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사유하려면, 다음의 '지(知)·식(識)·견(見)·해(解)'(한근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넘어간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걸 글로 쓰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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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359) |
소통을 위해, 오늘부터는 글을 짧게 쓰고, 하루에 한 가지 메시지만 공유하려 한다. 이를 위해 버전을 두 개로 할 생각이다. 좀 더 밀도 있고 길게 사유한 것은 블로그로 옮겨 놓을 생각이다. 어제 몇몇 지인들을 만났더니, 아침마다 보내는 글을 잘 읽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오늘부터 인문 운동 전략을 바꾼다.
우리는 인문학을 단순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만 이해한다. 그래 사람들은 현시대의 정신을 통한 정치와 역사에 무관심하다. 그래 인문학의 탈정치화와 탈역사화가 이루어지고,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자가 없는 민주주의"로 일상의 민주화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문학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사회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게 하고, 구체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실천적 삶에 무관심하게 된다. 인문학을 탈 정치화하면 인문학이 지닌 중요한 비판적 성찰과 세계에 대한 개입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 나는 인문학보다 인문운동가가 되기 택한 이유이다.
그래 인문운동가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의 우리 동네 회화나무처럼, 늙지 않는다. 둘러 보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도 정희성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정희성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죽은 나의 친구는 왜 눈을 감지 못 하는가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인문운동가 하는 일은 비판적 성찰, 해답 찾기가 아닌 새로운 물음 묻기를 통한 세계 개입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서의 정의, 평화, 평등, 연대의 가치를 더 확장하고 실천하기 위한 비판적 저항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고정하려 하는 것과 제한하려 하는 것, 절대적인 것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성찰해야 한다. 이런 비판적 저항은 다음과 인문학의 기초에서 이루어진다.
* 세상의 모든 권위와 권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기. 한나 아렌트는 비판적 사유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이라고 말했다.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보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이성적으로 사유하기. 이를 위해 자신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 물음 묻기, 즉 질문하기.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이 있다. 좋은 질문은 질문받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내 안에 또 다른 세계를 찾게 만든다. 나쁜 질문은 "예 혹은 아니오"로 단정 짓게 만드는,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다. 답을 내릴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중요하다. (1) 모든 답은 잠정성을 갖는다. (2) 모든 답은 부분성을 갖는다. (3) 모든 답은 특정한 정황 속에 매여 있다.
이를 통해 키워진 인문 정신은 확실성을 내려놓고 불확실성에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다. 끊임 없는 불안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하는 수고가 있다 할지라도. 고정된 정답보다 새로운 질문 묻기를 하는 것이다.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누리 교수의 책은 좋은 인문 정신을 키워주는 책이다. 여기서 이성적으로 사유하려면, 다음의 "지식견해(한근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넘어간다. '지식견해'란 즉 '지(知)·식(識)·견(見)·해(解)'로 표현하고 싶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걸 글로 쓰면서,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 지(知) 단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표현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 식(識) 단계: 여기서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다. 글쓰기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없다. 글은 아무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아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서 대강 정리가 된 생각은 글을 쓰면서 개념이 점차 확실해진다.
* 견(見) 단계: 볼 견이지만, 의견(意見)의 견이다. 자신의 의견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의견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배움의 결과로 얻어지는 식견(識見)이라는 말도 있다. 지식이 있어야 견해가 생긴다. 지식이 없는 의견은 자기만의 의견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자기 의견이 있어야 독립적이고 주체적이 된다.
* 해(解)의 단계: 문제를 푼다는 말이다. 성숙의 가장 큰 성과는 문제 해결 능력의 향상이다. 배우고 공부하면 복잡한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세상의 어떤 문제라도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지난 8월 18일부터 사유를 이어오고 있는 '자기 착취' 사회에서, 내 안의 '노예 감독관'은 '물리적 권위'에서 '윤리적 권위'로, 다시 '익명의 권위'로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멀리 돌았다. 이 모든 권위가 만들어내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비판력은 인문학의 힘을 통해 커진다. 인문학은 모든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 되게 하는 학문이다.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인문학적 사유 능력을 키워, 과연 이 사회가 인간을 어떤 식으로 착취하고, 어떤 식으로 지배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식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어야 우리는 현대의 '총체적 지배'로부터 해방을 모색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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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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