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란 제 삶의 의미와 무게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패들의 원인은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탓이다.
-쩨쩨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관심이 없고, 매사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어른 품격이 없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미래 세대에게 삶의 푯대가 될 수 있는 어른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내가 좋아하는 박선화 교수의 담벼락을 읽고 했던 생각들이다. 공동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애국심을 이해하여야 한다. 애국심이 촌스러운 국뽕이 아니다. 다음의 생각들에 동의한다.
▪ 애국심을 촌스러운 감정처럼 비웃고, 자신은 세련된 개인주의자이자 범세계시민(코스모폴리탄)인 듯 우쭐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연계의 기초적인 존재 양식을 잘 모르는 관념론자이다.
▪ 깔끔한 개인주의자들일수록 공동체도 소중히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내가 소중한 것처럼, 나와 함께하는 너도 소중하다. 그 공동체 안에서. 이건 나와 차인 모두의 자존감에 대한 역지사지를 하는 거다. 반대로 공동체를 우습게 여기는 이들은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
▪ 국수주의와 애국심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전자는 비정상이지만, 후자는 나와 가족과 세상을 지키는 코어 근육이다. 광신(독선)은 비정상이지만, 영성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여기서 영성이란 정신세계이다. 3지라고 해서,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을 말하는데, 그 지혜가 영성이다. 좀 다시 말해본다.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 , '3 지(知)'에서, 지식은 주로 정보, 물질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 그리고 그걸로 인간이 누리는 부를 확장하는 것이다. 고미숙은 이걸 '기술지(技術知)'라 부른다. 지성은 '문명지(文明知)'라고 정의한다. 물질을 알고 부를 확장하면 그걸 어떻게 나누고, 이걸 어떻게 인간 삶에 적용할까, 이 문제가 부각되는데, 그럴 때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 지성이다. 기술지와 접속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지혜이다. 인간은 천지를 연결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 너머가 궁금하다. 그때 우리는 인간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 묻게 된다. 그리고 지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질문하는 것이 지혜이다. 이 영역으로 가면 기술지와 문명지처럼 손에 잡을 수 있는 게 없다. 거대한 무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생명과 우주가 무엇인가라고 묻게 되면 그 보이는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린다. 그걸 지혜라고 부르는데, 동시에 영성(靈性)이라고도 한다. 그걸 인류학적 용어로 쓰면 '자연지(自然知)'이다.
고미숙에 의하면,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을 알려면 이 지식, 지성 그리고 지혜의 인드라망 순환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 순환을 통해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의 방향이 결정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인간다운 앎은 지혜, 영성이다. 그래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기술지와 문명지도 그 활발한 역동성을 갖게 된다. 왜 그런가? 지식은 계속 기술을 확대해서 인간 마음에 소유에 대한 증폭, 곧 욕망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지게 하는 거다. 이 마음을 해체하는 게 지혜인데, 이 지혜가 개입하지 않으면 무조건 욕망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거다. 한편 지성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많은 시행착오와 토론, 논쟁, 교육 등을 주도하는데, 이 지성이 지혜와 연결되지 않을 때, 그것은 엘리트와 대중의 차이가 강화되는 쪽으로, 그래서 엘리트가 대중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식으로 나가게 된다.
이 말은 우리에게 "욕망의 재배치"를 하라는 거다. 다시 말하면, 욕망의 '건너가기'를 해야 한다는 거다. 어떻게? "쾌락에서 지성으로, 중독에서 영성"으로 건너가야 한다는 거다. 지성, 이 영성의 힘을 기르려면, 자연계의 기초적인 존재 양식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 자연과 가깝게 사는 사람이 더 지혜롭고, 영성이 가득하다.
영성의 차원에서 보면, 나 아닌 타인들은 확장된 '나'이다. 특히 나와 가깝게 지내는 준거 집단은 더 그렇다. 나라는 존재를 보호하고 지탱하는 겹겹의 안전 포장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이 또다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서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1등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경쟁을 하면 나 외에는 모두가 이겨야 할 적입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계신 서영남 이종 사촌형의 따뜻한 말이다.
다시 9월/나태주
기다리라 오래 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지루하지만 더욱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상처받은 짐승들도
제 혀로 상처를 핥아
아픔을 잊게 되리라
가을 과일들은
봉지 안에서 살이 오르고
눈이 밝고 다리 굵은 아이들은
멀리까지 갔다가 서둘러 돌아오리라
구름 높이 높이 떴다
하늘 한 가슴에 새하얀
궁전이 솟아올랐다
이제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게 되는 시간
기다리라 더욱
오래 오래 그리고 많이
나는 요즈음 어른의 품격을 고민하고 있다. 어른의 품격은 인생 경험과 연륜을 쌓고 그 풍부한 자산을 통해 각성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어른은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기생하는 존재이다. 어른은 자기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가족 부양의 책임도 기꺼이 져야 한다. 어른이란 제 삶의 의미와 무게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이다. 사는 데 필요한 교양과 지식을 쌓고, 어른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며, 시민 의식을 갖고 건강한 방식의 삶을 꾸리는 이가 바로 어른이다.
그 반대가 '어른 아이'이다. 신체는 다 자랐지만 미성숙한 자아로 아이처럼 행동하는 이들은 내면의 안정감이 떨어지고, 매사에 무책임하다. 이들은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불화하고 자기 고집이 세다. 어른으로 살기 위한 적절한 배움과 수련을 건너뛰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요즈음 주변을 보면, 어른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더러 리더 노릇을 하면서 음흉한 꾀를 내며 사익 추구에 몰입하는 행태들은 불쾌하고 역겹다.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패들, 즉 탐욕과 이기주의, 과잉 히스테리, 갈등과 긴장들의 원인은 어른다운 어른이 없는 탓이다. 미숙한 인격체들이 만드는 사악함은 부의 양극화, 약자에 대한 자별, 공정성과 정의의 실종, 동물 학대와 생명 경시, 살인과 폭력으로 드러나고,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를 '각자도생'의 지옥으로 몰아넣는다.
쩨쩨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관심이 없고, 매사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어른 품격이 없다. 어른이란 소란과 허장성세로 갈팡질팡하거나 말초 감각에 휘둘리고, 욕구와 충동에 따라서는 안 된다. '어른다움'이란 절제와 포용, 관대함, 높은 자존감과 윤리 의식을 두루 갖춘 인격과 삶의 태도에서 나온다. 타인을 향한 사리와 분별이 깊고, 앎과 행동이 하나이며, 연륜과 나이에 맞는 교양과 예의로 품격을 드러내는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미래 세대에게 삶의 푯대가 될 수 있는 어른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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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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