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역사소설-안 휘] 동해영웅 이사부 -<12>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0-09-12 21:15:06
<독도수호 예술문화 프로젝트-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전쟁사>

마당 넷. 잠입(潛入) / 4.3 예선창

[장편 역사소설-안 휘] 동해영웅 이사부 -<12> / 그림 : 문악보 화백

 

성인봉은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성큼 앞장선 우직을 따라서 이사부와 명진은 등짐을 지고 땀을 흘리며 가파른 산길을 내려갔다.

 

우직이 살고 있다는 예선창에 이르는 길은 아침나절에 이사부와 명진이 힘겹게 올랐던 비탈에서 북쪽으로 약간 더 꺾어 비스듬하게 되짚어가는 방향이었다. 이사부가 간밤에 야숙을 했던 곳을 가리키며 거기가 어디인지를 묻자, 우직은 서달령 근처라고 알려주었다.

 

한참을 더 내려가니 뜻밖으로 널따란 평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리촌이라는 곳이었다. 저만큼 평지 한가운데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나무껍질을 지붕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너와집과 조릿대를 엮어서 지붕을 이어 올린 키 낮은 투막집 예닐곱 채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우직이 산다는 마을까지는 나리촌 평지가 끝나는 지점에 솟아오른 작은 고개를 넘어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가야 했다.

 

예선창은 너와집과 판석집, 그리고 투막집들을 포함하여 쉰 가구 정도 될 법한 가옥들이 바다를 향해 나란히 모여 앉은 형태의 상당히 큰 부락이었다.

 

우직의 집은 그중 규모가 가장 컸다. 호박돌을 진흙으로 붙여 켜켜이 쌓아올린 벽체에 지붕 위에다가 판석을 듬성듬성 올려 눌러놓은 형태의 너와집이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 행랑채까지 모두 세 채의 건물이 가지런했다.

 

이사부와 명진은 행랑채로 안내되었다.

 

누추하지만, 이곳에서 유하시지요. 불편하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주시오.”

 

우직은 행랑채 방안으로 먼저 들어서며 손님들이 들기를 청했다.

 

행랑채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더러 손님이 묵어가는 곳인 듯 윗목 시렁 위에는 이부자리가 반듯하게 개켜져 있었다.

 

선주께서 이리 편의를 보아주시니 너무 고맙소이다. 은혜를 잊지 않으오리다.”

 

이사부는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가벼운 목례로 답을 한 우직은 방안을 찬찬히 한 번 더 살펴 본 다음 안채로 건너갔다. 등짐을 내려놓은 명진은 피로가 깊었던지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마루방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금세 코를 골았다.

 

이사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울릉도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사방으로 펼쳐진 거친 바다가 이미 접근을 막는 만만찮은 장벽인데,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은 더욱 완강하다. 게다가 섬 안쪽의 지형마저 가파른 계곡 일색이라 뚫고 들어오기도 힘들거니와 들어온다 해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얄궂은 땅이다. 뿐만이 아니라, 해귀(海鬼)와 날짐승들을 부리는 우해의 도술까지 헤아려보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조건이 없다……. 이사부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걱정은 또 있었다. 우직이라는 자를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인가. 그의 관상에서는 일단 음흉한 기운이 감지되지는 않았다. 또 왜인들이 장수바위를 뽑아버린 일을 놓고 극도로 흥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울릉도의 명운을 진정으로 염려하는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러 척의 배를 부리며 이만큼 살고 있을 정도라면 우직은 우해와 어떤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울릉도 거민들의 민심도 알아내야 할 일 중의 하나였다. 우해의 통치 아래 우산국 사람들은 또 어떤 마음을 품고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은 공략을 위해서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었다.

 

명진의 코 고는 소리가 더 높아졌다. 이사부에게도 견디기 힘든 피곤이 엄습했다. 등짐에 기대어 비스듬히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잠이 몰려왔다. 긴장과 피로가 뒤범벅된 미묘한 기운 속에 젖어있던 이사부는 스르르 깊은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

잠도 꿈도 아닌 몽롱한 의식 속에서 불현듯 산단화에 대한 걱정이 슬며시 솟아올랐다. 산단화는 지금 어찌하고 있는 것인가. 살아있기나 한 것일까. 과연 그녀를 찾을 수나 있을 것인가…….

 

전주님! 그만 일어나시옵소서.”

 

얼마나 잤을까. 이사부는 명진의 목소리를 듣고 후루룩 잠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이구! 제가 너무 놀라게 해드렸습니까요? 송구합니다요.”

 

지나치게 놀라면서 일어나는 이사부의 모습을 본 명진이 죄스러워하는 낯빛을 지으며 굽실거렸다. 이사부는 얼굴에 묻은 잠을 털어내면서 적진 한복판에서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자신이 기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얼마나 잔 것이냐?”

 

반나절 가까이 주무신 것 같습니다요.”

 

반나절이라. 그렇다면 벌써 해거름이 됐다는 말인가? 이사부는 화끈거리는 눈꺼풀에 여전히 남아있는 피로를 뿌리쳤다. 뱃길에서부터 쌓인 피곤을 풀어낼 겨를이 없었던 데다가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기까지 했으니 곤할 만도 했다. 명진이 마루방 한가운데 놓여 있던 등짐들을 구석 한쪽으로 밀치면서 말했다.

 

좀 전에 우직 선주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요. 진짓상을 내오신다고 전주님을 깨우라 하셨습니다요.”

 

그러고 보니 산에서 육포 등으로 허기를 면한 것 빼고는 종일 먹은 것이 없으니 시장기가 깊었다. 이사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한 번 길게 하고는 명진에게 말했다.

 

우직 선주의 가솔들을 가늠하여 선물로 건네 줄 물목들을 따로 넉넉히 챙겨라.”

 

벌써 챙겨놓았습니다요. 건삼 한 근에 은수저 두 벌하고 머리빗, 머릿기름, 동 거울을 각각 한 개씩 쌌는데, 괜찮겠습니까요?”

 

그래,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그런데, 이 집에는 식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구나.”

 

명진은 약간은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벌써 안채 사람들을 염탐하여 다 파악해뒀습니다요. 이 집에는 선주 내외분과 하인들 다섯 사람 그렇게 일곱 명이 살고 있답니다요.”

 

자제들은 없고?”

 

. 자식들을 낳지 못했는지 아니면 출가한 건지 몰라도, 하인들 말로는 함께 사는 자식은 없다고 했습니다요.”

 

. 그래 수고했다.”

 

이사부는 명진의 어깨를 한번 툭 쳐주고는 잠도 털어낼 겸 행랑채 밖으로 나왔다.

 

아까 예선창으로 들어올 적에는 잘 살피지 않아서 미처 몰랐는데, 마을 앞쪽에 가로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장관이었다. 하늘이 맑아서였는지, 해저물녘이 되어 가는데도 바다색이 아름다웠다. 이사부는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바람이 제법 찼다.

 

*

안채에서 내 온 밥상은 푸짐했다. 조밥에 냉이된장국을 기본으로 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물 무침 몇 가지와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고추장아찌, 더덕무침 등이 올라 있었다. 명진이 목기(木器)에 담긴 나물무침을 놓고 명이나물이니 부지깽이나물이니 하고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아는 체를 했다. 이사부와 명진은 모처럼 마음 놓고 배불리 먹었다.

 

어째 찬이 입에 맞으셨는지 모르겠소이다.”

 

식사를 끝내고 막 상을 물리고 났을 때 우직이 찾아왔다. 희끗한 그의 구레나룻이 산에서 처음 보았을 때보다도 더 성글어보였다.

 

아주 맛나게 잘 먹었소이다. 선주님의 후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이사부가 고개를 숙여 가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마루방에 마주 앉았다. 이사부가 고개를 돌려 명진에게 말했다.

 

명진아. 거기 물건들을 내오너라.”

 

.”

 

명진이 아까 따로 묶어두었던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

 

이거 변변찮습니다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오니 받아주시오.”

 

우직이 정색으로 하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올시다. 내 결코 이런 보답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오.”

 

제 성의이니 그냥 받아주시오.”

 

명진이 물건들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우직은 인삼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접해보지는 못했는지 신기한 표정으로 건삼을 이리 저리 살폈고, 은수저를 받아들고는 적이 감동하는 눈치였다. 동 거울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이런 귀한 물건들을 챙겨주시니 고맙게 받겠소이다.”

 

별 것 아닌데도 기꺼워해 주시니 제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오.”

 

이사부는 우직의 표정을 읽으면서 그가 매사에 신중하고도 현명하고 원만한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름대로 꽤 넉넉하게 누리며 사는 것 같은데도 예의를 아는 그의 품성이 돋보였다.

 

그때, 안채에서 부리는 하녀인 듯한 여자가 술상을 받쳐 들고나와 들여놓고 갔다. 우직은 이사부가 건넨 선물들을 하녀에게 들려서 안채로 보냈다.

 

험로에 고생도 하셨을 터이고, 긴장도 안 풀리셨을 것이니 약주나 한잔하시고 푹 쉬시지요.”

 

진지를 내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이렇게 주안상까지 차려내시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우직이 술상을 당겨 두 사람 사이에 가지런히 놓고는 잔에 술을 따랐다.

좁쌀로 빚은 동동주라오. 맛이 어떤지 한번 들어보시지요.”

 

노란 색깔을 띠고 있는 좁쌀 술은 맛이 아주 좋았다. 달착지근한 첫맛과 알싸한 누룩의 맛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이사부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 반배를 하면서 말했다.

 

술맛이 천하일품이구려. 아주 달고 맛있어요.”

 

이사부의 칭찬에 우직은 환한 얼굴로 술잔을 받았다.

 

술맛이 괜찮으시다니 다행이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하시길 바라오.”

 

. 정말로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저야 원체 풍류를 좋아하여 유람 반 장사 반의 심사로 건너온 사람이니, 그저 섬 구경이나 조금 시켜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우직이 받은 술잔을 들어 절반쯤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은지라 걸어서는 울릉도를 다 돌아보기가 쉽지 않지요. 제 배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보시면 거지반 보는 것이니 충분하실 거요. 그나 마나 이 섬에서 교환하여 가지고 갈 물건들이 마땅치 않으실 터인데…… .”

 

명진에게서 진작 들어두었던 말을 떠올렸다.

 

질 좋은 건오징어와 향, 또 재수가 좋으면 진주나 수달피도 구해 갈 수 있다고 들었소이다. 그런 것들이나 좀 바꿔 가면 될 것 같소이다만…….”

 

하기야 그렇지요. 왜국 사람들도 오기만 하면 주로 그 물건들을 찾아서 챙겨 가곤 한다오.”

 

우직이 왜국 이야기를 하자, 이사부는 아까 산에서 보았던 왜인들 생각이 났다.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까 산에서 만난 왜인들이 많이 낯설더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 게요? 어떻게 하여 이 섬에 들어와 그렇듯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이오?”

 

이사부의 물음에 성인봉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난 듯 우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뜸을 들인다 싶게 잠시 틈을 두었다가 말했다.

 

왕비의 비호를 받고 들어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 자들이라오.”

 

그렇다면 혹시 왕비가 왜인들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오?”

 

우직은 또다시 뜸을 들였다. 말을 해도 될 것인지 아닌지를 망설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술잔에 남은 술을 다 들이키고는 빈 잔에 술을 채워 이사부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그렇소. 우산국을 다스리는 우해대왕의 왕비는 풍미녀(豊美女)라는 이름을 가진 왜녀라오.”

 

왜녀라 하셨소이까? 어떻게 왜녀가……?”

 

상상치 못했던 우직의 말에 이사부는 깜짝 놀랐다. 왜녀가 울릉도에 들어와 왕비가 되어서 살고 있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그즈음에서 우직은 내막을 더 밝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놓기 마땅치 않은,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사부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말없이 천천히 술잔을 기울여 마시고는 잔에 술을 채워 우직 앞에 내밀어 놓고는 얼른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마실수록 술맛이 더 좋소이다. 이리 훌륭한 가주(佳酒, 嘉酒 맛이 좋은 술)를 빚으시는 것을 보면 우직 선주께서 얼마나 훌륭한 가풍을 이루고 사시는지 알만 하군요.”

 

원 별 말씀을 다 하시오. 술맛은 물맛을 따라간다 하지 않소이까? 울릉도에 좋은 물이 나니 술도 맛이 있을 따름이지요. 그건 그렇고, 말씀 나온 김에 내일 내가 골계에 갈 일도 있어서 배를 띄울 예정이니 함께 가십시다. 박 전주께서 물건을 거래하실 마땅한 사람도 소개해드리겠소.”

 

정말로 그리 해주시겠소이까? 내가 참으로 훌륭한 은인을 만난 것 같구려. 감사하기 짝이 없소이다.”

 

이사부는 비로소 안심하기 시작했다. 우직의 표정에서도 경계심이 아주 풀려 있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한동안 술잔을 더 나누었다. 우직은 뭍의 풍속에 대해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이사부는 정말 장사꾼인 양 하고 그가 묻는 대로 소상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

새벽하늘이 맑았다.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우직은 서둘러 배를 띄워놓고 이사부와 명진을 깨웠다.

 

예선창에서 고깃배를 함께 타고 오른 쪽으로 돌아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섬은 온통 기암괴석의 절경이었다.

 

날이 맑고 바다가 잔잔하니 운이 좋으신 거요.”

뱃머리에 앉아 물길을 보고 있던 우직이 이사부에게 말했다.

 

잔잔한 날이 그렇게나 흔치 않던가요?”

 

이사부는 우직의 말을 기분 좋은 목소리로 되받았다.

 

고요한 날이 드물어요. 울릉도 앞 바다는 물길이 워낙 사나워서 배를 띄우지 못하는 날이 잦다오. 그런데 오늘은 천행으로 하늘도 괜찮고 바다가 얌전한 편이구료.”

 

예선창 그 뒤쪽을 바라보니 나리촌이라는 곳으로 이어지는 계곡들은 완만했다. 하지만, 성인봉에서 바라보았던 지세를 되새겨보면 나리촌은 그 뒤쪽에 성인봉을 비롯한 다섯 개의 봉우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할 지역이어서 진격로로 삼을 만한 지형이 결코 되지 못했다.

 

배는 섬을 오른쪽에 끼고서 계속 돌아나갔다. 우직은 바다에 외떨어진 거대한 골무모양을 한 바위를 딴바위라고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잇달아 나타난 세 개의 우뚝한 바위를 삼선암이라고 알려줬다.

 

배가 이윽고 오른쪽 아래로 더 꺾어서 내려가자 왼쪽에 제법 큼지막한 섬이 하나 나타났다.

 

저게 깍새섬이라는 곳이지요.”

 

이사부는 깍새라는 말에 흠칫 놀랐다. 깍새라면 지난번 전쟁 때 군사들을 공격하여 곤경을 안겨 준 새들 중 한 종류가 아니던가.

 

저 섬에는 깍새라는 새가 많이 삽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지세가 워낙 험하고 배를 대기도 어려워서 사람은 살 수가 없다오.”

 

거기에서부터는 또다시 울릉도 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우직은 그 절벽을 가리키며 와달리라고 불렀다. 절벽을 오른쪽으로 놓고 뱃머리를 아래로 돌렸을 즈음, 우직은 배를 부리는 사공들에게 소리를 쳤다.

 

속도를 좀 높여라. 부지런을 떨어야 일을 보기가 수월할 것 같구나.”

 

뱃길 왼쪽 저 멀리에 깍새섬보다도 훨씬 더 큰 섬 하나가 보였다. 가파른 절벽 위에 무척 넓어 보이는 평지가 펼쳐져 있는 섬의 모양이 독특했다.

저 섬은 꽤 크군요.”

 

예 저 섬은 울릉도 주변에서 제일 큰 섬이라오. 섬조릿대가 우거진 섬이라 죽서도(竹嶼島)’라고 부르지요.”

 

죽서도를 지나자 오른쪽에 작은 포구가 하나 나타났다. 포구 안에는 여러 척의 작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그 뒤쪽 지형을 살펴보니 역시 골이 깊었다.

 

포구가 하나 보이는 데, 저기는 어디지요?”

 

거기는 큰 모시개라고 부르는 곳이라오.”

 

거기를 스쳐 지나자 천애의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경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깨끗한 바다와 우람한 검은 바위들, 그리고 태고의 빛깔을 간직한 원시림들이 수려했다. 바다 쪽으로 돌출하여 나온 바위산도 눈길을 끌었고, 안으로 오목하게 파여 들어간 지형을 따라 펼쳐지는 암벽 또한 이채로운 모습이었다. 거기에도 작은 포구가 보였다.

 

저곳은 작은 모시개라고 하는 포구이고, 그 아래쪽이 새각단과 우복, 옥천이라는 곳이라오. 저기 저 숲속에 흑비둘기들이 많이 살고 있지요.”

 

이사부는 흑비둘기라는 말에 새삼스럽게 그 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지역은 비교적 완만해서 접근이 용이할 것도 같았다. 그곳을 벗어나자 바다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가두봉이라고 부르는 곳이라오. 이 봉우리를 돌아서면 몽돌해변과 묵은 향나무가 많은 통구미가 나타날 거요.”

 

우직의 말대로 봉우리를 돌아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몽돌바닷가가 펼쳐졌다. 섬은 여전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디를 살펴보아도 좀처럼 접근이 용이하지 않도록 되어있는 지세에 이사부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이제 골계에 거의 다 왔소이다.”

 

섬의 오른쪽 끝에서 우회전을 한 우직의 고깃배가 남쪽 어느 포구 앞에 이르렀을 때, 이사부는 처음으로 포구 양안에 정박해 있는 우람한 우산국의 군선(軍船)들을 보았다. 긴장이 깊어졌다.

 

이사부는 조심스럽게 군선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다 합하여 스무 척이 넘어 보이는 군선들은 지난번 전투에서 이사부가 보았던 대로 투박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배에 사용된 목재가 여간 튼실해 보이지 않았다. 지난 해전에서 중군의 전선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던 바로 그 군선들이었다. 놀란 눈으로 군선들을 바라보던 명진이 꿀꺽 소리가 나도록 침을 한 차례 삼켰다.

 

여기가 우산국 왕궁이 있는 골계라는 고을이라오. 남양(南陽)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이사부는 골계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경계가 삼엄하지 않을까 더욱 긴장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군선들 위마저도 군사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포구는 이상하리만치 한가로웠다.

 

바깥에서 보는 골계는 가운데 돌출한 산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제법 넓고 평평한 골짜기가 뻗어있는 형국이었다. 골짜기의 양쪽 바깥 산들이 마치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영락없는 천연요새였다. 특히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이 사방을 경계하듯 마을을 지키고 있는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양 쪽 골짜기를 타고 흘러 내려온 두 개의 완만한 계곡은 마을 한복판 앞쪽 바다근처에 이르러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이곳이 울릉도의 중심지역인 셈이군요.”

 

이사부의 물음에 우직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섬의 남쪽 지역이라, 사철 햇볕이 잘 들고 계곡물이 풍부한데다가 흙살도 기름져서 농사가 잘 되는 곳이기도 하지요.”

 

우직은 물이 묻어 반질거리는 몽돌이 수북하게 깔려있는 포구 안쪽으로 배를 댔다. 배가 포구에 닿자 우직이 말했다.

 

, 여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십시다.”

 

이사부는 명진과 함께 등짐을 진 채 배에서 내려 우직을 따라 몽돌을 절걱절걱 밟으며 마을로 향했다. 밖에서 볼 때는 모르겠더니, 양 쪽 골짜기에 펼쳐진 동네는 예상보다 훨씬 더 넓은 평지 공간이었다. 지붕에 듬성듬성 돌을 얹어 눌러놓은 너와집과 갈대를 이어 지붕을 올린 투막집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고,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꽤 여럿 눈에 띄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마을 근처에 다닥다닥 일구어진 비탈밭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나가 있었다. 그들은 봄 농사를 위해 밭고랑을 손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아니, 표정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이상스러운 것은 그들의 무표정에서 결코 평안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는 그들의 무덤덤한 표정에서 이사부는 야릇한 공포 같은 것을 보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조차 발동하지 않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저기가 왕궁인 모양입니다요. 예전 이곳에 왔을 때는 없었는데…….”

 

남서천이라고 부른다는 왼쪽 계곡을 중심으로 펼쳐 내린 마을 위쪽 저 만큼 비탈길 위쪽에 삐죽 솟아 지붕이 높아 보이는 큰 건물을 가리키며 명진이 말했다. 검은색과 짙은 회색으로 조화를 이룬 목조 궁궐은 무척 컸다. 한눈에 보기에도 낯익은 건축양식은 아니었다.

 

궁궐 앞쪽에는 왕궁을 지키는 군사들이 눈에 띄었다. 수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경계병들의 검붉은 복색이 야릇한 위압감을 던져주고 있었다.

우직은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 오른쪽 남양천이라고 부르는 계곡을 타고 형성된 많은 가옥 중 큼지막한 한 너와집으로 이사부 일행을 안내해 들어갔다.

  

<후편에 계속>

 

  

▲  안 휘 소설가

 

[작가 소개]

 

안 휘 소설가

문학21 신인상 수상(소설)/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저서-장편소설] ‘동해영웅 이사부’, ‘이인좌의 봄’, ‘애숙의 나라’ [소설집] ‘광어와 도다리’, ‘치와와 실종되다’ [연재소설] 경기신문 강남 여우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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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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