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25화. 전무후무 희대의 스캔들 하희 (1)

인문학 / 김백 기자 / 2026-09-30 08:39:48
한 여인을 둘러싼 군신의 욕망, 비극의 씨앗이 되다
절세의 미인 하희, 진나라 궁정을 뒤흔들다

 

 



초장왕이 천하 제패의 야망을 키우고 있을 때 진(陳)에서는 참으로 민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여자 하나를 두고 군신이 함께 관계하다가 그 때문에 임금이 피살당한 것이다. 여기서 진(陳)나라는 진시황제의 진(秦)도, 진문공의 진(晉)도 아닌, 장강의 남쪽, 초나라와 이웃한 2류 제후국이다.
발단은 하희(夏姬)라는 절세의 여인에게서 비롯되었다. 원래 하희는 정(鄭)나라 정목공의 딸이었다. 그녀는 화사하고 요염한 여인이었다.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여 쉽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미모에다 사내를 충동질하는 매력까지 갖추었다. 제양공이 사랑하였던 문강이나 초문왕의 규희, 진헌공의 여희가 모두 천하의 절색이었으나 하희는 그 위에 남녀 관계의 음란한 비법까지 터득하였다.
그녀는 이런 비법을 정나라 궁중에 있을 때 공자 만(蠻)에게 배웠다. 만은 정목공의 이복동생이었으니 하희에게는 숙부뻘이다. 공자 만은 묘하게 계집 향기를 솔솔 풍기는 하희에게 혹해 남녀 잠자리의 기법을 전수한 지 3년 만에 도리어 양기를 잃고 요절하였다. 참으로 묘한 것은 그렇게 배운 방중술보다, 그녀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였다. 한마디로 굳이 최음제가 필요 없는 향기에다, 관계할 때마다 상대의 기운을 흡수해서 본인의 생기를 채우는 기능을 타고났다.
정목공은 이래저래 소문이 나빠진 딸을 군주에게 시집보내지 못하고 진(陳)나라 공자인 하어숙에게 보냈다. 둘 사이에 하징서라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하어숙 또한 하희의 치명적인 매력에 버티질 못하고, 몇 년 만에 양기가 고갈되어 죽고 말았다. 하희는 아들을 도성인 진주(陳州)성에 두고, 자신은 식읍인 주림(株林)이란 곳에서 살았다. 원래 남자 없이 밤을 지내기 어려운 그녀는 사나흘에 한 번씩 이웃 대부들을 불러 수시로 갈아타는 이른바 환승 연애를 즐겼다.

매실을 던지니 표유매(摽有梅)
남은 열매 셋이지 기실삼혜(其實三兮)
나를 찾는 남정네들 구아서사(求我庶士)
오늘 빨리 오시오 태기금혜(迨其今兮)

공자의 시경 국풍중 소남편 표유매(摽有梅, 매실을 던지니)

‘매실을 던지는’ 행위는 남방의 축제 때 남녀가 어울려 춤을 추면서, 여인이 잘 익은 과일을 마음에 있는 남자에게 던져서 짝을 짓는 민속놀이이다. 당시만 해도 엄격한 공선생, 공자가 활약하기 이전이라 여인이 스스로 자신의 상대를 지목하는 일도 흔했다.
그녀의 농익은 몸매와 향기는 사내의 욕심을 부추기에 충분했다. 알음알음 소문이 퍼지자 이웃 토호들은 서로 먼저 미인 공주를 안아보려고 아주 난리가 났다. 하희의 집에는 그들이 보내는 선물이 줄을 이었고, 걸핏하면 병사들을 동원하여 싸움판이 벌어졌다. 그날도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 싸우고 있는 대부들을 보면서 계집종이 하희에게 물었다.
“마님은 어느 쪽이 이기기를 바라십니까?”
하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혼자 배시시 웃었다.
“호호호, 사냥터에서 매를 풀어놓는 것은 사람이지만 태깔 좋은 장끼가 잡힐지 통통하게 살찐 까투리가 잡힐지는 모르는 법이다.”
욕망에 불타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만큼 자극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남자들은 결코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녀와 몇 날 며칠, 땀을 교환한 남자들일지라도, 그들의 만남이 어디까지 이어지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어떤 경우든 그녀가 주도권을 잡고 결정을 내렸다. 남자는 자신에게 다소곳한 여인보다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예쁜 악마에게 마음이 끌리는 법이다. 하희는 자신의 느낌대로 남자를 선택하고, 그 정기까지 흡수하여 더욱 젊고 요염하였다.
당시 진(陳)의 임금은 진영공(陳靈公)으로 국사는 뒷전이고 여자 편력에 열중하는 호색한이었다. 이런 진영공의 신임을 받는 신하 중에 공영(孔寧)과 의행보(儀行甫)라는 두 사람의 대부가 있었다. 당연하게 그들도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임금에게 빌붙어 아부를 일삼는 족속이었다. 이번에는 공영이 한 걸음 빨랐다. 그는 옛 친구의 아들인 하징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가 자연스럽게 주림을 찾았다. 의도한대로 그날 밤은 하씨가에서 묵게 되었다. 재채기와 연모는 숨길 수 없다고 한다. 남녀는 서로 인사를 나눌 때부터 은근히 눈치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였다. 밤이 되자 술상이 나왔고, 결국 그날 밤 공영은 하희를 안게 되었다.
남자는 깜빡 이제까지 살아온 세상이 부질없었다고 여길 만치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어느샌가 부옇게 날이 새고 있었다. 주섬주섬 도로 손님방으로 건너오면서 여자가 벗어놓은 비단 속옷을 슬쩍 집어 들고나왔다. 진주성으로 돌아와서는 속옷을 친구에게 내보이면서 자랑하였다. 의행보는 쩝쩝 입맛만 다셨다.
며칠 후, 이번에는 의행보가 주림에 나타났다. 그는 패물과 보석부터 들이밀었다. 그런데 사실은 여자는 여자대로 전부터 의행보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근육질의 몸집에다 특히 매부리코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속설에 코가 크면 남자의 힘이 강하다는 말이 있어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웬걸 그가 사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타난 것이다.
과연 의행보는 평생토록 익힌 기교와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 하희는 생전 처음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깜빡깜빡 새로운 환희를 절감하면서 어떤 두려움마저 느낀다. 고삐를 챌 수 없도록 날뛰는 수말의 헐떡이는 호흡을 감당하며 다리를 치켜들었다. 그녀는 남자의 허리를 끊어지라고 움켜잡았고, 그럴수록 남자는 외곬으로 움직였다. 일렁대는 파도가 밀려갔다가, 다시 또 덮쳐오는 격렬함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그때 의행보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하희의 몸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이어서 반딧불처럼 간헐적으로 깜빡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빛은 발그레하고 밝았으며, 그 느낌은 은근하고 잔잔하였다. 멀리 뻗치지는 않았고, 실시간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여인의 나신은 발광체가 되어 투명한 분홍빛으로 아롱거리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신음과 교성을 토해낸다. 마치 소리의 안개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의행보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 광경을 보며 깊이 희열하였다. 남자는 땀을 흘렸으나 숨을 헐떡이지 않았고, 상대의 땀 냄새를 편안하게 느꼈다. 그는 오랫동안 여자의 머리카락 속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AI 생성 이미지


그날 이후로 의행보는 주림 출입이 잦아졌다. 공영도 쉬지 않고 주림을 들락거렸으나 하희는 의행보의 연락이 있는 날은 공영을 못 오게 말렸다. 공영은 질투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한 가지 극약 처방을 생각해 냈다. 임금 진영공은 습관적으로 계속 상대를 바꾸는 사람이다. 그도 오래전부터 하희가 미인이면서 몸이 특별한 여인이란 소문을 듣고 있었다. 공영은 넌지시 임금에게 하희를 소개했다. 절색의 미모에, 반들거리는 눈동자하며, 무엇보다 관계하는 남자를 죽여준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과연 임금은 푸줏간의 정육 냄새같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과인도 하희라는 계집이 꽤 쓸 만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암만 그렇더라도 나이 서른이 넘었다지? 이제 그런 노파 이야기는 그만두게나.”
“나이가 대수겠습니까? 그녀는 보통 여자들과는 기가 막히게 다릅니다. 우선 보기에도 앳되고 청순하여 어린 소녀같이 여리기만 합니다. 주군의 땅에 있는 이런 명품을 그냥 두고 보시렵니까?”
‘명품’이란 말에 임금이 부쩍 호기심을 보였다. 인간의 수컷만치 암시적 꾐에 약한 동물도 없다.
“흠! 흠! 참으로 그렇다면 어디 한번 경이 주선해보시라.”
며칠 후 진영공은 주림 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짐승을 쫓으면서도 생각은 몸이 신비하다는 하희에게 가 있었다. 드디어 날이 저물자 서둘러 하씨 저택으로 행차하였다. 여인은 이미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귀한 손님이 도착하자 하희는 예복을 입고 영접했다. 여자는 임금을 대청 높은 자리에 모시고 날아갈 듯이 절을 올렸다. 하얀 손바닥 언저리까지 내려온 끝동 소매가 푸른 하늘을 뚝 떼어다 놓은 것처럼 곱다. 은근히 눈을 내리깔았다가 슬쩍 고개를 들어 남자를 살피는데 검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눈빛이 반짝 빛났다.
“신첩의 자식은 도성에서 공부하는 탓에 오늘 귀하신 행차를 모시지 못했나이다.”
여인의 목소리는 봄의 신록 속에서 꾀꼬리가 노래하는 듯하였다. 진영공은 슬쩍슬쩍 곁눈질로 여인의 모습을 감정했다. 그녀는 살결이 은은히 비치는 얇은 옥색 비단 저고리를 입고 다시 그 위에 매미 허물같이 얇은 홑저고리를 걸쳤다. 도톰한 살이 접히는 겨드랑이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옷이었다.
실제로 1973년 초나라 땅이었던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여인의 미이라는 멋스러운 홑저고리를 열두 겹이나 껴입고 있었다(BC 100년경). 속이 엷게 내비치는 홑저고리나 홑치마를 겉옷 위에 걸치는 것은 당시 신분 높은 여인들의 패션으로서 《시경》에도 등장한다.

저고리에 비단 홑저고리 걸치고 의금경의 (衣錦褧衣)
치마에 비단 홑치마 걸치다 상금경상 (裳錦褧裳)
늙거나 젊거나 사내들이여 숙혜백혜 (叔兮伯兮)
수레에 나를 태워 함께 가주오 가여여항 (駕予與行)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정풍(鄭風)편, ‘봉(丰, 예쁜 그대)’

몇 번이고 거듭되는 이야기지만, 왕실의 퇴폐적인 문화가 성행한 정(鄭)나라는 음란하고 노골적인 가락이 많았다. 그래서 야한 노래를 정풍(鄭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홑저고리 홑치마로 한껏 멋을 낸 여인이, 권력의 상징인 수레 탄 사내를 보고 젊거나 늙었거나(叔兮伯兮, 숙혜백혜) 상관없으니 나 좀 태워달라는 설정이 어쩐지 오늘날 야타족과 닮았다.
하희의 성숙한 몸은 옷자락에서부터 관능적인 향기를 슬쩍슬쩍 풍긴다. 임금은 소년처럼 얼굴을 붉혔다. 평소 익숙하던 달짝지근하면서 풋내나는 냄새가 아니라, 끈끈하고 야릇한 향기, 사내를 달뜨게 하는 냄새였다. 진영공도 여인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터라, 그녀의 열두 폭 치마 속에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 있음을 눈치챘다. 확실히 무언가 남다른 구석이 있기는 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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