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화가 오성철의 인생노트] 한나 아렌트

문화·예술 / 오성철 기자 / 2020-01-04 14:14:44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할 정도로 최근 한나 아렌트에 대해 쓴 책들을 많이 접하네요.

위대한 철학자아며 존재론의 대가인 하이데거의 제자여서 그런지 또 여성의 사회 평등성에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패미니스트여서 워낙 유명해서 그럴지도 모르죠. (물론 한국의 현 패미니즘과 본질상 의미는 달라요)

한나 아렌트는 독일이 나치당 시절 유대인 학살계획이였던 홀로코스트를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전후 국제형사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사형을 당할때 아이히만을 만나보고 쓴 “ 악의 평범성”의 저자 이기도 하죠.

수십만의 유대인을 확살한 아이히만의 죄명은 “권위에 복종하고 자신의 생각을 하지 않은 죄” 였어요.

그를 만나본 아렌트가 너무나 놀랐던것은 수십만의 생명을 해치기엔 아이히만이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었던거예요.

아이히만은 죽을때 까지도 조금의 양신적 가책도 못느꼈다고 해요.

심리학자 리언 패스팅어가 연구한 결과 사람들은 책임에 대한 부담이 없을수록 생명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양심적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미분화된 업무분활은 책임이라는 부담을 덜기위한 방법이고요 그때문에 세상엔 참혹한 비극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지는거죠.

권위에 충성하고 자신의 생각을 외면할때 인간은 아이히만 증후군에 감염되기 싶죠.

현 한국의 사회현상만 봐도 알수 있어요.

어떤 권력자의 불윤문제를 가지고 그 사람을 “찟어죽이라”고 까지 웨치는 증오에 대해 말할때 그들은 사람을 죽일만큼 직접적인 피해가 있었냐고 되묻지 못하죠.

최고권력의 비호아래 그들의 탐욕이 만든 증오를 자기화 하고 무슨 정의의 수호자 마냥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탐욕의 이용물이 되는 현상은 현대 지성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안할때, 타인의 조종을 받는 삶을 살게 되고 사회를 지금처럼 양분화 하고 갈등과 증오가 넘치는 살육의 만찬장으로 만들수 있죠.

우린 무엇을 위한 정의와 평등을 념원하죠?

그 멋진 명분은 누구에게만 이익을 주며 그 전쟁에서 생기는 상처와 아픔은 누구에게만 해당될가요?

우리는 좀비로 살면 안되는 존엄적 존재들이죠.

정치권력의 희생물로 타인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것은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길이 아니예요.

보이는 멋진 가면뒤에 은폐된 탐욕의 민낯을 가려보길 바래요.

빛은 어둠을 필요로 하듯 보이는것의 유혹은 미시적 어둠이 있어요.

그 맑음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기적 탐욕들이 자신들의 이기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것은 역사의 교훈이죠.

화합과 평화는 소위 정의와 평등과 거리가 멀어요.

 

#현대한국사회 #실체와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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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철 / 문화예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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