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파본이거든
환불해 드리니 괘념치 마시고
어색한 곳에는 교정부호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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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의 시 맛보기 –2008] 박찬희-나를 읽어주세요 |
[시]
나를 읽어주세요
박찬희
표지는 대충 그냥 넘기더라도
머리말은 조금 꼼꼼히
본문은 좀 자세히 읽어주세요
혼자 있을 때
몇 장 소일거리 삼아 넘기며
손끝으로 짚어가며 읽어주세요
적적하거나 무미할 때 들춰봐도 좋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펼쳐놓고
설렁설렁 말고 진중히 읽어보세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있습니다
때로는 밑줄을 그어도 좋습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책갈피를 끼우거나
필요한 때에는 접어두었다가
나도 모르는 내가 있거든 체크 하면서
읽다가 파본이거든
환불해 드리니 괘념치 마시고
어색한 곳에는 교정부호를 남겨주세요
당신이 읽는 한 나는 당신의 책
슬프거나 답답하거나 안타깝거나
혹은,
기쁘고 행복한 혹은, 그저 그렇더라도
한 질 전집으로 엮어진 내 모양 그대로이니
주저 말고 가져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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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티브로 해서 어떤 사고의 가치 중심을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내적 갈등의 주요한 메시지에 있다.
‘어색한 곳에는 교정부호를 남겨주세요’
어떤 사물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보다는 본질에 의미를 두고
직·간접의 다양성과 깊이에 접근한다.
‘기쁘고 행복한 혹은, 그저 그렇더라도
한 질 전집으로 엮어진 내 모양 그대로이니’
그리고 독창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는 사물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시인의 배려이기도 하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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