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제2, 제3의 트럼프 스타일이 등장하거나, 2024년에 트럼프 자신이 또 출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 사회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트럼프의 솔직함이 위선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정치 속에서 문제 제기만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적 리더십은 선동보다 모범이 중요하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길은 그 노정에서 구성원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박원호)
어제는 하루 종일 미국 대선 결과에 눈길을 주었다. 그러면서 인문운동가로서 나는 트럼프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가 고민이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확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러나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트럼프가 세계 정치와 우리들의 삶에 남긴 흔적은 문제적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 평소 좋아하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의 칼럼을 만났다. 그는 "미국의 국내외 정책 변화가 미국인들, 나아가 지구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심원한 것은 트럼프라는 얼굴을 한 어떤 정치적 경향이 우리의 마음에 남겨놓은 비가역적인 파동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를 언론에서 '트럼피즘(트럼프의 극단적인 정치적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이라 한다.
어제저녁 술자리에서, 한 지인은 트럼프가 엘리트 중심으로 공고하게 굳어진 정치판을 뒤흔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의 태도가 너무 자기 멋대로였다고 본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보면, 많은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거의 과반에 이르는 유권자들의 강고한 지지가 재확인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트럼프 스타일이 등장하거나, 2024년에 트럼프 자신이 또 출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 사회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박 교수는 트럼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매혹의 정체를 "그는 솔직하게 말해요(He speaks his minds)"로 요약한다고 하는 미국인의 말을 인용했다.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거침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말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오늘 아침 시처럼, 이상하다. 아침 사진도 동네 수목원에서 찍은 억새이다.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잘 혼동한다. 나는 은빛이나 흰색이면 억새이고, 고동색이나 갈색이면 갈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오늘 사진처럼 억새는 갈대에 비해 가는 편으로 '하늘하늘'이라는 비유가 어울린다. 억새가 곱게 단장한 느낌의 매력이 있다면, 갈대는 거친 매력이 있다. 억새이든, 갈대이든 각각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구별하고, 분류하는 것이 지적 부지런함이다. 그래 글이 좀 길지만, 천천히 다 읽어야 한다.
가장 이상한 세 단어/비스와라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이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박 교수의 칼럼 결론이 퍽 마음에 든다. 인문운동가로서 정치 문제 앞에서 내 눈에 끼어 있던 안개가 확 걷히는 분석으로 참 즐겁게 읽었다. "트럼프 정치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공식, 욕망과 파격과 배제의 솔직함은 너무나 손쉬운 게으름이었다." 그런 정치는 게으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 페이스 북의 담벼락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최고의 교육은 지적 부지런함의 즐거움을 체험하고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이다."
바보와 멍청이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데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이 겪게 될 삶의 어려움은 무엇을 근거로 삼기 때문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가짜와 진짜를 분간하기 어려운 것, 남들이 아는 것을 몰라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 등등 수없이 많이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가 보면, 분별력이다. 그건 이것과 저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힘을 말한다. 물론 분별하는 과정에 에너지가 소비되겠지만, 분별된 결과 또한 에너지가 된다. 분별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터득한 것이 '범주화'이지만, 스스로 범주화하는 틀을 자유롭게 깨지 못하면, 오히려 분별력이 고착화되며 새로운 에너지 생성에 한계로 작용될 수도 있다. 인문학에서는 이런 분별하는 힘은 ‘지적 게으름'에서 벗어 날 수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게으름에서 벗어난다고 곧바로 부지런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부지런했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을 반복을 통하여 즐거움에 향수를 느끼는 무조건반사의 근육이 필요하다. 이것이 교육의 필요성이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일이다. 이런 점을 트럼프는 간과했다.
어쨌든 박 교수에 의하면 트럼프는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정치적 리더십은 선동보다 모범이 중요하는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길은 그 노정에서 구성원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책무를 고민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에게 눈을 크게 뜨고 속지 말라는 것으로 나에게 들린다. "그 게으른 매혹의 역설적 저주"는 트럼프식 정치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에게 그 입구에 들어가게 만들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포퓰리즘'이라 부른다고 한다. 경계할 일이다.
그 외 미 대선을 보면, 주류 엘리트 대 노동자, 백인 대 비 백인, 대도시 대 농촌, 보수적 기독교 대 기타 종교 등 '대통령 트럼프'를 낳은, 또 대통령 트럼프가 증폭시킨 정치적 대립은 이번 선거를 통해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이다. 오히려 그 대립선을 더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점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바이든 '신승'은 위에서 말한 트럼프 정부 4년이 고착화시킨 정치적 양극화 덕일 수도 있다. 이번 선거는 '룰 브레이커' 트럼프의 '파괴적 리더십' 탓이 컸지만, 바이든도 이를 뛰어넘는 담대한 구상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도 있다. 바이든은 새로운 정책적, 정치적 흐름을 제시해 선거를 주도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바이든 진영은 트럼프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군'적 성격이 강하지만, 트럼프를 물리친 이후에도 이들을 하나로 묶을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트럼프를 '아웃'시킨 이번 선거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피즘'이 미국 사회와 정치에 일정정도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의 지지세력에 크게 균열을 내서 압승을 했어야 트럼프식 정치에 대한 반성과 퇴출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트럼프 이야기를 더 해본다. 정치학부 교수로서 박원호 교수가 하는 트럼프의 분석을 정리해 공유한다.
#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정치판에서 드문 일이다. 그런데 트럼프처럼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는 정치인은 우리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해주고,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고단한 삶의 뿌리를 밝혀줄 사람으로 보게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 사회를 "이익과 이익이, 욕망과 욕망이 맞부딪히는 과정에서 해결점이 찾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 위에 서 있던 나라"로 본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정치의 시작"은 "모두가 지닌 상충된 욕망들을 발견하고 대립시키고 폭발시키고", "그 마무리"는 "그 욕망들이 만나는 균형점을 발견하고, 누군가에게 희생과 양보를 납득시키며 같이 살아갈 공생의 터를 닦는 것"이라 본다. 박 교수는 마스크를 쓰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그 예로 들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트럼프의 솔직함이 위선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정치 속에서 문제 제기만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의 리더십은 정치의 실행이 자신이 일이 아니라고 강변한 데 있었다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또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생활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저 멀리 있는 잘난 엘리트 전문가들이 내뱉는 전문용어의 장막을 단칼에 베어 버리는 통쾌함이 있다는 점이다. 그 의미는 더 이상 정치라는 것이 알 수 없는 정책적 용어와 숫자 놀음만이 아니며, 수백 년 묶은 제도와 관행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고하게 굳은 정치판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학 교수로 박교수의 생각은 때로는 절차와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이고,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한 관료들을 일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전문성을 유능하게 활용하는 것 또한 정치라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가 내세운 파격의 진부함은 수백 년을 이어온 관료제적 부정부패의 소문을 재생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과거의 역사와 디테일과 외교적 절차를 무시한 채, 트럼프 개인의 판단인 '탑 다운'으로 밀어붙였던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안 하느니 못한 파국으로 치달었던 대가를 우리고 치르고 있는 것을 박 교수는 예로 들었다.
#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전염성이 높다는 것이다. 누구나 키우고 있을 마음속에 깃든 악마가 내는 혐오와 조롱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밖으로 내뱉는 순간, 똑같은 마음의 악마를 키우는 동지들이 규합되고, 증폭된 혐오의 목소리와 폭력이 고스란히 교환되는 장면에서 박 교수는 그 전염성을 보았다. 박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존중과 인격을 떠받치던 실낱이 완전히 끊어지고 그것이 오히려 조롱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것은 9000만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대통령의 무수한 단문들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라벨: 2020년 11월 사진과시 그리고 글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 인문운동가 박한표
https://pakhanpyo.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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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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