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업의 절정에서 찾아온 경고… 하늘은 교만을 용납하지 않았다

관중이 이때 주창한 ‘회맹(會盟)은 제후들이 의제와 시간, 장소 등을 미리 정해놓고 만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다자간 정상 회담으로서 열국이 당면 과제를 협의하고, 결정된 내용을 존왕양이(尊王攘夷, 왕실을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의 맹세와 함께 하늘에 고하는 절차이다. 오늘날 G7 정상회담이다. 춘추시대에는 끝없이 죽고 죽이고, 빼앗고 빼앗기던 전국시대보다 한갓진 시기여서, 동맹 결성과 평화 협상 등 정치적 대화가 수시로 가능하였다.
당시는 제나라의 위세가 그다지 높지 못하여 송(宋), 진(陳), 주(邾), 채(蔡)의 네 나라만이 참석하였다. 특히 이 중 채나라는 임금 채후가 얼마 전 식 부인 규 씨의 일로 혼이 났기에 맨 먼저 참석하겠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초문왕이 미인을 탐내어 제환공의 천하 경영에 도움을 주었으니 이 또한 씨줄, 날줄이 얽히고 설킨 세상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날 회맹의 자리에서 관중이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였다.
“노(魯), 위(衛), 정(鄭), 조(曹) 네 나라가 황공스럽게도 천자의 명을 어기고 오늘 이 맹회에 참가하지 않았나이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도 그들을 문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환공이 사뭇 분개한 표정으로 덧붙여 말했다.
“우리 제(齊)가 힘을 다하여 불손한 자들을 징벌하겠습니다. 청컨대 모든 군주가 함께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다국적 군사 동맹의 제안이다. 제환공의 말이 끝나자 진(陳), 채(蔡), 주(邾) 세 나라 군주는 동시에 화답하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겠나이다….”
그들 2류 국가로서는 이번 회맹에 참가한 목적이 강대국인 제나라와 군사적인 동맹을 맺기 위함이니만큼 기다리던 제안이었다. 제나라가 송나라 또한 암묵적으로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제환공의 천하 경영은 왕실의 권위와 명분을 업고 압박과 교섭으로써 굴복을 받아내는 형태였다. 나라 간 갈등과 다툼에 개입하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일이 없다 보니 열국은 너나없이 제나라의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경찰국가로서의 위상이다. 북행 땅 회맹이야말로 공자가 극찬한 일광천하답게 ‘신의 한 수’라 할 만한 관중의 작품이었다.
이후 제환공은 정(鄭)나라의 내란에 개입하여 정여공을 군위에 올리고 패자의 권위를 세웠다. 왕실의 천자 주이왕이 죽자 그 후사에도 개입하여 주혜왕의 옹립에도 관여하였다. 주혜왕 10년에는 제후들이 제환공을 방백(方伯,)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날 이후 ‘방백’이 열국을 대표하는 호칭이 되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왕실을 대리하는 천하의 패자가 된 것이다.
주혜왕 13년, 연(燕)나라가 북쪽 오랑캐인 산융(山戎)에 침략을 당하고 있다고 구원을 요청해왔다. 유목민들의 중원 침입은 그야말로 연례행사 같은 일이었다. 봄과 여름에는 그들도 본업인 유목에 여념이 없어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을이 되고 숲이 시들어 시야가 넓어지면 침략하는 것이다. 곡식이나 여자를 약탈하다가 토벌 군사와 맞닥뜨리면 바람같이 도망치는 일을 반복해왔다. 차라리 유목민이 필요한 만치 뺏고 물러날 때를 기다려 정벌군을 보내기도 하였다. 애써 쫓아내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는 다시 침범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환공도 마침내 군사를 일으켰다. 2년에 걸친 천신만고 끝에 고죽과 영지, 두 나라를 정벌하고, 이를 연나라 임금 연장공(燕裝公)에게 주기로 하였다. 천하의 인심은 또 한 번 크게 감탄하고, 제환공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판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이다. 임금은 몸이 감기 기운을 느끼고, 마침 곁에 있던 포숙아에게 청하였다.
“따뜻한 물을 좀 가져다주지 않겠소?”
포숙아는 고개를 저었다. “신은 물잔을 나르는 관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두꺼운 털옷이라도 좀 가져다주시게.”
“그 일도 신의 임무가 아닙니다.” 군주는 슬쩍 불쾌해졌다. 짱알짱알, 너무나 올곧고 뻣뻣한 부하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험험…, 그렇다면 대부는 무엇을 하는 신하인가?”
“신은 사직(社稷)의 신하입니다. 사직의 신하는 백관의 본분을 깨우치고, 법을 받드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신의 임무입니다.”
임금은 대답하지 않았다. 포숙아는 더욱 쓴소리를 이어간다.
“신이 감히 아룁지요. 진실은 때로 귀에 거슬립니다. 주군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시지요.” 제환공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경에게 결례를 했소. 용서하시오.”
사가들은 포숙아의 거침없는 언동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일화는 포숙아보다도 제환공이 돋보이는 경우이다. 군주가 이런 정도의 비판을 받아주고 반성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제환공이 천하를 경영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음이다. 이 시절의 그를 ‘반성하는 지도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주혜왕 16년에 방백은 북적(北狄)의 침략으로 도성까지 함락당한 위(魏)나라와 형(邢)나라를 구하고 새롭게 성을 쌓아주었다. 외적의 침입으로 백성들은 죽고, 병신이 되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먹을 양식이 없었다. 재상 관중은 크게 방을 붙였다.
“모두 옛집에 돌아와서 살도록 하라. 움직일 수 있는 자는 도성을 축조하는 공사장으로 나오라.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앉은뱅이나 꼽추도 무방하다. 돌을 나를 수 없는 자는 새끼를 꼬면 된다.”
“그날그날 수수와 보리를 내주고, 원하는 자는 곡식 대신 소금을 지급한다. 부역에 나온 가구는 향후 1년간 세금을 면제한다.”
도성을 쌓는 일은 그대로 대규모 공공 토목공사가 되었고 그로써 백성을 구휼하였다. 당시만 해도 백성을 동원해서 성을 쌓는 일은 무보수 부역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치였다. 아무래도 관중은 천부적으로 민중의 뜻을 짐작하는 감각적인 능력이 있었다. 천하는 또 한 번 방백의 현명한 처사에 감복하였다.
제환공 즉위 32년 겨울에는, 주 왕실의 혜왕이 세상을 떠났다. 제환공의 지지를 받는 공자 정(晶)이 왕위를 계승하고 주양왕(周讓王)이 되었다. 무슨 일이든지 회맹을 열어 열국을 한데 묶기를 좋아하던 제환공은 이때도 천하의 제후를 모아 동맹(東鄳) 땅에서 회맹을 열었다. 문제는 이 시절부터 생겼다.
막강한 권력에 익숙해지고 천자까지 자신의 주장대로 세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제환공의 눈에는 흰자위가 많아졌다. 사람을 힐끗 쳐다보는 눈길에는 질시와 냉소가 담겨 상대를 질리게 하였다. 현실의 상황은 그럴듯하였다. 천하가 그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유명무실한 왕실은 무력하였다. 천하가 본래 주인이 있는 물건이었던가? 왕실이라고 해봤자 400여 년 전 무왕이 은(隱)을 꺾고 세운 나라가 아니었던가?
제환공은 그해 2월에 책력의 제정을 명하였다. 책력, 즉 달력은 천자가 제정하여 제후에게 내리는 것인데, 방백 제환공이 드러내놓고 천자의 전용 사업에 손댄 바람에 여론이 시끌시끌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늘의 계시라도 내린 것일까? 책력을 제정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개기일식이 일어났다. 특히 선명하게 맨눈으로 보이는 일식은 천구식일(天狗食日, 천상의 개가 해를 삼키다)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경고는 과연 재앙을 불렀다. 농사철이 되었는데도 몇 달이나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가뭄이 닥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굶주린 백성들 사이에 역병까지 일어났다. 이를 손 놓고 있을 관중이 아니었다. 관중은 먼저 공실의 고방 양곡을 풀어 수리 방재용 공공사업을 펼쳤다. 임금에게는 천지신명께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다. 제환공도 천자의 자리를 넘보고 말고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문제는 흐지부지 없던 일로 정리가 되었다.
그해 가을에야 겨우 해갈될 만한 비가 내렸다. 기다리던 비가 오던 날, 임금은 오랜만에 연회를 베풀어 신하들을 위로하였다. 비가 왔다고 금방 양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여유가 생겼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뜻을 돌아보았다.
하늘은 그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재앙과 재난을 통해 그 존재와 의미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방백은 하늘이 그토록 싫어하는 야망을 접고, 대신 다른 방면으로 마음을 돌렸다. 바로 인간 심리의 퇴폐적인 구석, 사치와 향락이다.
새롭게 궁궐부터 지었다. 인공 산을 만들고, 연못을 파서 환경을 조성하였다. 예식(禮式)도 바꿔 새롭게 구석(九錫)의 예를 더하였다. 천자에게만 허용된 아홉 가지 예법으로서 의전용 수레와 예복, 건축물의 형식 등에 대한 겉보기 예법이다. 이런 사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쯔쯧… 방백이 변했다.”
“흥! 이제 두려울 게 없으니, 누가 뭐라 해도 제 마음대로지.”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관중의 태도였다. 일탈하는 군주를 말릴 생각은 없이 이참에 그도 제후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신분에 따라 주택의 규모와 형식이 엄연한데도 제후의 예법에 맞춰 저택을 몇 채씩이나 짓고, 열국의 사신들을 집 안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세상의 비난이 관중에게 쏟아졌다. 포숙아가 친구를 찾았다.
“단순한 사치를 넘어서 법도까지 무시하는 주군의 행동에 대해 어찌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가?”
“주군께서는 천하의 패업을 이루시고 이제 스스로 보람을 찾고자 하신다네. 만약에 내가 나서서 못하시게 막는다면 정말로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실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자네가 사치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주군이 비판을 받으시면…, 그만치 덕을 잃게 되고 천하 백성이 따르지 않게 되겠지. 그 전에 내가 사치하고 교만하면 세상의 욕이 우선 나에게 쏠리게 될 걸세. 내가 대신 천하의 비난을 받음으로써 주군을 지키고자 한다네.”
이런 걸 보면 관중의 가치관은 한마디로 어느 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통탈(通脫)’이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일러 관자(管子)라고 존경했고, 불후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조차 그를 필생의 스승으로 섬겼다.
![]() |
|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