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공의 의심으로 드러난 왕실 스캔들
불륜의 비극적 결말, 도덕적 경고로 남아
인간 본성과 사회 규범의 충돌, 현대에도 교훈 제공

때는 동주의 주장왕 3년, 서력으로 치면 BC 694년이다. 그해도 봄볕이 흐드러졌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700년도 더 된 일이나 우리는 그해 끝물의 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공자가 편찬한 시경(詩經)에 실린 이 한 편의 시가 그날의 정경을 노래하고 있다.
수레 소리 달캉달캉 잘도 달리고 재구박박 (載驅薄薄)
대 자리에 고운 주렴 붉은 가죽 점불주곽 (簟茀朱鞹)
노나라서 오는 길은 탄탄대로 노도유탕 (魯道有蕩)
제나라 공주는 저녁에 오네 제자발석 (齊子發夕)
문수(汶水)의 물결은 넘실거리고 문수상상 (汶水漡漡)
사람들은 끝도 없이 바글거리네 행인방방 (行人尨尨)
노나라서 오는 길은 탄탄대로 노도유탕 (魯道有蕩)
제나라 공주는 질탕하게 논다네 제자고상 (齊子翶翔)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제풍(齊風)편, ‘재구(載驅, 수레를 타고)’
공자!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인물이다. 천 년 동안이나 우리 사회의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유가의 창시자로서, 성현으로까지 추앙받는 학자이다. 성은 공(孔)이고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노(魯)나라 사람이다. 춘추시대 말기의 교육자이며 사상가로서 안로, 자로, 백우, 자공, 안연 등 여러 특출한 제자를 길러냈다. 이후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현실에서 뜻을 펼치기를 시도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말년에는 고향에 돌아와 오로지 교육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마침내 그의 이론과 사상은 동양철학의 근간이 되었으니, 현실의 좌절이 오히려 결실로 다가온 경우이다.

공자와 관련된 저술로는 논어, 춘추, 시경 등이 꼽힌다. 이 중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기록한 말씀집이다. 그래서 모든 문장이 ‘공자 가라사대(子曰, 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로 시작한다.
춘추는 공자가 저술한 노나라의 역사서이고, 시경은 황하를 중심으로 한 중원 일대의 노래 가사를 모은 책이다. 음표가 없었던 탓에 구전으로 전해지던 노래의 곡조는 세월 따라 사라지고 노랫말만 남았다. 주로 서정시의 형식이기에 시집이랄 뿐이지 엄밀히 말하면 악보가 빠진 가사집에 해당한다. 수록된 시는 311편으로서 크게 풍(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풍’이 가장 많다.
과거에는 풍을 풍자, 또는 풍유의 뜻으로 풀이한 적도 있었다. 인류의 스승 공자가 편찬한 시집이니 마땅히 심오한 철학이나, 하다못해 교훈적인 뜻이 담겼으리라고 여겨지던 까닭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시경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요를 시경과 비교하여 고대의 사회 구조와 종교 신앙 및 생활 습속 등을 분석한 것이다. 이런 결과로서 시경의 대다수 작품이 고대의 농민들이 계절 축제를 지낼 때 젊은 남녀가 주고받은 즉흥적인 연가 또는 민요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예외 없이 시경의 풍을 민간 가요의 뜻인 풍요의 의미로 풀이한다. 말하자면 민간에서 바람처럼 떠돌던 유행가라는 말이다. 풍에다 나라 국(國) 자를 붙여 국풍이라고 하였으니, 나라별로 유행한 대중가요라는 뜻이 된다.
국풍에서 소개된 민요는 황하를 중심으로 15개 지역(周南주남, 召南소남, 齊제, 秦진, 陣진, 鄭정, 衛위 등등)에서 불린 160편의 가사를 싣고 있다. 이에 비해서 아(雅)는 연회나 잔치에서 사용된 세미 클래식 가요로서 공식행사용 정형화된 대아(大雅)와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발라드풍의 서정시인 소아(小雅)가 있다. 마지막 송(頌)은 신에게 제사를 올리거나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종묘 제례에서 연주되던 순수 클래식 가사이다.
이 시는 제풍(齊風)에 실렸다. 제풍이니 제(齊)나라 노래 가사이다. 제나라는 강태공으로 불리는 태공망이 주(周)의 창시자 무왕으로부터 산둥반도 일대를 봉분 받아 건립한 제후국이다. 강태공! 미끼 없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리던 일화를 남기고, 낚싯꾼의 대명사가 된 바로 그 사람이다. 제나라 공주는 문강을 말한다. 문강! 그녀는 인물 좋은 제나라 공실답게 아름답고 영리하였다. 게다가 총명하기도 하여 말하는 그대로 문장이 되었기에 이름도 문강(文姜, 여성은 별도로 이름이 없다 보니 글 잘하는 강 씨라는 의미로 문강이다)이라고 하였다. 높은 신분에 뛰어난 외모에다가 글까지 잘하는 당대의 아이콘인 셈인데, 결정적인 흠은 지나치게 요염하고 색을 즐긴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임치(臨淄, 제나라의 도성) 시절부터 오빠 제양공과 불륜의 관계에 있었다. 당시 제양공은 세자의 신분으로,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이 돋보이는 미소년이다. 문강 공주에게 남다른 미모와 재능이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했다. 게다가 애교도 있었다. 오빠 제아가 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어느 봄날 불현듯 넘지 말아야 하는 불륜의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의 감흥은 너무나 달콤하고 경이로웠다. 봉긋하게 부푼 가슴, 부르르 떨리는 다리. 창조적이며 열정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은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서로를 즐겼다. 아버지 제희공만 몰랐을 뿐이지 웬만한 나인들은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세자와 공주의 일을 누가 일러바치거나 말릴 사람이 없어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던 문강은 열일곱 되던 해 이웃 노(魯)나라로 출가하여 노환공의 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도무지 남편이 성에 차지 않았다. 작달막하고 통통한 외모도 그러하거니와 결혼 당시 이미 나이 오십 줄에 든 중늙은이였다. 자연히 함께하는 시간이 싫어서 차라리 슬며시 남편을 멀리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중년의 남자는 목마른 노루가 물을 찾듯이 젊고 예쁜 문강에게 빠져들어, 밖에서 보는 부부의 금실은 괜찮은 편이었다. 문강이 오빠를 다시 만난 것은 제양공 치세 7년이 되는 늦은 봄이었다.
한창 왕성할 삼십 대 후반의 제양공이 상처를 하게 되었다. 마침 주 왕실에서 성년이 된 왕녀가 있어, 노환공이 왕녀의 사주단자를 들고 부인 문강과 함께 임치를 찾은 것이다. ‘수레를 타고’ 시의 구절 중에 “문수의 물결은 넘실거린다”라고 하였다. 옛 연인과 만남을 기대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여인의 설렘이 연상된다. 더욱 노골적인 표현은 끝 절이다. ‘제나라 공주는 저녁에 온다네’ ‘제나라 공주는 질탕하게 논다네’ 질탕하게 놀기 위해 저녁 무렵에 오는 여인! 안 봐도 그림이 나온다. 한 마디로 얼레리꼴레니 같은 조롱의 느낌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륜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되지 못한다. 남부끄러운 소문이야 살랑 있었지만, 긴가민가한 풍문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일은 그예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가 다시 정염의 늪에 빠진 것이다.
운명의 밤, 남편 노환공은 환영 파티가 있었던 낙수 들판에 머물렀다. 그가 거느린 호위 군사만 200승의 병거였다. 당시 군사의 편제는 병거, 즉 전차의 숫자로 헤아렸다.
육중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전차는 보병들에게 무시무시한 위협이었다. 적국을 향해 세로로 밭고랑이나 논두렁을 낸 농민은 반역죄로 다스렸고, 전차 바퀴의 진행을 막기 위해서 밭과 밭 사이 둔덕을 최대로 높이던 시절이다. 한 대의 전차마다 무장한 군사가 30~40여 명으로, 200승이면 군사만도 5,000이 넘는다는 이야기이다. 도성 임치가 지척이지만 무장한 노나라 군사들을 성안으로 들일 수는 없다. 자고로 성벽 안에 군사를 들이기는 쉬워도 내보내는 것은 어려운 법…, 이튿날 한낮이 다 되어서야 문강이 돌아왔다.
“쩝, 왜 이렇게 늦었소…? 과인이 걱정을 많이 했다오.”
“어젯밤에 술을 좀 과하게 마시는 바람에…, 일어나는 대로 빗질만 하고 나온다는 것이….”
말투는 어색했고 얼굴부터 살짝 붉어져 있었다. 노환공이 아내를 찬찬히 훑어보니 겉옷 예복의 옷자락 솔기가 터져 비어져 보였다. 밤새 무슨 말 못 할 일이 있었구나! 순간 불현듯이 젊은 아내가 늘씬한 다리를 쳐들고 남자와 뒤엉킨 환영이 떠올라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에서 더 이상 어떻게 추궁할 수도 없다. 그는 아내를 곁눈질하면서 차갑게 말했다.
“집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이런 정황을 보고받은 제양공은 당황했다. 이제 노나라와 좋은 시절은 끝났다고 느꼈다. 게다가 간밤에 문강공주와 꿈결 같았던 사랑의 잠자리도 여운으로 남아있었다. 공자 팽생을 불러 노환공 일행을 배웅하게 하면서 별도로 지시를 내렸다.
“늙은 노환공이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구나. 국경을 넘기 전에 적당히 처리하거라. 내가 따로 군사를 보내 도울 것이야.”
팽생은 제양공이 말하는 ‘쓸데없는 고집’이 무언지 알지도 못한다. 다만 지난날 노나라와의 전쟁 때 화살에 맞아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어 노라면 이를 갈던 인물이다.
이튿날 팽생의 안내를 받으면서 노환공 일행은 길을 재촉하였다. 행렬이 오류땅에 도착하자, 촌장과 촌로 몇 사람이 임금을 뵙게 해달라면서 방문했다. 그들은 술과 고기에 떡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왔다.
“임금께서 우리 고을을 지나시니 영광입니다. 하찮은 소찬이나 정성으로 올리니 모쪼록 좋은 기억으로 삼아주십시오!”
원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제(齊)와 노(魯)는 양국 간 사이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에, 듣기에 따라서는 의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워낙 건네는 말씀이 은근하고 음식도 의심 살 만한 구석이 없었다. 마침 군대가 머문 들판은, 버드나무 수풀이 우거지고 키 작은 야생화가 셀 수 없을 만큼 피어 있었다. 어디라고 방향 지을 수 없는 먼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물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노환공은 그나마 불쾌한 마음을 위로받고 오류 땅에서 숙영하기로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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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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