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재소설-은애숙] 조 씨 할머니 -③끝 |
나는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몸이 달았다. 조 씨 할머니가 내 마음을 짐작한 듯 중국 남자와 살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국사람 집에서 삼 년간 살았지. 그 남자와 사는 동안 딸아이를 낳았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는 말 대로 난 살아남았어. 위안소에 있었다면 병들어 죽거나 자살해 목숨을 끊었을 테지. 우연히 장마당에 무언가 사러 나갔다가 일본이 전쟁에 져 군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갈 거라는 소문을 듣게 됐어. 그때 번개 치듯 내 머릿속에 좋은 묘책이 떠올랐지. 남자가 잠든 틈을 봐 멀리 달아날 생각을 했어. 청명절이라고 들어봤나? 중국사람들은 그 날 조상에 성묘하고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하지. 따뜻한 봄기운이 도는 그때를 틈타 달아날 기회를 잡았지. 만주엔 사방으로 철도가 놓여 있었지. 딸애를 떨쳐내고 중국 남자의 돈을 훔쳐 달아날 생각만 했어. 심장에 철갑을 둘렀으니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지.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어. 그때 내 나이가 스물 서넛 됐을 거야.”
삶의 굴곡진 상처를 온전히 간직한 할머니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상념에 잠긴 듯 느껴진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듯 눈을 지그시 치떠 어딘가를 바라본다.
“세월이 이리 많이 지났건만 가끔 중국 남자가 생각나. 날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자 딸아이의 아빠인 그 사람이······. 순하디순한 딸이 잠드는 걸 보고 뛰쳐나왔는데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더구먼. 고향 집은 변함 없었지만, 고향 인심은 많이 달라져 있었어. 우리 엄니, 냉정하게 내뱉더먼. 하루아침에 손발을 잃고 나니 아무 정신 웂다구. 우리 엄니, 날 보구 말하더먼. 메칠 속 끓였더니 근력두 웂다구. 엄니 심정, 워땠겄냐구 하더먼.”
걸쭉한 목청으로 넋두리를 해대던 조 씨 할머니가 예전의 말투로 알기 쉽게 말해주었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게 됐지. 물설고 낯선 만주 땅에서 뭔 일을 당한 줄 아느냐고. 밖으로 나돈 계집이 온전할 리 있느냐고. 엄마가 그러더군. 먼 곳으로 시집을 가야 처녀 행세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찍소리 못내 보고 시집간 거야. 혼례도 올리지 않고 시댁으로 들어가 살게 됐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데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흐느껴 울었어. 사지로 죽으러 가는 어미 소마냥. 친정이 가까워야 못 살겠다고 고시랑거리지. 달리 숨통 댈 데 없어 한심하게 살았구먼. 한 번 꼬인 팔자는 영원히 펴지지 않나 봐. 막상 시집에 들어가니 형편이 말이 아닌 거야. 조석으로 시래기와 우거지 찌개만 먹었어. 점심은 굶었나 보죠? 내가 묻자 할머니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점심이란 게 있기나 했나? 밀기울밥이라고 처음 들어 볼 게야. 밀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솥 바닥에 밀기울을 깔고 밥을 하면 풀기 없는 밥이 돼. 그 밥이라도 원 없이 먹었다면 좋았을 텐데.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남편이 곰살맞게 굴었다면 그런대로 살만했을 거야. 사람 들볶고 갈구는 데는 일등 신랑이었거든. 신랑은 밤낮없이 일에 매인 나를 쓰잘머리 없는 사람마냥 대했어. 긴긴 세월 지나고 나니 황가라면 넌더리가 나! 어디 넌더리만 날까! 입이 뒤통수로 돌아가도록 귀싸대기 올려붙이고 싶은 맘이 드니까.”
할머니의 달변에 빠져들어 넋 놓고 듣느라고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조 씨 할머니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 늙은이가 젊은 사람 붙잡고 주책 부린 거 아닌가, 미안하네.
조 씨 할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와 멍하니 있는 나를 보자 남동생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뭔 술을 낮부터 먹고 해롱거리느냐고. 감미롭지는 않지만 말의 진정성 때문에 나를 감동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던 할머니의 특별한 삶이 나를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느 장면은 애간장을 녹일 듯 슬픔으로 다가와 나를 눈물짓게 하고, 또 다른 장면은 미칠 듯한 분노로 날 사로잡는다. 그녀를 유린한 남자들이,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남자들이 한 덩어리가 돼 욕망의 눈길로 내 몸을 훑어보다가 한 순간 사라진다.
‘인권은 투쟁 속에서 얻어지는 정치적이고 역동적인 가치’라고 한다면 투쟁할 힘조차 갖지 못한 약자들의 인권은 무시하고 유린해도 된다는 말인가?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문명의 꽃을 피운 로마, 값싼 상품으로 팔려 죽을 때까지 혹사당해야 했던 아프리카인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이 떠오른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적부터 타 집단의 사람들을 학대하고 고통을 가하면서 자기 자신이 야만적이란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구제 불능의 존재란 말인가. 로마세계의 유산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대인들이 종종 망각하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로마 문명의 휘황찬란함 속에 숨겨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일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로 알려진 역사적 인물 카이사르ㆍ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시작한 인물인 크라수스가 더없이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사람임을 알고 난 뒤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부를 소유했던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하게 재산을 축적했음을 알게 되었다. 부하에게 불을 지르게 한 뒤 불탄 집을 값싸게 사 다시 짓는 짓거리를 했다지. 불탄 집에 남아 있던 시체를 미처 꺼내지 못했는데 빨리 집을 지으라고 성화를 부렸다니······. 스파르타쿠스로 알려진 트라키아인을 따르던 노예군 수백 명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명한 크라수스. 그에겐 죽어가는 노예들의 신음이 승리를 이룬 자신의 위대함을 추앙하는 소리로 들렸을까? 그는 아마도 황홀감에 젖어 노예들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그런 일은 고대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내가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 엉뚱한 말을 한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당신의 비난을 각오하고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내가 아니었던 것이, 나의 삶을 가장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의 뇌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를 차단하고 자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정보만 수용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당신은 현대의 뇌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마저 부정하고 싶은가.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해 그들과 교제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굳어진다. 우리의 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보가 들어오면 피곤해하는데, 이런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배척하게 된다. 뇌는 뇌 속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 데 한계를 느껴 선별적으로 진입 허가를 내려 정보를 수용하는 ‘게이트 키핑’ 현상이 일어난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 역시 과로 및 수면 부족 상태에서 비판적 사고가 불가능한데 바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우리의 뇌로 인해 인간의 이기적이고 탐욕적 본성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강화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명징한 사실 앞에서 온몸의 맥이 풀린다. 「의도적으로 외면하기」라는 책에서 저자 마거릿 헤퍼넌은 새로운 희망을 말한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똘똘 뭉친 우리의 뇌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의도적으로 바라보기’가 가능해진다고. 그녀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제안한다.
작년 봄, 상해에 있는 다국적 기업 S사의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삼촌을 방문했었다. 생생한 역사 공부를 해보겠냐는 삼촌의 제안에 방방 뛰며 좋아했던 일이 기억난다. 자가용으로 세 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역사의 고도 난징. 대학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기념관은 그 외양부터 남달라 보였다. 초췌한 얼굴의 여인과 그 품에 죽은 듯 늘어져 있는 아기의 조각상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배 모양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검은 벽 위에 씌어있는 ‘참사자 30만’이란 글자가 보였다. 두 달 간 학살당한 난징 시민들의 숫자. 기념관에 진열된 끔찍한 사진들과 참혹한 발굴 현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왔을 뿐인데 큰 충격을 받아 머리가 깨어질 듯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희생자들의 사진과 실제 학살 작전에 투입된 일본군의 사진과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단단히 뿌리내린 고위직 군인의 사진 한 장. 그 사진 속에는 애견에 대한 사랑과 함께 금쪽같이 여기는 딸을 향한 자애로움이 물씬 풍기는 일본군 지도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목이 잘리고 까맣게 숯덩이가 된 시신들. 유난히 작아 보이는 두개골로 어린아이임을 증언하는 유골들. 자신을 방어할 무기는커녕 그런 생각조차 갖지 않은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육한 일본군이, 그것도 학살을 지휘하고 명령을 내린 고위인사가 그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소름이 끼쳤다. 그 사진 앞에서 강한 전기충격을 받은 듯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학살대상이 된 중국 인민들을 자신과 똑같은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여겼다면, 그들에게 한 점의 동정과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천인공노할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관동군 부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마루타 실험을 소재로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생생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한동안 힘들어 했었다. 실험에 참가한 의료진은 피해자들을 마루타나 번호로 불렀다고 한다. 마루타는 생명이 없는 통나무를 뜻하는 말이니 실험대상자들은 인간이 아닌 통나무, 아무런 고통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실험대상, 곧 마루타는 진짜 인간이 아닌 하찮고 막 대해도 아무 문제 없는 존재였기에 무슨 짓을 하든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는 끔찍한 기억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가해자는 악몽을 떨쳐내고 무심한 듯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끔찍하다. 어떤 규범을 가진 집단 구성원들 간에 동질성을 느끼는 의식이 이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치스러운 역사를 아예 부정하고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일본을 보며 뿌리 깊은 감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감정의 경험(기억에 대한 경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은 그 뿌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해소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차별적인 지역감정이 건재하고 있음을 보며 그 감정은 차별을 당하는 대상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통합성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진실은 우리에게 치욕스러움과 곤란을 안겨주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처음으로 신비를 체험한 신입신자에게 첫 경험이 극심한 공포심을 안기듯 내게 원천적으로 접근 금지된 세계인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지나간 역사의 현장에 발을 들여놓으며 어찌나 두려웠던지······. 조 씨 할머니가 열어놓은 세계, 그곳에서 마주친 그녀의 고통이 나를 역사의 한순간에 못 박은 듯 처연함으로 몸서리친다. 이제껏 알고 있던 근엄한 세계가 실상은 고통스럽고 피비린내 가득한 사건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찌 됐건 그녀의 존재가 나를 사로잡아 떨쳐내기 힘든 불가피한 요소가 되었다. 역사의 제물이 된 조 씨 할머니. 일본군의 광기와 천인공노할 만행을 세상에 폭로하는 역할을 한 그녀에게 우리 사회가 무언가의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억압 속에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청춘의 한 자락을 치욕 속에서 보냈건만 국가로부터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돌아보아야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천박하고 돼먹지 않은 태도로 그녀들을 매도한 적은 없는지. 가해자 일본이 그녀들을 망각했듯 우리 역시 그녀들을 경멸하고 인간의 광기와 동물적 본성을 확증한 역사적 사건이 너무도 외설스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지……. 나같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 속한 이들은 험난한 시대를 몸소 겪은 그녀와 비교해 본다면 사회에 어떤 비용도 치르지 않고 혜택만을 누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집단 간의 관계가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에 한 집단은 그 집단이 가진 힘의 비중에 따라 타 집단과의 관계가 결정된다고 한다. 사회적 갈등은 무지와 이기심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인간 지성의 확장과 자애심이 커질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니부어의 이론이 집단에 적용된다면 국가 간에도 통용이 되는가? 무지막지하고 막돼먹은 언행을 되풀이하는 그들을 향해 국가적인 지성과 자비를 베풀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니부어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과 별개로 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집단인 사회나 국가조직은 집단이 되는 순간 이기적 행동에 일침을 가할 힘, 곧 양심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불현듯 난징학살 사진이 생각난다. 온갖 증거와 증언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학살을 부인하고,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우익 인사들. 자신들의 광기와 폭력성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할머니의 주름진 이마와 입가에 패인 쪼글쪼글한 주름, 순박한 표정이 눈에 어른거린다.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치부를 온전히 드러낸 할머니에게 감동을 받았기 때문인가.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조 씨 할머니로 지칭되는 그녀들의 쓰디쓴 삶의 기억이 시간의 바다 속으로 침몰되기 전에 혐오스런 기억과 한을 떨쳐내도록 그녀들의 아픔을 다독이고 어루만져야 하지 않을까. 인간 속에 자리한 야수의 얼굴과 대면했건만 회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그녀. 그녀가 잔잔한 행복 속에 웃음 짓길 기원한다. 그녀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녀는 소중한 사람이 될 테니. 비록 세상 사람에게 주목 받지 못한 채 잊힌다고 해도. 진한 향기로 다가온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애정을 듬뿍 담아 읊조렸다. 사는 동안 당신을 기억할게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니······. * 끝
![]() |
▲ 은애숙 소설가 |
은애숙 소설가 프로필
-연세대학교 가정대학 졸업 -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수상(소설)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문학회 ‘시와 사람들’ 회원 -소설동인회 ‘스토리소동’ 회원
-소설집 : 『마리아의 환상 사용법』,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소설 동인지 참여 : 『오작교를 건너다』, 『엄마의 남자』, 『신부님과 여동생』 -문학회 ‘시와 사람들’ 동인지 참여 : 『시의 길을 걷다』(8집~10집)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