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朴東)-04] 성주지회(成周之會)와 동이족

민족·역사 / 안재휘 기자 / 2020-04-28 02:14:49
[시리즈] 박동(朴東) 박사와 함께 하는 ‘동이족과 한민족’


 

[그림] 서주 초기의 형세도 -필자가 구글맵 위에 직접 그림

 

성주지회란 현재의 중국 하남성 낙양 근처인 성주에서 주나라 성왕이 주최한 제후대회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수많은 동이족이 참여했는데, 참여세력의 성격을 파악함으로써 주나라와 동이족들과의 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나라 시대의 사서로 인정되고 있는 일주서왕회해편에는 기원전 11세기경 개최된 성주지회에 직신(稷愼), 예인, 양이(良夷), 양주(揚州), 해국(解國), 발인(發人), 유인(俞人), 청구, 흑치국, 백민, 고이(高夷), 공공(邛邛), 고죽, 불령지, 불도하(不屠何), 동호, 산융, 우씨(禺氏) 등이 참석한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직신은 숙신과 같은 나라로 조선을 가리킨다. 숙신의 위치는 제나라와 비스듬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들 나라들은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아니라 고조선, 부여 계열의 동이족들이다. 윤내현 교수는 성주대회에 참석한 동북지역 여러 세력들을 참조하여, “당시 서주의 강역은 동북으로는 지금의 하북성 중부지역을 넘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즉 서주 시대 중국 동북부는 동이족들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이 서주 성왕 시기에 존재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존재한다.

 

먼저, 북한학자 리지린은 일주서왕해해편은 우이, 래이, 회이, 조이 그리고 서이 등 동이족의 핵심세력들의 명칭을 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주 초가 아니라 춘추시대의 기록으로 추단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산동 래이족은 주 무왕이 제()에 봉한 강태공과 전쟁을 벌였고, 서이, 회이, 조이 등도 주나라와 격렬하게 갈등하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이 성주지회에 참석하는 것이 더 이상해 보인다.

 

다음으로, 일주서왕회해편의 성주지회 조문에 동호(東胡)가 등장하므로 이 조문이 실제로 쓰여진 시점을 전국시대 초인 기원전 5~4세기 경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오히려 동호가 상나라 시대(기원전 16~11세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백도백과 검색결과에 따르면 동호는 상나라 초기에 상왕조의 북방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노합하(老哈河)와 서랍목륜하(西拉木伦河) 유역에서 발굴된 동호인 묘지가 바로 이를 입증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원전 7세기 제나라 환공 시대의 사서인 관자에도 중원 일대에서 진공을 구하고, 적왕을 구금하고, 호맥(胡貉)을 패배시키고, 도하를 쳐부수고, 말을 타고 도적질을 일삼던 동호족(東胡族)을 비로소 복종시켰다.”라고 하여 동호가 등장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여러 주장들을 종합해보면 일주서왕회해편을 불신할만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은 일주서의 기록과 더불어 춘추좌전소공 9년조에는 숙신과 연, 박은 우리 주나라의 북쪽 땅이 되었다.(肅愼燕亳吾北土也)”라고 하여 숙신과 박()이 주나라의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박은 밝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발계 지명으로서 발인과 같은 부여세력으로 분석되며, 직신은 곧 숙신과 같은 세력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일주서왕회해편에는 양이(良夷)와 발인(發人) 등과 관련해서 양이는 재자(在子)(를 바쳤다)...발인(發人)은 포(, 큰 사슴)를 바쳤는데, 포는 사슴과 같이 빨리 달린다.”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에 대해 진나라의 공조(孔晁)는 주석하기를 양이는 낙랑이를 가리킨다(良夷, 樂浪之夷也)”라고 했다. 중국의 다수 학자들은 공조의 주석에 의거하여 양이가 고조선의 선민인 낙랑이(樂浪夷)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원래 양이는 래이족이었는데 이들이 동북으로 옮겨가 낙랑을 성립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학자 묘위는 양이 해석(良夷 解析)”이라는 논문에서 성주지회에 참석한 양이가 낙랑이(樂浪夷)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양이의 원류에 대해서 예와 맥 또는 예맥이라는 설, 단군조선은 소호씨가 동쪽으로 옮겨가서 세운 부족이라는 설, 양이는 래이(萊夷)라는 설 등 세 가지가 존재한다고 설명하였다.

 

양이가 래이라는 설은 래이족 중 일부가 동북으로 이주하여 낙랑을 성립시켰다는 주장과 동일하다. 그리고 발인은 양이의 인근 발해만 유역에 있었던 발족을 가리키며, 또 우씨(禺氏)는 월지족을 가리킨다. 성주지회에 참석한 동이족들의 존재는 이들이 상나라가 멸망한 이후 발해만 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리즈 5편에 계속됩니다

 

박동(朴東) 박사

 

 

[필자소개]

 

-박동(朴東) 박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정치학박사, 정치경제학 전공)를 졸업하고 참여정부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연구실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기획국장을 거쳐서 현재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05년 무렵 도라산 통일사업을 하던 분들과 교류를 하다가 도라산의 라()의 유래에 대해 꽂혀서 최근까지 연구했으며, 중국의 운남성 박물관에서 라의 실체에 대해 깊숙이 알게 되었다. 현재 연구 결과를 책자 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이메일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