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1363)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0-08-25 01:40:19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이다.

의사 면허증을 불태워도 면허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제 밥그릇을 제가 지키는 그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거기에도 '정도껏'이라는 윤리가 있다.

▲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1363)

 

오늘은 처서(處暑)이다. 처서(處暑)는 일 년 이십사절기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는 절기이다. 더위에 지칠 만큼 지치고 나면 한 번쯤 챙겨 보는 게 처서이다. 가을이 기지개를 켠다는 입추(立秋)와 이슬이 서리를 흉내 내 흰색을 띠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 절기 사이에 들어 있는 게 처서이다. ()’ 자의 새김() 중엔 그치다는 뜻도 있어 더위가 그친다는 절기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모기도 사라져간다. 올해는 긴 장마로 모기를 별로 못 봤다.

 

처서는 더위()가 그친다()’는 글자 그대로 더위가 물러가는 날이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라 한다. 칠석에 음양을 맞추었다면, 처서 시기에는 숙성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태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지만 햇살은 땡볕처럼 왕성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에 장벼 패듯이란 표현은 무엇이 한꺼번에 흥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처서 무렵 빠르게 성장하는 벼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벼뿐이겠는가? 이 시기의 만물은 외적 번성보다는 스스로 내적 성숙을 지향하기 시작한다. 농가에서는 어정 칠월, 동동 팔월또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고 한다. 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리고, 팔월은 추수 일손이 바빠 발을 동동 구른다는 의미와 그래도 추수는 건들거리며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고, 산소에 벌초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처서에 비는 도움이 안 된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우[處暑雨]’라 하는데, 비가 오면 십 리에 천석 감 한다거나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고 했다. 처서에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리고, 선비는 책을 말린다는 풍속은 처서를 맞는 의례였다. 이처럼 선인들은 선선한 바람이나 따가운 햇볕으로 눅눅해진 주변을 말리며 힐링의 계절 가을을 맞았던 것이다.

 

처서의 바람을 즐길 겸, 오늘 아침은 일찍 주말농장에 나갔다. 오늘은 거기서 만난 달맞이꽃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많은 가수들이 부른 <달맞이꽃>이란 노래를 시 대신 공유한다. 이 노래는 여러 가수들이 불렀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이번 주말에는 가급적 집에서 머물라는 방역 당국의 부탁도 있으니 공유하는 유튜브로 이 노래를 듣는 여유를 즐겼으면 한다.

 

https://youtu.be/2cQVsN-6BEc

 

달맞이꽃/지웅 작사, 김희갑 작곡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한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 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이 노래를 들으며, 오늘 아침도 매 일요일마다 만나는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최근에 새롭게 등장한 사회 트렌드가 젊은 노인이라 불리는 욜드(YOLD)’. (young)과 올드(old)의 합성어인데 의료기술의 발전과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이전 노인세대보다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경제적 여유를 가진 계층을 의미한다. 통계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며 고령으로 분류되는 65세부터 75세 사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20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2020년은 욜드 시대의 시작을 알릴 것이라고 비중 있게 다루면서 퍼진 말이다. (정무경 조달청장)

 

마을공동체 <우리마을대학>을 준비하면서, 내가 아는 마을 활동가의 페북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정부가 만든 디지털 그린 뉴딜의 실천 전략은 대량의 소비자를 만드는 정책 말고, 일상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작게, 더 작게, 로컬에서, 동네에서 같이 하는 힘으로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조지영, 대전혁신센터)

 

현대 경쟁 사회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삶의 작동 기제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이다. 올림픽에서 외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찾거나, 더 높은 성공의 열차에 타려고 발버둥 친다. 과학 기술도 기하급수적인 속도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더 먼 데까지 새 물건을 갖고 달려가기 위해 경쟁한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그 반대에 있다.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가까이세상과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소외된 자리를 향하는 연민의 마음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는 일이고, 느긋하게 자신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일이고, 세계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친화력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사회에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선진 사회가 된다.

 

미래자치분권연구소 유창복 소장의 발표를 인터뷰로 여러번 들었다. 우리 마을대학이 추구하는 실천 전략이다. 언텍트가 아니라 로컬텍트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안이 지역사회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뀔 때 문제가 해소된다. 이런 주장이 유소장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로 언택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비대면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원거리 이동이 위험하고,

사람이 많이 함께 모이는 것이 위험하고,

익명으로 만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이다. 익명이 위험한 이유는 전염이 이루어진 수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비대면 사회가 지속되면 우리가 사회를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비대면 사회 속에서 없는 사람은 그만큼 더 힘들다. 그 대안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근거리 이동하고,

분산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만족되는 곳이 곧 동네 골목, 즉 로컬이라 생각된다. 그래 우리가 하려는 마을 공동체 <우리마을대학>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제는 언텍트가 아니라 로컬텍트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로컬 회복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회복력이란 위기나 재난이 발생해도 로컬해서 힘을 합해 그럭저럭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이런 회복력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과제이다. 재난의 일상화 시대, 지방정부가 이니셔티브와 혁신을 가지고 지역사회 시민의 문제를 직접 바로 해결해내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 중앙 정부에만 기대서는 이젠 안 된다.

 

의사 면허증을 불태워도 면허는 평생 사라지지 않는다. 제 밥그릇을 제가 지키는 그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거기에도 '정도껏'이라는 윤리가 있다. 집단 휴진을 파업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파업(단체행동권)은 노동자의 노동 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다. 자영업자 또는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벌이는 집단행동에 갖다 붙이라고 만든 이름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죽거리는 웃음이 싫은 전** 때문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교회에 다니며 가족 위해 기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교회는 노년층에게 종합 엔터테인먼트이자 주술성을 기반으로 한 도시 공동체 같은 공간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주술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누구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기도와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이뤄질 거라고 확신한다. 이 맹목적인 희망이 작은 도시의 노인을 묶는 강한 끈이다. 그리고 일부 노인들은 교회의 엔터테인먼트에서 자아실현을 꿈꾼다. 이외에도 교회에서는 무슨 퀴즈대회, 야유회, 전 교인 친목대회, 전도대회 등 자식을 서울로 보낸 노년층이 즐길 수 있는 많은 놀 거리가 있다.

 

일상에서 우리 60대 이상에게는 놀 거리와 즐길 거리가 너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트로트 열풍의 주역이 오팔 세대라고, MZ 세대급 신흥 소비층이라고도 하지만, 그것도 서울 중산층 이상의 이야기이다.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60대에게 유일한 즐길 거리는 TV, 놀 거리는 산책이다. 이 두 가지에선 사람을 만나 교감하기 어렵다. TV에는 잘 모르는 유행어들이 나와 이해가 안 되고, 산책을 하자니 마스크가 답답하다. 여전히 스마트 폰은 어려운 물건이다. 1년에 두어 번 오는 자식이 한 게임 맞고나 포커를 깔아줘야 스마트폰의 유용함을 겨우 깨닫는다. 60대 이상은 교회에 다녀서 인생이 조금 더 즐겁다. 즐겁게 대접받는 공간에서 그들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감사헌금을 한다.

 

8,15 광장을 이상하게 보면 안 된다. 교회가 삶의 탈출구, 해방구가 된 이들에게 교회의 명령은 곧 법이다. 그들이 집회에 나가는 논리는 이렇다. 교회의 명령을 어길 수 없고, 교회 말을 따르는 게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며, 하느님을 따르는 게 내 자식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집회로 몰려갔던 것이다.

 

문제는 극우 개신교가 외치는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 공산화된다.” “문재인 빨갱이란 말들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부 극우 개신교는 공포심을 조장해 어른 신도들을 두렵게 만든다. 그저 7080 반공 국가, 독재 정권의 망령이 아닐까? 추정한다. 빼 속까지 세뇌되어 있다.

 

빨갱이를 몰아내면 대한민국 지킨다는 말처럼 주술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없고 실체도 없는 희망만 가득한 말이다. 이 주술성이 무속신앙처럼 돼 버린 한국 개신교와 맞물려 반공 정서가 한국 개신교를 지배하고 있다.

 

왜 이 시국에 방역 당국의 지침을 거스르고 집회를 열었을까? 다음 셋 중에 하나 아니면 전부일까? 빨갱이를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을 성토하기 위해서, 헌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교회 다니며 그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며 당장 나 먹고 살 돈은 없어도 자식 이름으로 헌금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가난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게 되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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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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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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