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보수주의:전통을 위한 싸움』-에드먼드 포셋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4-03-31 08:10:38
-프랑스 혁명 이래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보수주의의 역사를 조명한 책
-보수주의는 다스리는 데 익숙한 터라 ‘왜’ ‘무엇’을 위해 통치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우파는 사상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보수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잘 듣는 귀’를 가졌다는 것

 

 

 신간 보수주의:전통을 위한 싸움(글항아리)은 영국의 정치 전문 언론인이자 좌파 자유주의자인 에드먼드 포셋(78)이 프랑스 혁명 이래로 본격화하기 시작한 보수주의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인 중심부를 대표하는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보수주의에 초점을 맞춘다. 포셋은 또 과소 평가된 보수주의 인물을 재평가하고, 오늘날 강경우파의 시초가 되는 오래전 인물도 찾아내어 재조명한다.

 

 전작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으로 권위, 명확성, 간결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은 포셋은 보수주의: 전통을 위한 싸움에서 다른 반쪽의 이야기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번창하는 것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구절로 시작되는 책은 18세기 혁명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보수주의를 연대기에 따라 네 시기로 나눠 기술한다. 하지만 보수주의 자체가 오른쪽에서 중간, 다시 더 왼쪽으로 움직여왔기 때문에 내용은 보수주의자끼리 서로 엎치락뒤치락 생존해온 역설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지적으로나 정당 차원에서나 우파가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그러나 보수주의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이고, 초시장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국민(대중)’의 이름으로 대변하는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후자는 타자에 대한 낙인 찍기, 사회적 다양성의 부정과 내부 적에 대한 사냥,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왔다.

 

 오랫동안 좌파에 표준 문헌이 있었던 것과 달리 보수주의에는 그에 상응하는 문헌이 없다고 여겨졌다. 지적인 면에서 보수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천성적인 지배자였던 그들은 다스리는 데 익숙한 터라 ’ ‘무엇을 위해 통치하는지를 대중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파는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적 비용과 태만, 실패를 지적하는 데 주로 자신들의 독특한 목소리를 내왔을 뿐 사상을 설명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이 책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보수주의자들의 면모를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잘 듣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다. 포셋은 단언한다. 정치 관행과 이데올로기의 성공은 잘 듣는 귀에 달려 있다고. 정치인의 자질은 음역대가 다른 목소리들을 다 들을 수 있는 귀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보수적 유권자의 핵심인 잉글랜드 중산층의 정서를 파악하는 완벽한 귀를 가졌고, 레이건 대통령은 분열된 나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한 귀를 가졌다. 또 고()보수주의자 가운데 미국 우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패트릭 뷰캐넌보다 더 밝은 귀를 가진 이는 없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는 강경우파를 조망한다(저자는 극우보다 강경우파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강경우파는 끝자리를 벗어나 정상적인 정치적 경쟁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강경우파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후퇴를 의미한다. 가령 현재 미국의 공화당이 강경우파다. 주류 보수주의자들은 그동안 강경우파의 두드러진 약점을 숙고하지 않았다. 온건한 우파에서는 보통 보수주의(좋은 것)를 강경우파(나쁜 것)와 구별하지만, 저자는 강경우파가 보수적 유권자들로부터 자라났음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흔히 비판하듯 그들은 이상하거나 극단적이라기보다, 대중적이고 정상적이다. 즉 저자는 그들이 대중적이고 정상적이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적으로나 정당 차원에서나 우파가 지배하는 시대이지만, 그러나 보수주의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1945년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만들고 떠받치는 데 많은 일을 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가 한쪽이고, 초시장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국민(대중)’의 이름으로 대변하는 비자유주의적 강경우파가 다른 한쪽이다. 후자는 타자에 대한 낙인 찍기, 사회적 다양성의 부정과 내부 적에 대한 사냥, 배타적 민족주의 등을 보여왔다.

 

 포셋은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하는 온건 보수주의의 생존이 자유주의에 대한 중요한 균형이라며, 이제 온건 보수주의를 위한 싸움은 자유민주주의 전체를 위한 싸움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본다.

 

▲ 에드먼드 포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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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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