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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래이 마한과 영산강 월지국의 성립 [자료] 구글지도 위에 필자가 그림 |
『양직공도』에는 “백제가 옛 래이 마한에 속한 나라였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백제 성왕 시기 사신의 모습과 더불어 백제의 출자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양직공도』의 기록에 의하면 산동반도의 동이족인 래이가 마한이 되고, 마한이 백제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보다 이전인 『삼국지』한조에도 마한에 속한 50여국 중 백제(伯濟)가 등장한다. 『양서』백제전에는 백제가 마한 54개국 중 하나였는데, 여러 작은 나라들을 합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마한과 백제의 성립이 산동반도의 래이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래 래이족은 양이(良夷)로서 발조선 또는 낙랑조선의 핵심세력을 형성하였다. 래이족이 동이의 주축이 된 이유는 동이족들이 주로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서로 교역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 산동반도에는 래이족보다 동쪽 바닷가에 우이(禺夷)족이 있었다. 우이는 월씨(月氏)를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된다. 발조선은 월지족과 래이족, 그리고 회대 지역의 서이(徐夷)족이 세운 부여국의 다른 표현이었다.
발조선, 즉 부여 세력이 연의 진개에게 침공당한 이후 발세력과 래이 세력은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그리고 영산강 유역에 걸쳐 마한을 건국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갈래 세력은 요동반도를 거쳐 한반도 평양에 마한을 건국한다. 이 세력은 기준에게 일시 정복되었다가 다시 회복하였으나 결국 고구려에 정복되어 고구려와 함께 요동을 공격하기도 한다. 평양 마한 세력 중 일부는 한반도의 한강 이남에 잔존하고 있었는데, 이 마한은 온조 세력에게 멸망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른 한 갈래는 산동반도에서 변산반도를 거쳐 한반도로 이주해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 마한을 건국하였다. 산동반도에서 영산강 유역으로 이동한 세력은 발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기원전 3세기 말 경에 영산강 유역으로 진입하여 마한 월지국을 건국하였다. 이 시기는 대륙과 한반도에서 정치적 격변이 발생하여 각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초기 마한의 주축을 이루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발세력 중 영산강으로 이주한 씨족은 부여씨, 박씨 등 해상의 발(發) 세력들이었다. 이들은 나주 반남과 영암 시종 일대로 이주하여 반남 자미산성 일대에 월지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다. 반남은 발람으로 발음되어 발계 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영산강 유역에 선주한 이후 서해 바다를 건너서 수많은 동이족들이 이주해온다. 특히 남방의 라계 축융족들이 대거 이동해오면서 발 세력과 라 세력은 발라국을 성립시키게 된다.
나주 반남의 월지국에 유입된 씨족으로는 먼저, 부여씨가 있다. 은나라의 멸망 이후 그 유민들은 부여로 결집하게 된다. 색리국(索離國)을 탈출한 동명이 세운 부여국에는 발(번)세력만이 아니라 조이족 중 하나인 서이(徐夷)가 주축 세력이었다. 대만의 『여서서사유씨족보(余徐徐佘俞氏族谱)』에 따르면 여씨와 서씨는 여씨라는 같은 뿌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사서에서는 부여씨에 대해 기록할 때 여(余)와 서(徐) 를 동일한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진서』 모용수편에는 서암(徐巖)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같은 사건에 대해 『자치통감』에서는 서(徐)를 여(餘)로 바꾸어 여암(餘巖)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리고 모용위가 기록한 서울(徐蔚)에 대해서도 『자치통감』에서는 여울(餘蔚)로 기록하였다. 이천 서씨 족보에도 서씨의 시조를 여수기(余守己)로 삼고 있다.
발조선은 상을 계승한 부여족 나라였다. 한반도로 이동한 발 세력 중에는 월씨족을 나타내는 박씨와 색씨가 포함되어 있다. 마한 54개국 중 정읍으로 비정되는 대석색국(大石索國)과 소석색국(小石索國)은 은민육족 중 하나인 색씨들이 세운 나라로 파악된다. 그리고 나주 반남의 월지국에는 반남 박씨를 중심으로 무안 박씨, 나주 박씨 등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발(發)’은 프리기아족(부여족), 사카족을 포함하는 박씨(朴氏)를 가리킨다. 김성호 박사는 박씨가 “이란계 스키타이족”이라고 주장하였고, 정형진 박사는 발이 프리기아족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밝 또는 박(朴) 족의 시조는 태호 복희씨로 파악된다. 봉족(鳳族) 또는 풍족(風族)의 시조로 불리우는 태호(太嗥) 복희(伏羲)씨는 포희(包犧)씨라고도 한다. 중국의 홍수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커다란 홍수가 발생하였는데 복희와 여와는 커다란 조롱박(葫芦里)에 들어가 살아남게 되었다. 박에서 살아나와 복희라 불렀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진인(辰人)은 박[호(瓠)]을 박(朴)이라 했고 처음에 [혁거세가 태어났던] 큰 알이 박과 같았기 때문에 박(朴)으로 성을 삼았다.”고 한다. 복희씨의 홍수신화와 모티브가 동일하다.
김성호 박사는 박씨족이 도읍한 곳이 바로 월지국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놀라운 통찰력인데, 다만 그는 월지국이 웅진에 있는 것으로 잘못 파악했다. 월지국의 도읍은 나주 반남으로 반남 박씨의 경우 발람 박씨, 발랑 박씨 등으로 발음되어 사실상 발라 박씨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박씨 중 한반도에 가장 먼저 이동한 세력이 반남 박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안박씨와 나주 박씨 등도 비슷한 시기에 영산강 유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시리즈 19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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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朴東) 박사 |
[필자소개]
-박동(朴東) 박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박사, 정치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국장을 거쳐서 현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무렵 도라산 통일사업을 하던 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도라산의 라(羅)의 유래에 대해 꽂혀서 최근까지 연구했으며, 중국의 운남성 박물관에서 라의 실체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었다. 현재 연구 결과를 책자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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