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누구를 위하여 농심(農心)에 비수를 꽂나

안재휘의 시시비비 / 안재휘 기자 / 2026-09-30 14:13:34
경자유전(耕者有田), 산업화 이후 교조적 적용 시대착오적
이승만 농지개혁은 성공, 북한 토지개혁은 ‘국가 수탈’로 끝나
‘교각살우’의 어리석음,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만행
검증 없이 마구 던진 돌 하나에 힘없는 개구리는 꼼짝 못 하고 맞아 죽어
경북도의 ‘농업 대개조’ 같은 정책 벤치마킹하는 게 백번 타당

 

▲ 피폐한 농촌을 상징하는 농촌 빈집 풍경 -(사진은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한덕문의 아버지는 스스로 부지런히 일해서 논 스무 마지기를 장만했으나 구한말 탐관오리로부터 동학 가담 누명을 쓰고 열세 마지기를 빼앗긴다. 아들은 술과 노름, 빚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본인 길천에게 남은 논과 산까지 팔아넘긴다. 그는 언젠가 일본이 패망하면 그 땅이 당연히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일본인 소유의 땅이 국가 재산으로 귀속돼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 버리자 한덕문은 크게 분노한다.

 

근대 한국문학의 거장 채만식의 ‘논 이야기’라는 제목의 단편소설 줄거리다. 채만식은 언론인으로 활약하면서 특유의 풍자와 냉소, 그리고 판소리 사설조의 만담형 문체로 일제강점기 현실의 모순과 비극을 묘파하는 명작들을 남겼다. 그의 문학은 식민지 치하에서 지식인들이 겪는 내면적 분열과 사회적 무력감을 고발하는 데서 출발한다. 소설 속 ‘일본인 소유 땅 국가 재산 귀속’은 이승만 대통령이 단행한 농지개혁법(農地改革法)의 주요 내용과 연계된다.

 

농지개혁법, 농촌을 소작농에서 자영농 구조로 바꿔 놓아

 

이승만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 ‘유상매입·유상분배’ 원칙의 이 법은 1949년 6월 21일에 제정됐다. 농민들은 평년 수확량의 150%(연 30%씩 5년간)를 지가로 상환했다. 지주에게는 땅값의 150%에 달하는 지가증권을 발행하여 5년간 분할 보상했다. 이 개혁으로 소작농이 대부분이던 농촌이 자영농 구조로 바뀌며 비로소 농민이 경작권을 갖게 됐다. 이때 지주들이 받은 지가증권이 훗날 산업자본으로 전환돼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은 6·25 전쟁 당시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 내부 방어선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북한은 이보다 먼저 개혁을 단행했다. 북한은 남한에 앞서 1946년에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토지개혁을 시행해 지주계급을 분쇄했다. 하지만 농업 협동화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도 국가가 다시 토지를 통제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은 ‘집단농장화’가 자리 잡았고, 남한은 ‘자작농 중심의 사유제’를 정착시켰다.

 

농촌 공동화·소멸 문제가 비 영농인 농지 소유 때문?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많은 나라에서 토지개혁의 일환으로 채택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소작을 금지하는 당연한 원칙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121조에 명시돼 있다. 기본적으로 옳은 개념이지만 산업화 이후 세상이 크게 달라진 지금은 이 원칙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접근이 아니다.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풍조 속에 피폐해져 가는 농촌의 문제를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오늘날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 불러오고 있는 농촌소멸 문제가 비 영농인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논리로 단정하는 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거나 불순한 접근이다. 농촌 현실을 맑은 눈으로 관찰하는 게 우선이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농촌은 초고령사회에 늘어난 수명으로 연세가 높으신 힘없는 노인들이 겨우 지키고 산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구조다. 잠시만 둘러보아도 농촌 현실의 내막은 금세 다 파악이 된다.

 

‘농지 전수조사’, 농지 매매시장 초토화·농협은 좌불안석

 

정부가 ‘농지 투기’를 바로잡겠다며 시작한 ‘농지 전수조사’로 인한 파문이 격화일로다. 노인들만 살다시피 하는 농촌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 그러다가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농토는 도시에서 먹고살기 바쁜 자식들에게 상속된다. 귀향해 농사를 지을 형편도 아니니 그나마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 임대를 놓을 수밖에 없다. 농촌의 빈집과 많은 토지가 매각을 기다리지만 매매가 여의하지도 않다. ‘농지 전수조사’ 폭풍이 농지 매매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다.

 

몸이 달아오른 건 농민들만이 아니다. 매매는커녕 연일 폭락하는 땅값에 농협이 좌불안석이다. 농지를 담보로 내준 대출이 파탄 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한가위 명절을 기점으로 농촌 민심이 결국 폭발하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뒤늦게 나서서 “상속·이농·고령 등의 사유로 이뤄지는 관행적 임대차나 휴경은 처분 대상이 아니고, 거짓 영농계획으로 농지를 취득해 방치하거나 불법 임대하는 등의 투기 행위에만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나라가 농촌 사유지를 빼앗겠다는 협박으로 들을 여지 충분

 

시작 단계에서 ‘25% 이행강제금’이니, ‘강제 매입’이니 하고 내두른 엄포가 사달의 핵심사유다. 가뜩이나 피폐한 농민으로서는 빈 땅이나 휴경지를 필두로 나라가 농촌 사유지를 빼앗아 가겠다는 협박으로 들을 수도 있는 분위기다. 명분은 일부 농지 투기꾼들을 잡겠다는 것인데, 백번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이렇게 거칠게, ‘헌법상 경자유전’ 같은 선동적 구호를 앞세워서 칼 휘두르듯 해야 할 일인가. 서툴렀거나 음흉한 발상으로 읽힐 수밖에 없지 않나.

 

한마디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거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만행이다. 그게 아니라도 더는 버틸 힘이 없는 농민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할퀴어서는 안 된다. 농산어촌을 디지털 혁신 타운으로 대개조하고, 기존의 소규모 영세 자경 구조에서 벗어나 대규모 기업형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도모하고 있는 경북 지역의 ‘농업 대개조’ 같은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게 백번 타당하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줄 궁리는 도대체 왜 안 하는 것인가.

 

‘동냥은 못 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 옛말 되새겨야

 

‘동냥은 못 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 옛말은 마음에 최소한의 긍휼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경계(警戒)를 뜻한다. 빈사 직전의 농촌, 눈물조차 남지 않은 농심(農心)을 겁박하여 어딘가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억심의 발로인가. 철저한 검증도 없이 마구 던진 돌 하나에 힘없는 개구리는 꼼짝 못 하고 맞아 죽는다. 가뜩이나,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소멸 위기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농촌을 더 이상 벼랑끝으로 내몰지 말라.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