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포스터모던 시대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살펴 봅시다.
포스터모던 시대에 절대 진리처럼 권력을 가진 “평등”은 사실 엄청난 모순이 있죠.
왜냐하면 평등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개인적 또는 객관적 시점으로 나뉘고 지성적 자연주의 라는 사회 생태계에 혼란을 줄수 있는 많은 요인이 있거든요.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고 신이 나에게 말해주었다”(짜라트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니체)
인류가 지금껏 멸종하지 않고 진화를 계속해오며 생존하게 된것은 불안으로 인한 자기방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개체의 헌신적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거 였어요.
분석심리학의 대가인 쟈크라캉은 인류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했더라면 이미 멸종되였을거라고 했죠.
즉 평등은 욕망을 가진 인간에게 절대로 불가능한 목표예요.
사회발전과 더불어 정치가들이 약자옹호의 흐름속에 “평등”에 대한 가치장사를 하게 된것은 상대적 차이로 인한 다수의 욕망이나 고통을 완화해주겠다는 유혹일뿐 사회라는 거대공동체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수는 없죠.
사회적 문제의 솔루션이 평등이란 권력아래 지배된 가장 큰 문제는 혼란이죠.
카오스의 세계에서 엔트로피는 고속상승하게 됩니다.
엔트로피의 상승은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과 파괴를 혼란으로 은폐하게 되며 공허가 공간을 지배하게 되요.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인 정신질환은 혼란속의 공허로 인한 삶의 존재성에 실망과 허무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죠.
예술분야에서 나타나는 문제 또한 붕괴위험수준이죠.
누구나 예술가로 둔갑하는 사회현상 속에 예술에 대한 가장 기본적 인식도 없는 “제멋대로”가 노출되면서 현대미술은 이해할수 없는 작가주관의 표현 에 극한되며 예술성의 가치를 상업성에 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죠.
아마츄어와 프로의 차이도 구분할수 없게 만든 카오스에 의한 인지의 질적하락은 인간오성의 쇄퇴를 초래하고 미래의 오성은 동물들의 지각능력과 비교당할 가능성이 크죠.
한마디로 인류의 지능상태가 개나 고양이의 지능상태와 비교당할 만큼 쇄퇴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그럼 평등이 필요하지 않을가요? 여기에 물음이 가죠.
공동체는 공존의 속성으로 생존하기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가 중요하죠.
정치가가 바라보는 평등은 상품성의 목적성으로 인해 대단히 수동적이고 모순적인 평등이죠.
상품성의 평등은 비 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이죠.
인격체로서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것, 차이에 대한 바라봄에서 질투와 스스로의 문제를 타자의 책임으로 자기합리화 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바라보고 스스로의 해체를 통한 스스로의 새로워짐 의 균형이 평등의 가장 큰 의미부여죠.
생존경쟁의 자연적 순환의 알고리즘 안에서 주인의 도덕적 관념을 가지고 타자에 대한 이질성의 존중이 평등 이라는 개념의 본질로 인식하는것이 중요한듯 해요.
포스터 모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노력하지 않는 결과의 하이클레스로 욕망에 묶여있고 잘못된 시점의 해체와 반성과 같은 변화가 고도로 상승하는 엔트로피의 균형성을 찿는길이죠.
혼란과 공허로 요동치는 의식에 균형을 찿기위한 자기해체와 성찰은 권력적 보평성을 가진 명제들의 거시적 해석보다 미시적이고 직관적 시점에서 보는 훈련이 필요할 때 같아요.
스스로가 채워지지 않는 차이의 인식이 늘 공허 하듯이요.
반 포스터 모던과 안티아트가 혼란의 상승을 견재해줄 균형의 수단이고 현대에 필요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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