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칙령에서의 돌석(石)자 석도는 관음도가 아니라 독도로 보아야"

민족·역사 / 김영호 기자 / 2019-09-26 11:17:33
정태상 교수가 지적한 '반일 종족주의' 반론내용 정리 <2>

동북아역사연구회는 지난 15일 학술세미나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 주장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영훈 前교수의 책과 동영상 주장에 대해 정면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서 정태상 교수가 이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정리한 것이다.

 

6. 1696년(숙종 22년) 일본의 안용복 추방
이교수 주장: “그러고선 울릉도뿐 아니라 일본이 송도라고 부르는 섬, 다름아니라 오늘날의 독도도 조선의 영토라고 주장합니다. 안용복은 그 근거로 그가 소지한 강원도 지도를 제시합니다…그런데 일본은 안용복을 상대하지 않고 조선으로 추방했습니다”(p161)

반론: 이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오키섬에서는 안용복의 주장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그것이 2005년에 공개되었고(『원록각서』), 백기주(伯耆州)에서는 안용복을 불러 필담을 나누고, 그 후에는 숙소를 동선사(東禅寺)에서 제공하고, 돗토리성(鳥取城)에서는 가마와 말을 보내 안용복 일행을 맞이했다.
  그런 내용이 조선측에서는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자세히 기록되고, 일본측에서도 『인번지』, 『인부연표』, 『죽도고』 등 많은 기록을 남겼다.
안용복을 상대하지 않고 추방한 것이 아니고, 안용복을 상대로 주장내용을 모두 듣고, 대화를 주고받고 기록한 후에(외교사절로 정중히 예우), 추후에 안용복 일행 11명이 정식 외교경로인 대마도를 경유하지 않은 것을 알고 추방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일본이 안용복을 상대하지 않고 추방했다면, 안용복의 주장내용이 조선・일본 양측의 고문헌에 그렇게 많이 기록되었겠는가?

▲  1696년 안용복일행이 일본에 가서 우산도(=독도, 일본에서 말하는 송도)

조선땅이라고 주장했음을 기록한 일본의 인번지

 

7. 조선정부의 안용복 주장에 대한 관심
이교수 주장: 일본어민이 그 섬을 송도라 부르면서 자기네 영토로 간주하는 것을 보고, “아니야 그건 우리의 우산도야”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정부는 안용복의 그런 주장에 하등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p161)
안용복이 일본인이 송도라고 부르는 그 섬을 우산도라고 주장했지만 조선왕조는 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동영상)

반론: 조선왕조는 안용복의 주장에 하등의 관심을 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정사(正史)인 『숙종실록』(1696년 9월 25일자)에 우산도 즉, 독도에 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다.
  또한 안용복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서도 당대의 영의정 남구만(『약천집』)부터 후대의 국왕 정조까지 호걸스런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홍재전서』)

 

8. 조선왕조의 우산도에 대한 관심
이교수 주장: 조선왕조는 울릉도에만 관심이 있었지 우산도에는 하등의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pp161-162)

반론: 울릉도에 비해 관심은 물론 적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등 관심을 표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정사(正史)인 『숙종실록』(1696년 9월 25일자)에 우산도 즉, 독도에 관해서도 아주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 후에도 왕명으로 편찬한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1808년)에도 우산도에 관해 자세히 기록했다.

 

9. 대한제국칙령 이후의 우산도
이교수 주장: 대한제국칙령(1900.10.25.) 이후 우산은 어느 자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p164)

반론: 전혀 사실과 다르다.


1907년 6월 발간된 장지연의 '대한신지지'에서는 경상북도편에 울도를 설명하였는데, 그 말미에 "우산도는 그 동남에 재(在)하니라"고 하여, 우산도 즉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로 울릉도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같은 해 9월 발간된 '초등대한지지'에서도 울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산도는 그 동남에 재하니라"라고 '대한신지지'와 똑같은 내용으로 서술하였다. 또한, 1908년의 '증보문헌비고'는 '동국문헌비고'의 우산도에 관한 기술에 “지금은 울도군이 되었다”(續今爲鬱島郡)를 추가하여 ‘우산도’, 즉 독도가 울도군의 관할 구역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림 8> 우산도는 울릉도의 동남에 재(在)한다고 기록한 장지연의 『대한신지지』(1907년)

 

10. 관음도는 돌섬이 아니다
이교수 주장: 죽도 이외에 오늘날 울릉도에 부속한 섬을 찾으면 관음도이다. 그 외에는 사람이 사는 섬이 없다. 그래서 칙령 41호의 석도는 오늘날의 관음도였다고 할 수 있다.(p165)

반론: 관음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이 아니다. 더구나 관음도는 나무가 많아 석도(石島)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칙령에서의 돌석(石)자 석도는 관음도가 아니라 독도로 보아야 한다.

<그림 9>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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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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