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東-12] 조나라 무령왕의 호복 착용과 중산국 정벌

민족·역사 / 안재휘 기자 / 2020-07-25 01:47:42
[시리즈] 박동(朴東) 박사와 함께 하는 ‘동이족과 한민족’

[그림] 중산왕삼기(中山王三器) 등 중산국 출토 주요 유물들

[그림] 중산왕삼기(中山王三器) 등 중산국 출토 주요 유물들

[자료] 백도백과

 

백적의 나라 선우 중산국은 동이족 상나라의 제후국이었다. 천진의 선우텐에서 선우황비문이 발굴되었는데, 비문에는 선우황이 은상의 후손이며, 기자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형구 교수가 확보한 탁본에는 “(선우)의 이름은 황이며, 자는 백겸인데, 그 조상은 은나라 기자(箕子)의 후예에서 나왔다(君諱璜 字伯謙 其先祖出于殷箕子之苗裔).”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학자 진반(陳槃)선우는 일명 중산이라고 한다. 회남자는 우()는 혹 우()라 했다.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子姓)인데,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평산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과 봉지 우()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고 한다.

 

선우국은 춘추 초기에 산서성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선우씨(鮮虞氏), 비씨(肥氏), 고씨(鼓氏), 구유씨(仇由氏)4개 씨족국가를 거느리고 있었다. ()과 진() 사이에 위치해 두 나라의 패권경쟁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진()나라와 혼인관계로 맺어지기도 했으며, 나중에 춘추 오패 중 한 사람이 된 진 문공 희중이(姬重耳)가 어머니의 나라인 적국(翟國), 즉 백적으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백적은 강성해서 관자에서는 백적이 중원의 진나라를 포함해 여러 소국들을 공격했는데, 제 환공이 서쪽으로 백적을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 환공 북벌의 명문을 제공한 세력이 바로 선우 백적국이다.

 

춘추 중·후반 선우국의 주적은 진국(晉國)이었다. ()은 고(), (), 구유(仇由) 등 선우()의 속국들을 먼저 점령하고 최후에 선우를 소멸시키는 전략을 취하였다. 기원전 530년부터 진나라는 선우국을 공격하여 기원전 527년 고를 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기원전 507년 선우가 진나라 평중에 출병하여 진군을 대파하고 진나라가 비와 고를 멸하고 중인성을 점령한 일전의 원수를 갚았다. 기원전 506년 선우인은 험준한 중인성(지금의 당현 서북 粟山)에 건국됐다. 중인성 성내에 산이 있어 '중산(中山)'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초기 중산국(中山國)이다.

 

기원전 453, , , 위 세 집안이 진을 삼분하여 진나라는 사실상 멸망했다. 기원전 403년 조, , 위는 제후로 봉인되어 진, , , , , , 위 전국 7웅의 패권 다툼에 동참했다. 중산국은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부흥을 시작했다. 기원전 414년 중산무공은 부족을 이끌고 산간지방을 떠나 동부평야로 이주하여 호북성 정주에 새로운 도읍을 세웠다. 그러나 무공의 후계자인 환공이 국정에 소홀한 결과 기원전 407년 위나라에 멸망 당하였다.

 

그러나 중산국은 조선의 방국으로서 바로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복국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석가장을 중심으로 성립된 중산국은 조나라의 가슴속 우환거리가 되어 끊임없이 조나라의 공격을 받게 된다. 사기조세가에는 조 무령왕이 중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호복을 입고 말 타고 활을 쏘는 조선의 호복기사(胡服騎射) 습속을 따랐다고 했다.

 

기원전 296년 조나라에 정벌되기 직전까지 중산국은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방계국가였다. 그런데 조가 중산국을 정벌한 즈음에 연나라가 조선을 공격한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3세기말 무렵에 조(연과 조선·중산이 거의 같은 시기에 대규모 전쟁을 치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 결과 중산은 조나라에 정벌당하고 조선·요동은 연나라 진개에게 밀려 진황도 인근 요동까지 퇴각해야만 했다.

 

중산국이 멸망한 후 그 존재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가던 1974년 중국 화북성 평산현에서 농전을 정리하던 중 구릉에서 전국 시기 중산국의 수많은 문물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1978년 중산왕릉 발굴은 중국의 20세기 100대 발굴 중 하나로 평가할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4마리 용과 4마리 봉황을 금은으로 상감한 책상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표현된 용과 봉은 동이족들의 용봉사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중산왕 3() 중 중산왕정()은 세계 역사상 최대의 철족 동정으로 평가된다. 이들 유물은 중원의 유물들과 품격이 다르고, 한자체도 매우 세련되어 중원과 무관한 동북 동이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국학자 곽말약은 중산국을 예술의 나라라고 칭송했다.

-시리즈 13편에 계속됩니다

 

 

 

박동(朴東) 박사

[필자소개]

 

-박동(朴東) 박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박사, 정치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국장을 거쳐서 현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무렵 도라산 통일사업을 하던 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도라산의 라()의 유래에 대해 꽂혀서 최근까지 연구했으며, 중국의 운남성 박물관에서 라의 실체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었다. 현재 연구 결과를 책자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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