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재소설-은애숙] 조 씨 할머니 -① |
누군가 일찍이 핵심을 간파했듯 단순한 독자는 작가의 내면에 펼쳐진 새로운 광경들을 결코 찾을 수 없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는 독자와 달리 텍스트를 베껴 쓰는 독자를 향해 작가는 내밀한 대화를 시작한다. 작가에게 몰입할수록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내게 이와 흡사한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만난 무명 배우-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한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있던 열망이 깨어났다. 그에 대해, 내 안에서 공명하는 울림에 관해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솟구친다.
지동시장에 버스가 정차하자 승객 여럿이 우르르 버스에 오른다. 한 할머니가 꿍얼거리며 내 앞쪽 좌석에 앉는다. 팔에 걸쳐있던 비닐봉지를 옆 자리에 내려놓는지 한동안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여보게나! 내 웃기는 소리 하나 들려주랴? 오늘같이 추운 날 뒈지는 사람은 죽을 날을 잘못 잡은 거야. 그게 뭔 소린고 하면, 죽어 천당문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하두 추워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꺼내지 못해 주저하다 그만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씀이지.”
버스 안 승객들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어폰을 낀 채 무언가 듣고 있는 젊은 남자, 문자 메시지를 날리거나 게임에 몰두한 듯 보이는 학생 서넛, 졸거나 멍하니 있는 중년의 남녀 네댓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는 그만한 일에 이골이 났다는 듯 만담을 시작한다. 진지한 어조로, 때론 간드러진 음성으로 노래를 읊조린다.
“이 늙은이가 허튼소리 한다 비웃지 마시게. 술 먹고 주정부리는 거 아니거든. 술 근처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야.”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할머니를 힐끗 쳐다보다가 우연히 내 눈과 마주친 통에 할머니의 얼굴을 보게 된다. 조글조글하고 깡마른 얼굴, 오목하게 들어간 볼, 눈 주위가 푹 꺼진 모습이 여느 할머니와 비슷해 보인다. 허리와 등짝이 굽어 약간 구부정한 자세마저 전형적인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압록강, 두만강 넘어 고생 끝 도착한 한국 땅이 지상낙원이더냐? 어디 목화솜 마냥 따숩기만 하더냐? 말투 이상타 왕따 취급하고,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하니 어찌 된 일이더냐? 텃세란 게 어디 새들만의 이야기더냐. 이북 사람 한통속으로 철새 취급당하니 만만한 게 콩떡이라지? 탈북자는 콩떡이야 콩이 많건 적건 콩떡이듯 탈북자는 그저 만만한 콩떡이라네. 출신 성분이 어찌됐건 가방끈이 길건 짧건, 낯짝이 잘났건 못났건 한통속 취급하니······. 여보게! 젊은이들 이 노인네 타령 한 번 들어보소! 잘못 꽂은 작대기마냥 원치 않은 곳에 붙박여 산 이 늙은이 인생살이 한 번 들어보소! 꼴사납고 매몰차고 짐승만도 못한 인간종자들! 신물 나고 토악질이 절로 나는 인간 종자들 말이야.”
할머니는 박복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다가 만감이 교차한 듯 잠시 침묵하더니 곧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일본군 대장 집에 식모살이 간다고 좋아했지. 돈 벌어 시집가겠다 맹세했었지. 그 맹세 비웃듯 내 청춘의 봄날은 회오리바람 타고 가버렸어. 봄바람 살랑거려 지천에 만개한 봄꽃 구경 나갔지. 연보랏빛 장다리꽃이 어찌나 무성하던지. ‘꽃이 피고 별이 뜨고 새가 날면 같이 웃고’ 들판 가득 돋아난 쑥이며 냉이, 질경이를 캐느라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어. ‘꽃이 지고 별이 지고 새가 울면 같이 울던’ 꿈같던 젊은 날은 꽃 지듯 져버렸어. 충청도 서산에서 선금 이 백 원을 받고 만주로 갔어. 그때 내 나이 열여덟이었지. 그땐 몰랐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을 당할 줄 꿈에도 생각 못했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가요를 읊조리던 할머니의 음성이 갑자기 낮고 처연해진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는 듯 들릴 듯 말 듯 낮고 조용한 어조로 속삭인다.
“우리는 이름이 없었어. 아니 다른 이름으로 불렸지. 난 게이코가 되었어. 우린 ‘히도리’였으니까. 우린 죽은 몸이나 매한가지였어. 살아 있다는 게 뭔가! 제 맘대로 제 몸을 움직이는 거지. 우린 제 몸을 맘껏 움직일 수 없었어. 그러다 보니 송장처럼 되더구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송장 말이야. 슬픔도, 아픔도, 나중엔 부끄러움마저 느낄 수 없었지.”
자신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기에 급급한 세태 속에서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를 만담의 형식을 빌려 토해내는 할머니가 신선하게 보였다.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수없이 갈라지는 골목길의 상념 속으로 빠져든다. 식물의 원 가지에서 곁가지가 생겨나듯 끝없이 갈라지는 골목길. 피하고 싶은 마음이 뒷걸음질 치게 만들고 접촉하고 싶은 욕망이 앞으로 나가게 한다고. 두려워하면서 끌린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 발을 디딘 골목길 안에서 민망함과 두려움에 휩싸인 적이 있는가. 그런 낯가림은 상대가 사람일 경우 더 뚜렷이 나타난다. 처음 본 사람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머뭇머뭇하는 것이 일반적 모습인데, 할머니의 특이한 행동 앞에서 불꽃이 일듯 호기심이 일어났다. 처음 대하는 승객들을 관객인 양 여기며 당당하고 거침없는 어투로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쏟아내는 할머니가 놀랍다. 그녀의 솔직함에 놀라 움츠러드는 건 오히려 승객들인 듯 보였다. 소리의 원천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승객들을 향해 여유 만만한 태도로 기지개를 켜고 난 후 공연을 이어나갔다.
“여보게 젊은이들, 내 소리 한 번 들어보소! 옛날 옛적 의관을 갖춰 장부 기상이 물씬 풍기는 장끼 하나 살았다오. 어느 날 들판에 떨어진 콩알을 보고 집어먹으려 했다네. 그때 까투리가 말하길, 눈 위에 사람 발자국 보이네, 입으로 훌훌 불고 비로 싹싹 쓴 흔적까지 있으니 괴이한 일이네. 제발 그 콩을 먹지 마오. 장끼란 놈 하는 말, 첩첩산중 쌓인 눈뿐인데 어디 사람 자취 있나. 오늘 이 콩 보니 반갑기만 하네. 어디 한 번 주린 배를 채워볼까. 까투리는 말렸다네. 북망산에 궂은 비 뿌리더니 쌍무지개 홀연히 칼이 돼 당신 머리를 뎅겅 베었구려. 내 꿈은 흉몽이니 제발 그 콩 먹지 마오.”
창을 하던 할머니가 밭은 숨을 내쉬느라 소리를 멈춘다.
“여보게 젊은이들, 아내 말 듣지 않고 제 고집 부리던 장끼 신세 어찌 됐는지 아시나? 가슴치고 애통하던 까투리 슬픔에 겨워하는 말, 당신도 내 말 들었으면 이런 변 당할까. 답답하고 불쌍하다. 눈물은 연못 되고 한숨은 폭우 된다. 이 내 평생 어이할꼬!”
말로만 듣던 장끼전을 구성진 목소리로 열창하는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호기심이 더욱 일었다.
할머니의 풍월을 재미있게 들었는지라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내심 기대를 하게 된다. 이제나저제나 말하길 기다린다.
“여보게 젊은이들, 늙은이가 웃겨볼까. 남친과 남편의 차이가 뭔지 아시나? 남친은 내 편만 드는데 남편이 되면 남의 편만 든다네. 남친일 때는 자기 앞에서만 울라고 하더니, 남편 되면 저 보는 앞에서 질질 짜지 말라고 한대나. 남친일 땐 나 하나밖에 모르더니, 남편 되니 소파·리모컨·텔레비와 사랑에 빠진대.”
나는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뼉을 치며 웃었다. 버스 안에 울려 퍼진 하이 톤의 목소리에 할머니가 조금 상체를 움직여 뒤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에 쓸쓸함이 짙게 배어있다. 할머니,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내가 묻자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슬그머니 표정을 바꾼다.
“이놈의 영감탱이, 내가 항우 장비마냥 힘이 솟는 줄 안다니까. 어제저녁 폐지 팔고 들어가니 그 영감 하는 말, 제발 궁상 좀 그만 떨어. 우리가 밥 굶을 정도는 아니잖아, 하는 거야. 그 말이 나 생각해서 하는 건가. 영감 배고파서 하는 소리지. 제 끼니 제 손으로 차리지도 못하는 위인 주제에. 예전 같았으면 욕을 한 바가지 쏟아냈을 테지만 이젠 힘 떨어져 한숨만 푹푹 나오더라.”
말 없는 관객들. 연기자에게 환호성과 갈채를 보내는 대신 아무런 관심조차 드러내지 않는 무심한 관객 앞에서 혼신의 연기를 쏟아내던 할머니. 그녀는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부스스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범한 소시민이 거대 공동체의 권력이 옳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반대 의견을 표시하거나 그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공동체의 힘은 너무도 견고하게 작용하기에 그 공동체에 의지해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공동체 밖의 세상은 더없이 위험하고 폭력적일 것이란 생각을 암암리에 주입시키는 건 아닐까? 어느 독일인이 지적했던 말 – 일반인의 우매한 생각은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큼 폭력적이다. – 이 떠오른다. 누구였던가?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가 국경 통과가 불가능해지자 자살을 택한 유대인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글을 읽다가 이런 영감을 받게 된다. 침묵으로 찬양하기, 사라진 언어로 번역하기, 이국의 언어로 잡담하기, 평온함으로 남의 고통 음미하기, 시체 앞에서 미친 척 욕하기, 진수성찬 앞에서 금식하기. 당신은 평상시 어떤 일을 즐겨 하는가.
할머니의 만담을 들으며 승객 중 어느 누구도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거나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버스 안 승객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이는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제 발등의 불을 끄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높은 곳의 일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고 세상이 변하는 것이냐고, 아예 모른 체하고 납작 엎드려 사는 것이 영리한 처세술이라고. 세상과 사회를 향해 많은 질문을 던지던 할머니의 모습이 강하게 나타났다. 혹독한 삶 속에서 수없이 맞부딪쳐야 했던 아찔한 순간들이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청춘의 내밀한 꿈에 잠겨 가슴이 두근거렸을 그 나이에 쓰라림을 곱씹으며 재물이 되다니. 사나운 짐승들 속에 던져진 채 절망으로 몸서리쳤을 젊은 그녀가······. ②편에 계속
![]() |
▲ 은애숙 소설가 |
은애숙 소설가 프로필
-연세대학교 가정대학 졸업 -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수상(소설)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문학회 ‘시와 사람들’ 회원 -소설동인회 ‘스토리소동’ 회원
-소설집 : 『마리아의 환상 사용법』,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소설 동인지 참여 : 『오작교를 건너다』, 『엄마의 남자』, 『신부님과 여동생』 -문학회 ‘시와 사람들’ 동인지 참여 : 『시의 길을 걷다』(8집~10집)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