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92)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0-09-11 12:51:47
작가는 영웅주의를 배격하며, 소시민들의 소박한 헌신이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이런 재앙을 극복해 나가는 주역은 ‘주어진 직분’을 성실히 완수하는 전문가와 시민들이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의 섣부른 공명심은 되레 일을 그르치기 쉽다

 

▲ [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92)


곧 종식될 것이라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책읽고 건너가기' 프로젝트의 9월 책으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La Peste·1947)를 채택했다. <우리마을대학>의 멤버들도 그 책을 읽기로 했다. 이 소설은 마침 페스트의 창궐로 봉쇄된 도시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색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갇힌사람들이 그 엄청난 비극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하지만, 결국에는 역병 퇴치를 위해 힘을 모은다는 이야기다. 거기에는 비극적 운명에 저항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라는 까뮈의 작가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페스트의 무대는 인구 20만의 오랑시(). 194×416일 죽은 쥐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날짜인가? 기억하기 쉽다. 4월 말에 사람들도 죽기 시작한다. 하루 수십 명에 달하던 사망자가 다소 줄면서 도시는 이내 활기를 찾는다. 그러나 다시 사망자 수가 치솟자, 순식간에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된다.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도시는 봉쇄된다. 모두가 '독 안에 든 쥐'가 된다. 감염자와 사망자가 폭증한다. 일단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면 환자는 강제입원되고 가족은 강제 격리된다. 종종 경찰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환자를 탈취하는 일도 벌어진다. 도시는 구급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 화장터에서 내뿜는 연기, 도시의 관문(關門)에서 들리는 총성 등이 뒤엉키는 생지옥이다. 식량 보급 제한, 휘발유 배급, 절전, 등화관제 등은 물론이다.

 

이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코로나-19의 역병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태도들도 이렇게 나뉠 수 있다.

 

(1) 도피적 태도의 반응: 기자 랑베르는 이 도시에 취재차 우연히 들렸다가 발이 묶인다. 그는 파리에 두고 온 젊은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2) 초월적 태도의 반응: 신부 파늘루는 이 재앙이 사악한 인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규정하며, ‘아무리 잔인한 시련조차도 우리들에게는 유익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전통적인 기독교적 입장이다.

 

(3) 반항적 태도의 반응: 의사 리유는 최선을 다해 이 역병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체념하거나 신에게 기대지 말고 인간 스스로 운명에 도전, 즉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유는 소설의 서술자(주인공)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소임을 완수하는 성실한 의사다. 따라서 소설은 그의 반항적 도전을 통한 역병 퇴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만나 12시까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 동네 맛집을 찾는 순례를 한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많은 독서로 얻어지는 고차원적인 언어의 질적 상승은 그 사람의 인품을 상승시킨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과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 사람의 지혜와 품위 있는 말에 감탄한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의 눈빛과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퍼진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의 팔자주름과 처진 볼살은 자연스런 곡선을 이루어, 음악 미뉴엣(minuet)처럼 느껴진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연설할 때는 강한 포르테처럼 청중을 고조시킨다. 나는, 코로나-19로 집에 주로 머물러야 하는 시기이고, 좋은 계절이니 책을 많이 읽을 생각이다. 그래 어제는 7-8권의 책을 주문하여 받았다.

 

오늘 아침 시는 서정윤 시인의 것을 공유한다. 코로나-19로 엉망이 된 한 해이지만, "나의 9월은" 내 영혼의 근육을 더 키워,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반항하며 일상을 사막에서 버티는 것처럼 견딜 생각이다. 까뮈는 말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침 사진은 높아진 하늘을 감히 올려 보고 대낮에 찍은 것이다. 저 구름을 타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수없이 주어지는 일상을 문제들이 순방향으로 풀리고 풀어간다. 오늘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문제는 내가 결정할 것들이 아니고, 다른 이의 손에 달렸다는 점이다. 되는 대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나의 9월은/서정윤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

하늘로만 뻗어가고

반백의 노을을 보며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깊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아직 지쳐

쓰러지지 못하는 9

이제는

잊으며 살아야 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정리하며

오랜 바램

알알이 영글어

뒤돌아보아도 보기 좋은 계절까지

 

내 영혼 어떤 모습으로 영그나?

순간 변하는

조화롭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늘 열매를 달고

보듬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페스트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현장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마침 사회활동가 타루가 리유를 찾아온다. 리유는 파늘루 신부의 신학적 해석을 겨냥하여 그 병고의 유익을 증명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의기 투합한 두 사람은 민간보건대를 결성한다. 그때부터 리유는 의사로, 타루는 보건대 책임자로 역병 퇴치에 헌신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리유와 타루는 어떤 방법으로든 싸워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는다든가, 결정적인 이별을 겪는 아픔을 막아주자고 더욱 굳게 다짐한다. 그런 일에는 어떠한 영웅도 필요 없다. 그저 소박한 시민들이 서로 힘을 합치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영웅적인 면모라고는 전혀 없는 소설 속의 인물 그랑도 보건대에 들어온다. 그랑은 당장 지위조차 불안정한 말단 공무원이다. 그는 이혼하고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엉터리 소설이나 끄적이던, ‘보잘것없는인물이었다. 그는 퇴근 후 매일 저녁 보건대에 들러, 통계 작성 업무를 맡는다. 그의 성실성으로 인해 보건대의 활동은 행정적으로 탄탄한 기반에 올라선다.

 

반면 도피적 태도를 보이던, 기자 랑베르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도시를 빠져나갈 궁리만을 한다. 그는 리유를 찾아와 무감염 증명서 발급을 요구한다. 리유가 거부하자, 랑베르는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리유는 이제는 (당신도) 이 고장 사람이다라고 대꾸한다. 차츰 랑베르는 혼자만 행복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책하게 된다. 그는 탈출을 단념하고 보건대에 합류한다.

 

초월적 태도를 보였던, 파늘루 신부도 신자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면서도 보건대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병원과 페스트가 들끓는 장소를 떠나지 않다가, 안타깝게도 11월에 죽고 만다. 한편 어디에나 파괴적인 인물이 있게 마련이다. 코타르는 어떤 범죄를 저질러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살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친다. 다행히(?) 페스트의 창궐로 수사망이 느슨해지자 암거래, 불법 알선 등으로 돈을 벌어 흥청망청한다. 그는 나는 훨씬 지내기가 좋아졌다.페스트 안에 있는 게 더 편하다라고 지껄인다. 그는 재앙을 즐기는 유일한인물이다.

 

이 소설에는 위대한인물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소시민이다. 그랑이 대표적이다. 그는 리유를 찾아와 보건대에 합류 의사를 밝히며,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건 뻔한 이치입니다. ! 만사가 이렇게 단순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영웅주의를 배격하며, 소시민들의 소박한 헌신이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의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세상은 신적인 계시나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라, 각자에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히 완수하는 소시민들의 분투에 의해 개선된다는 것이 작가의 강렬한 문제 의식이다.

 

작가가 처음에 구상한 제목은 페스트가 아니라 수인(囚人)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갇힌사람들이 고통 속에서도 그 감금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까뮈는 실제로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겪지 않고 순전히 상상력을 썼다고 한다. 다만,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과 동일하게 보았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페스트는 전쟁이나 부조리한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페스트는 그냥 페스트. 그렇게 읽어야 감동과 교훈이 더 생생하다.

 

지금 우리는 엄중한 사태에 처해 있다. 이때 무엇보다 이런 재앙을 극복해 나가는 주역은 주어진 직분을 성실히 완수하는 전문가와 시민들이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의 섣부른 공명심은 되레 일을 그르치기 쉽다. 직분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침방울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마스크를 쓰는 것도 어엿한 직분이다.

 

이 글은 재밌게 읽은 인문학 칼럼니스트 박종선의 글에서 얻은 생각들이 많다.

 

라벨: 20209월 사진과시 그리고 글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인문운동가 박한표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