(羅)의 유래에 대해 꽂혀서 최근까지 연구했으며, 중국의 운남성 박물관에서 라의 실체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었다. 현재 연구 결과를 책자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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