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화가 오성철의 인생노트] 최고의 칭찬

문화·예술 / 오성철 기자 / 2020-08-15 11:38:44

우리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을 통해 밖의 사물을 실체라고 인지할뿐 실체안에 은거하진 못하죠.

그래서 세상은 사람의 수만큼 존재하고 한 인간의 죽음은 한 세상이 죽는다는걸 의미한다고 하죠.

사멸할수밖에 없는 운명의 흔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기록을 발견했고 그 기록의 축적으로 문명은 진화해 왔어요

새롭다는것은 익숙하지 않다는것을 의미하고 이성의 영역안에 소유할수 없는 불편을 주며 대 부분의 안정에 대한 욕망은 이해할수 없는것에 대한 불편을 배척하기도 합니다.

캔버스에 자신의 우주를 표현하는 화가가 늘 타인에게 익숙한 그 무엇을 그린다고 하면 새로움이 어떻게 탄생했을것이며 현 시점의 인식과 지능의 또 다른 진화를 어떻게 할가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지성을 쌓아간다는것은 자신의 세계에 얶매이지 않고 타인의 세계까지 들여다 볼수 있는 인지적 시각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죠.

자신과 타인을 연결시키는 공통어가 인문학이며 그로인해 타인과 협력을 가능하게 함으로 그 가치를 논할수 있잖아요.

세상에 제일 무지몽매한 사람은 자신의 세계가 이세상 전부인것 처럼 알고있어서 세상에 자신이 제일 현명하고 명석하며 주인인듯 자기확신에 의심하지 않는 지능의 소유자죠.

세상엔 수십억의 세상이 있고 서로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스스로의 세계 즉 자신은 그 무리의 구성원임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로 되려해도 인생이란 시간이 너무 부족하죠.

그래서 이런말이 있잖아요.

“박사란 이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것이 너무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는 자기학습의 경지이다”

자신이 아는것이 정말 보잘것없이 적다는 깨달움은 삶의 겸손을 주고 다른세상을 보려하는 긍정을 주며 자기개발을 할수있는 무한한 공간을 주죠.

화가가 받아야 하는 값진 칭찬은 그림을 기술적으로 너무 잘 그린다는 장인에 대한 호평이나 대중의 눈에 익숙하여 불편을 주지않는 그 무엇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너무 불편하거나 어이없을 정도의 이상함을 준다는 비판이나 비난인가 봅니다.

자본을 위한 생존 도구의 상품이 오래동안 연마한 기술로인해 생산되도 장인의 상품일 뿐이며 타의 욕망을 닦아주는 손수건은 타인의 욕망을 이용해 먹고사는 상인의 상술의 상품일뿐 예술작품은 아니죠.

돈과 권력이 최고의 삶의 목적이 되는지는 몰라도 독서와 자아성찰로 새로움을 찾는것도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될수도 있으며 하루의 노동으로 수단을 얻어 하루하루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도 살아가는 이유가 될수 있어요.

때로는 오늘 하루 음악과 와인한잔에 빠진 삶도 최고의 목적이 될수있고 살아가는 모양은 너무 다양하죠.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 다르고 그것들의 공존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다이다믹한 현세가 아닐가요?

화가는 캔버스에 자아성찰과 깨달움의 진화를 표현하는듯 해요.

이상하거나 철이없다거나 바보처럼 보인다는 말이 참 너무 좋아요. 그만큼 제 삶에 익숙한 안정보다 불편한 새로움이 존재한다고 타인이 인정해주는것이니까요.

아직 그 표현방식에 너무 서틀고 타인보다 못하다는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선대의 앞서간 사람들만큼 되기위해 할일이 많다는것 이여서 복된 삶이죠.

또 기분좋은 하루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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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철 / 문화예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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