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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상 왕조의 중원 장악과 도읍지 박의 위치-[자료] 구글지도 위에 필자가 그림 |
중국에서 하(夏)나라는 전설상의 나라에 해당하지만 1996년부터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 이루어지면서 역사시대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개입하여 정치적으로 역사를 해석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하상주단대공정 결과 하(夏)는 기원전 207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까지 존립한 것으로 제시되었으며, 그 위치는 산서성과 하남성 일대의 낙양과 복양, 안양, 상구 지역 등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夏)는 우임금부터 17대에 걸쳐 존립하였으나 걸(桀)에 이르러 멸망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걸왕은 무력으로 소부족들을 공격하였는데, 산동지역에 위치하였던 유시씨(有施氏) 부락도 그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걸왕은 3대 경국지색 중 한 여인인 말희를 맞아 들이게 된다. 이후 걸왕은 말희와의 향락과 주색에 빠져들어 국력을 소모하고 민심조차 잃게 된다. 연못을 파서 술로 채우고, 나무에 고기를 건다는 뜻의 주지육림이라는 말이 걸왕에게서 유래되었다.
하왕조와 상왕조는 사실상 병립한 나라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갑골문 분석 결과 상의 시조는 제곡으로 올라가며, 성탕은 중흥군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은본기에도 “설부터 성탕에 이르기까지 여덟 번이나 도읍을 옮겼는데, 탕이 비로소 박(亳)에 도읍을 정한 것은 선왕(제곡)이 있던 곳을 따른 것이니, 이에 제고(帝誥)를 지었다.”고 했다.
즉 상나라는 삼황오제 중 한 사람인 제곡 고신이 건국한 동이족의 나라였던 것이다. 따라서 절대 연도로 보면 상나라가 하나라보다 먼저 건국되었고, 누가 먼저 중원을 차지했는가를 기준으로 하면 하·상·주가 맞다고 볼 수 있다.
하·상이 병존하는 상황속에서 여러 제후들이 탕에게 몰려 들었고, 마침내 탕은 걸을 토벌하고 중원을 차지하게 된다. 하·상 교체시 대규모 정복전쟁은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걸왕은 명조로 도망갔으나 유랑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중원을 장악한 상나라 세력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갑골문 발굴을 주도했던 학자들과 홍산문명의 발굴을 지휘한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주도되었다.
초기 갑골문 연구를 주도했던 왕국유(王國維)는 상의 기원과 관련하여 그 도읍인 박(亳)이 산동성 일대를 비롯한 동방에 있다는 점을 들어 상의 동방유래설을 주장하였다. 이후 상나라 전 시기에 걸쳐 박이 도읍지로 등장한다. 중박, 남박, 북박, 서박, 동박, 박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기집해에 따르면 박왕을 탕왕이라 했고, 사기색은에서는 서융의 군장을 박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안양 은허 유적 발굴을 총지휘했던 부사년(傅斯年)은 『이하동서설』을 통해 동북에서 상나라가 일어났으며, 발해와 연주가 상나라의 중심지역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특히 “박이 곧 상인(商人)들의 최초의 국호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장광직은 『상문명』에서 상나라의 지배자들은 동쪽에서 온 정치집단이며, 정복자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홍산문명 유적의 발굴자인 소병기(蘇秉琦)는 홍산문화를 황제족의 문화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는데, 이에 대해 이덕일 박사는 적봉을 중심으로 한 홍산문명을 중화문명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러한 소병기도 “은나라 사람들의 조상은 남으로는 연산(燕山)에서 북으로는 백산흑수(백두산과 헤이룽강) 사이에까지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동북에서 발원한 상나라는 서쪽의 여러 세력들을 제압하여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고, 화하족은 물론 동이족들과도 끊임없는 갈등관계를 지속하여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곳에 박이 생겨났는데, 이에 대해 여러 학자들은 박(亳, 薄) 등이 밝다는 뜻의 밝으로서 발, 벌, 번, 부리 등과 같은 뜻을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밝족, 즉 태양족인 고조선의 발 세력이 중원에 들어가서 상나라를 건국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 시리즈 3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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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동(朴東) 박사 |
[필자소개]
-박동(朴東) 박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박사, 정치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국장을 거쳐서 현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무렵 도라산 통일사업을 하던 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도라산의 라(羅)의 유래에 대해 꽂혀서 최근까지 연구했으며, 중국의 운남성 박물관에서 라의 실체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었다. 현재 연구 결과를 책자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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