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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7년 12월 명태조가 국경으로 삼고자 한 철령의 위치에 관한 주장의 변화. |
고려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철령을 양국간의 국경으로 할 것을 제의함에 발생한 철령위 문제는 요동정벌과 위화도회군으로 이어졌는데, 그 철령은 강원도의 철령이 이니라 중국 요동땅의 철령이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등 일본학자들 조차도 요동의 철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조선사』부터 그 철령을 압록강 이남의 강계라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조선사편수회의 수사관(修史官)이자 경성제대교수인 스에마츠 야스카즈(末松保和)가 강원도의 철령으로 고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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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년 2월의 『조선사』(3편 7권 p273) “명나라가, 철령위를 고려 강역내(강계)에 설치하려고 하였다”고 자의적으로 써넣고, 지명들을 모두 압록강 이남의 지명인 것으로 끌어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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