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팩(Scott Peck)은 자신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그 길을 가기 위한 자기 훈육의 도구로,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균형 잡기를 제시했다. 우리는 어제 진리에 대한 헌신을 훈육 도구를 말하면서 거짓말은 진실을 숨기는 행위와 같다는 말까지 했다. 어제 못한 이야기를 우선 좀 한다.
거짓이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작은 거짓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은 거짓을 뒷받침하는 작은 거짓들이 보태 진다. 그 다음에는 그런 거짓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을 덮기 위해 생각의 흐름을 왜곡한다. 그 왜곡된 생각의 결과를 감추기 위해 더 많은 거짓이 동원된다. 필요할 때마다 거짓을 행하면서 거짓은 이제 습관이 된다. 거짓이 '무의식적인' 믿음과 행동으로 굳어지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우리는 이를 '자기 기만'이라 한다. '자기 기만'은 '스스로를 속인다'는 뜻이다. 양심에서 벗어나는 일을 무의식 중에 행하거나 의식하면서 강행하는 경우이다. 자기 기만을 피하는 길이 그저 잠시 앉아 살피는 일인데도, 우리는 떠밀려 살아온 관성을 제어할 용기를 못 내고 있다. 기만이라는 덫에 걸리는 사냥감은 대개 탐욕일 경우가 많다. 나의 탐욕과 집단의 탐욕을 바라보고, 해체하고, 인정하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새우가 껍질을 벗고 성장하는 시간처럼 인간도 진정한 어른으로 탈피하는 시간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기만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거짓이 성공을 거두면 그 후에는 교만과 우월 의식이 따라온다. 사실 거짓으로 이룬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서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모두 속임수에 넘어간 것처럼 보이면 '나를 제외하고 모두 멍청하다'라는 교만과 우월 의식에 빠지게 된다. '모두 어리석어서 나에게 속아 넘어간다. 따라서 나는 원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나중에 닥친다. 거짓으로 개인과 현실, 혹은 사회와 현실 간의 관계가 무너질 때 지옥이 찾아온다. 그러니 진실을 보고 진실을 말하여야 한다. 진실은 삶의 깊고 깊은 원천에서 끊임없이 샘 솟는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필연적인 비극에 맞닥뜨리더라도 영혼이 위축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팩은 거짓말을 하얀 거짓과 까만 거짓말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까만 거짓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고, 하얀 거짓말은 내용 자체는 거짓이 아니지만 진실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빼 버린 말이다. 하얀 거짓말은 알아차리기도 따지기도 더 어렵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까만 거짓말보다 더 치명적이다. 그러나 하얀 거짓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므로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용납된다. 그렇지만 진실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 진실을 숨기는 행위는 거짓말과 같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 진실을 숨기는 것이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 어서는 안 된다. 즉 권력이나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진실을 숨기는 결정은 상대방 입장에 서서 내려야 한다.
-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 다른 사람의 필요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사자가 영적 성장을 위해 진실을 유용하게 사용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 이다.
- 영적 성장을 위해서 진실을 활용할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할 때 대체로 우리는 과대평가보다는 과소평가하기가 쉽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자기 훈육의 길이고, 영혼의 성숙을 위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지도를 세상으로부터 감추면서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만 정직하고 개방적이며 적당히 친밀한 사람을 살려고 한다. 그 길이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직과 진실에 헌신하는 힘든 생활에 따른 보답은 그 힘든 것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개방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지도를 계속 도전 받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성장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다. 두려울 게 없어서 자유롭다는 거다. 무엇인가를 감추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이들은 정직 하려는 자기 훈육에 필요한 에너지가 비밀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더 적게 든다는 것을 안다.
자기 훈육은 유연성과 분별력을 요구하는 힘들고도 복잡한 과제이다. 그래 오늘 아침 스캇 펙이 지금까지 말한 자기 훈육의 도구들을 좀 정리를 해본다.
- 정돈이 잘 되고 효율적인, 현명한 사람을 위해서는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쁘게 살려면 파괴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 현재에 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동시에 진실로 우리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저히 정직 하려고 애쓰고, 그러는 한편 필요할 때는 진실을 모두 밝히지 않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
- 끝으로 훈육 자체가 훈육 되어야 한다. 스캇 펙은 훈육을 훈육하는 데 필요한 훈육을 "균형 잡기"라 불렀다.
이 네 번째 훈육 도구인 "균형 잡기"는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이어간다. 꿈만 먹으며 낮게 엎드려 살아가고 싶다. 잔뜩 엎드리고 자기 훈육하다 보면 내 영혼의 한 뼘 이상 자라 있겠지. 엎드린다는 말은 마음에 번뇌가 적고, 몸에 괴로움이 사라진 경지이다. 그런 상태는 마음이 엎드리고 항복한 거다. 그건 그냥 있는 그대로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엎드림/지연
비 그치고
새 소리는 실 한 줄
꽃잎이 열리는 소리는 실 네 줄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리 매듭을 만들며 날아간다
바람이 솔잎 살갗으로 건너올 때
나는 몇 줄로 이 세상에 수를 놓고 있나
아무 색도 없이
방범창에 방울방울
그믐 숨소리로 흔들린다
실패에 감긴 실의 후회는 아무것도 아니리
살아 있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내 귀에 꽂은 날이니
구름 솜에 꽂힌 녹슨 바늘이어도 좋다
오늘은 추리닝을 입고 물방울을 바라볼 일
균형잡기는 우리에게 융통성을 주는 훈육이다. 화를 내는 것을 갖고 생각해 본다. 화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세대에 걸쳐 우리 안에 키워진 감정이다. 우리는 언제 화를 내는가? 다른 유기체가 우리의 지리적 또는 심리적 영역을 침해하려고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짓누르려고 하는 것을 자각할 때 우리는 화를 낸다. 화를 내야만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잘 살아가려면 분노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뿐만 아니라 표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소유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뇌의 우위 기능인 분별력이 하위 기능인 감정을 규제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화를 처리하는 법을 알아야 하고 화를 표출할 때는 가장 적당한 때와 방식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들은 모두 유연한 대응 방식을 갖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상충되는 것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이를 조절해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러한 균형잡기라는 훈육에서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포기'이다. 그러나 포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단순히 내려놓음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물처럼 흐른다.
“물처럼 살자!”고 다짐하며, 나는 내 호를 “약수(若水)”라고 지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 중에 하나는 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조화와 협동, 그리고 공동체 의식으로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바다로 흘러간다. 물은 헌신과 봉사의 마음으로 무장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 가기도 하지만, 어느 곳이든 빈틈없이 파고든다. 즉 온화하고 느린 것 같지만, 미끄러지듯 유연하며 끊임없이 일정한 속도로 이어진다. 변화무쌍하면서도 거침없이 흐르는 물의 철학, 바로 그 기저에 상선약수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는 성선약수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의 가르침을 배운다.
1) 물로부터 겸손을 배울 수 있다.
2) 물로부터 여유를 배울 수 있다.
3) 물로부터 부드러움, 아니 유연함을 배울 수 있다.
4) 물로부터 자신만의 이익 추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철학을 배울 수 있다.
다시 '포기' 이야기로 돌아 온다. 물과 달리, 우리는 무엇인가를 포기하면 우울하다. 사랑한 어떤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 적어도 내 일부분이고 나와 친근한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이 바로 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으로 건강한 인간은 당연히 성장해야 하고,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옛 자아를 포기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므로 우울증은 정상적이고 근본적으로 건강한 현상이다. 이 문제는 내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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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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