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13화 입 달린 사람마다 비웃었다

인문학 / 김백 기자 / 2026-08-15 11:34:09
홍수 전투의 비극과 송양공의 고집스러운 인의
인의를 고집한 패자의 몰락, ‘송양지인’의 탄생

 


제환공이 죽고 후계문제로 시끄럽던 제나라는 그럭저럭 수습되고 있었다. 송나라 임금 송양공의 도움으로 세자 소가 즉위하여 제효공이 되었다. 혼란을 수습한 송양공은 천하 대사를 해결했다는 자부심에 빠졌다. 그는 제환공의 뒤를 이어 중원의 패자가 될 꿈이 있었다. 이때가 송의 전성기로서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라는 말마따나 떵떵거리던 시절이었다.

천하 패자의 패러다임은 제환공이 길을 터 두었다. 회맹을 열어 열국의 추대를 받으면 된다. 송양공은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군위에 올려준 제효공과 남방의 맹주 초(楚)를 초청했다. 이때 초(楚)는 식나라 부인이었던 규희가 낳은 초성왕의 시절이다.

제나라 녹상 땅에서 세 정상이 만났다. 이 자리에서 송양공은 3국이 공동으로 열국을 초청하여 천하 회맹을 열 것을 제안했다. 그의 계획은 우선 회맹부터 열어놓고, 분위기를 잡아 자신이 방백의 자리에 오르려는 속셈이다. 의외로 초성왕은 쉽게 승낙하였다. 그에 비해 제효공은 송양공이 자신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태도에 심사가 뒤틀려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송(宋), 초(楚) 두 나라의 명의로 천하 회맹의 초청장이 발송되었다.

마침내 이듬해 봄에 송나라 우(盂) 땅에서 정식으로 회맹이 열렸다. 송, 초, 진(陣), 채, 허, 조(曹), 정(鄭)까지 일곱 나라의 군주가 모였다. 참석자의 면면으로 보면 그럭저럭 천하 회맹의 외양은 갖추었다. 아쉬운 것은 제(齊)가 빠진 것이었다. 전날 녹상 땅에서 삐친 제효공은 결국 참석하지 않았다. 첫술에 배부른 일이 어디 있을까? 송양공은 마음을 다잡고 자못 엄숙하게, 회합을 주관했다.

“오늘 모임은 방백 제환공의 유지를 받들어 왕실을 보위하고 천하를 태평케 하고자 함입니다. 다들 동의하시겠지요?”

그런데 이런 의례적인 질문에 누구 한 사람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초나라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초성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험, 험! 참으로 좋은 말씀이오. 그런데 맹주는 누가 되는 거요?” 송양공은 어리둥절해졌다. 오늘 회합을 준비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당연히 맹주가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야! 작위로서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좋은 말씀이요. 과인도 찬성이요. 과인은 왕이고 송나라 군주는 벼슬이 공작이니 과인이 이번 회맹을 주관하겠소!”

그러더니 가운데 맹주 자리로 가서 턱 걸터앉아버렸다. 송양공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턱밑 수염이 덜덜 떨렸다.

“이 몸은 대대로 왕실로부터 공작의 작위를 제수받았소. 초나라 군주가 받은 관직은 고작 자작에 불과하잖소?”

“누가 자작이라는 게요? 과인은 초나라의 대왕이요.”

“어찌 가짜 왕이 진짜 상공보다 앞설 수 있겠소?”

제후들이 이렇게 작위의 문제로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주변이 술렁거렸다. 초성왕을 따라온 시종들이 하나씩 겉옷을 벗어 던지는데, 그 안에 갑옷을 껴입고 있었다. 보따리에 숨겨둔 창칼까지 꺼내 들었다. 원래 회맹에 참석하는 군사는 비무장이 원칙이다. 이를 몸으로 막아서던 송의 시위 몇이 단박에 언월도에 목이 잘려 나갔다. 바람결에 분수처럼 사람의 피가 흩날린다. 순종으로 살아온 그들이지만 피 냄새는 역하게 진하고 비렸다.

제후들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채 꼼짝없이 포로가 되었다. 초성왕은 전령 비둘기를 날려 국경에서 대기 중인 군사를 불렀다. 병거 500승이 도착할 때까지 사흘이 더 걸렸다. 초나라 군사는 송양공을 뒷결박으로 묶어 수레에 태우고 수양성을 향해 진격하였다. 군주가 사로잡힌 것은 본 송군은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초성왕이 성루를 올려다보면서 소리쳤다.

“너희 임금을 풀어준다면 너희는 무엇을 주겠느냐?”

성을 지키는 공자 목이(目夷)는 송양공의 이복형이다. 그는 나름 마음의 준비가 있었다.

“비상사태를 맞아 내가 대신 임금 자리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내가 송의 군주이다. 폐주를 살려주고 말고는 마음대로 해라.”

분통이 터진 초성왕은 즉시 공성을 명령했다. 하지만 성벽이 높고 두터운 수양성은 만만하게 볼 곳이 아니었다. 둘레둘레 굽이가 많아서 치기는 어렵고 지키기는 쉬웠다. 당시는 공성 장비라야 성벽에 걸치는 사다리와 방추차(紡錘車, 통나무 수레) 정도가 고작이었다. 공성용 망루나 투석기, 원거리용 활 같은 무기는 모두 후대의 작품이다. 내리 사흘을 공격했으나 피해만 늘어갔다. 고심 끝에 초성왕은 노(魯)나라에 중재를 부탁했다. 다시 열린 회맹의 자리에서 노희공이 말했다.

 

▲AI 생성 이미지


“자고로 회맹이란 화합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제라도 당장 송공을 풀어주고, 여타 제후의 안위를 보장한다면, 우리 노(魯)도 초나라를 맹주로 추대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회맹이 끝이 났다. 가까스로 풀려난 송양공에게 이복형 목이가 사람을 보내왔다.

“그동안 섭정한 것은 임시방편이었습니다. 빨리 돌아오십시오!”

이런 걸 보면 송양공은 그런대로 인덕은 있었다. 다시 군위에 복귀했으나, 위신을 최고로 치는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해가 바뀌자 본격적으로 정(鄭)나라 정벌 군사를 일으켰다. 정문공은 우(盂) 땅 회맹에서 적극적으로 초성왕을 편든 전력이 있다.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초성왕도 출병하였다.

양군은 홍수(泓水)를 경계로 서로 대치하였다. 지금이야 봇도랑 같은 소하천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 마장이 넘는 강폭에다 물도 많았다. 겨우내 얼었다가 막 풀린 강이라 칼날같이 차가웠다. 어제오늘 때아닌 추위에 초군은 오금을 펴지 못했다. 바람 소리가 스산하더니 진눈깨비까지 뿌린다. 왕은 선전포고문을 보냈다.

“…송나라 군주는 그간 별고 없으신지? 우(盂) 땅 회맹의 맹세가 어제 같은데, 이리 이웃을 침범하니 평소 의기는 저버리신 것이요? 내일 오시에 홍수 벌판에서 한바탕 우열을 가리기를 청하오!”

이 시절의 ‘전쟁의 룰’이 원래 그랬다. 선전포고하고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전투 대형을 갖춘 뒤에 싸움을 시작해 그날 중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게임의 원칙’이었다. 마치 스포츠 같이 서로 원칙은 지킨다는 인식 또한 확고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실제 싸움에서는 교활한 속임수도 예사로 쓰이는 법이다. 이 경우가 그랬다. 상대의 순진한 결기에 기대어 강부터 건너놓고 보자는 심산이다.

날이 밝자 초군은 거룻배 수십 척으로 부교를 만들고 차근차근 병력과 군수를 강 건너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송의 진영에는 대사마 공손고가 있었다. 공손고는 진(秦)의 공손지와 더불어 당대에 손꼽히는 명장이다. 적의 동태를 보더니 부리나케 임금을 찾았다.

“주군!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지금 공격하면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기는 싸움입니다.”

송양공은 인의(仁義)라고 쓴 큰 깃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사마는 저 글이 보이지도 않느냐? 들판에서 싸우자고 약속해놓고 어찌 강을 건너는 적을 비겁하게 공격할 수 있겠는가!”

초성왕의 예상은 보기 좋게 적중하였다. 이래저래 적의 본대가 도강을 완료하기까지는 반 각이 더 걸렸다. 그동안 송의 군사는 강기슭에 포진한 채 적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초군은 이제 완전한 진세를 잡았다. 사나운 말들은 기세 좋게 코 투레질을 하고 땅바닥을 긁어댔고, 날 선 창칼이 햇살을 받아 번쩍번쩍 빛났다.

그제야 송양공은 고동을 불고 큰북을 치게 하였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송양공이 거대한 강궁을 들더니 한껏 시위를 당겨 적진을 향해 효시를 날렸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적진 가운데 떨어지자 군사들이 ‘와아’ 함성을 질렀다.

“쳐라! 적을 쳐라! 무찔러라!”

송양공의 융거 주위로 창을 꼬나 잡은 장수만도 열둘에다 근위병 3천이 서슬 푸르게 따라나서는 기세가 대쪽을 쪼개는 듯하였다. “돌격! 돌격!”

그에 비해 초성왕은 찢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전투에서 ‘승리’는 찰나의 타이밍에 달렸다. 드디어 적이 발치까지 다가오자 한차례 큰 북소리와 함께 진문이 활짝 열리더니, 돌진해 들어오는 송의 군사들을 그대로 삼키고 조가비같이 날름 입을 닫아버렸다.

곧이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엄청난 짱돌이 쏟아졌다. 돌팔매질은 가장 빠르게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수단이다. 원래 이를 정식 전투에 도입한 사람이 바로 초성왕이다. 그는 활줄을 당기는 동작도 없이 바로 적을 때리는 돌팔매질에 주목했다. 상대를 죽일 수야 없겠지만, 일순 당황케 하고 때로 얼굴을 가격해 전의를 상실케 한다. 《사기》에서는 이를 몰두전(沒羽箭, 깃 없는 화살)이라고 불렀다. 송군은 엉겁결에 터지고, 찢기고, 상처를 입었다.

초군은 송나라 군사들을 이리저리 내몰면서 멧돼지 사냥이라도 하듯이 얼러댔다. 원을 그리며 앞뒤로 뒤바뀌는 차륜전으로 진을 뽑을 작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과 군마의 죽음이 첩첩이 쌓여갔다. 후위에 있던 공손고도 바로 사태를 알아차렸다. 그는 긴 창을 휘두르며 적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헐떡이는 가쁜 숨소리, 청동검과 청동검이 마주치는 울림소리, 고함에다 단말마의 비명, 주인을 잃은 말의 울음소리, 악머구리 끓는 전장에는 깃발, 무기, 시체, 그리고 무수히 잘려 나간 손발이 순식간에 사방에 널브러졌다.

공손고는 이리저리 눈을 휘번득이며 임금을 찾고 있었다. 맞바람에 눈보라가 그의 투구 창에 하얗게 들러붙었다. 저편 언덕 아래서 송양공의 수레가 보였다. 인(仁), 의(義), 두 깃발은 찢기고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임금은 다리를 다친 데다 적의 차륜전에 말려 있었다. 공손고는 주군을 자신의 병거에 옮겨 태우고 포위를 뚫고 나갔다. 그의 혼철창은 허공을 가르며 화살들을 쳐내기 바빴다. 시위 군사들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과 창날을 몸으로 막아댔다.

차가운 강바람에 싸락눈을 흠뻑 뒤집어쓴 송나라 군주가 전장을 벗어난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난 시점, 싸움은 2각이 채 못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송군은 대패하고 수천 명이 죽거나 상했다. 주인 잃은 말들이 갈 곳 없이 털레털레 서성거리고, 덜 죽은 부상자들은 눈을 부릅뜬 채 헐떡거린다. 초성왕은 이런저런 광경을 굽어보면서 쯧쯧 혀를 찼다.

“쫓지 말고 그냥 두어라. 과인도 인의(仁義)를 아는 몸이다.”

송양공은 낮과 밤을 꼬빡 달려 수양성으로 향했다. 자식을 전장에 보낸 백성들이 성 앞에 몰려들어 대성통곡하였다. 송양공이 탄식하듯 말했다.

“군자는 대열을 갖추지 못한 적을 향해 북을 울리지 않는다. 그게 인의(仁義)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인의를 이야기하다니, 소문을 듣고 백성들은 기가 막혔고 세상은 송양공을 비웃었다. 송양지인(宋襄之仁, 송양공의 인)은 유치하고 고지식한 일종의 이상주의적 몽상가를 비웃는 고사성어가 되어 오늘까지 남았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백 / 편집국장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