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학자는 남들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다.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질문을 잘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에게 질문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효율과 생산성 등 '당장의' 실용성만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인문학이 밥이 되냐, 떡이 되냐'며 낡은 질문들을 던졌다. 그 물음들에 대해 인문학은 소극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단순 제조업과 저임금의 시대를 통과한 지금, 인문학의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인문학은 더 맛있는 밥, 더 몸에 좋은 떡을 준다'로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끼니 때우는 일에 급급해서 인문학적 다양성이 만들어 내는 고부가가치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로부터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들은 생각하는 힘으로부터 나오고, 일상에서의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까지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상상력, 창의력, 혹은 기획력, 문제 해결력 등 생각하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래 나는, 아침마다, '사명'처럼 쓰는 <인문 일지>를 통해 이 시대에 중요한 자산인 ‘생각의 힘’을 북돋우고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정보의 시대에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짐'이 되지 않을까 해서, 공유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고 있다. 대신 원하는 사람들은 내 블로그로 방문하도록 하였다. 그런 식으로 해서 하나의 생각이 또 하나의 생각과 만나 깊고 다양한 생각의 숲을 이루는 ‘생각의 숲’이 키우고 싶은 것이 내가 <인문 일지>를 쓰는 이유다. 인문 운동가의 역할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또 다른 역할은 정신적 자유와 기다림의 시간을 충분히 겪어낼 여유를 준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적당한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밥을 먹어야 살듯 언제나 꾸준히 공부하고 자신의 삶으로 내재화하는 과정을 지속해야 한다. 인문학은 답을 가르쳐주는 학문이 아니다. 인문학이 말하는 답은 하나가 아니다. 답만 죽으라고 외우고 똑같은 방식의 훈련만 반복해서는 지식의 축적만 가능할 뿐이다. 이제 그런 지식을 더 이상 쓸데 없다. 스마트폰에 그런 지식들은 가득하다.
인문적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완성된 이론을 내면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 그곳에서 자기 눈으로 발견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덤비는 인문적 활동으로 일상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론을 숙지하는 삶에서 문제에 빠져드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문학에서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칼 포퍼에 의하면,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 했다. 문제없는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문제들은 답을 요구한다. 답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찾나? 그 답을 찾으려면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를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본다.
▪ 질문이 없으면 답이 없고,
▪ 질문이 잘못되어도 답이 없다.
▪ 게다가 잘 보이지 않던 답도 질문을 바꾸면 길이 보이고,
▪ 같은 듯 보이는 문제도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다른 답에 이른다.
질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학문한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학문(學問)이란 한자의 의미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음(問)을 배우는 것, 즉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훌륭한 학자는 남들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1시간 있고 그 해결책에 내 인생이 달려 있다면, 나는 우선 어떤 질문을 제기하는 게 적합한지 판단하는데 55분을 쓸 것이다. 일단 적절한 질문을 알기만 한다면 문제 해결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데 있지 않다. 해결책은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데에서 온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바탕이다. 질문(質問)이란 한자는 내가 오늘이라는 숙명적인 과정의 문(問)을 통과하기 위해 내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가치이다. 그것이 질(質)이다. 질은 남들도 다 확인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원칙이자 바탕이다. 질은 보이지 않는 나만의 내공이다. 보통 사람들은 수량에 환호하지만 자신만의 전설을 찾아 나선 인간은 질을 다듬는 데 하루를 사용한다. 질이란 두 손에 도끼를 날과 같은 정교한 정과 망치를 들고 자신만의 패물(貝)을 만드는 일이다.
한근태는 자신의 책, <<고수의 질문법>> 서문에서 질문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묻는 질문
▪ 자신은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게 답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묻는 질문
▪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함께 답을 찾기 위해 던지는 질문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는 질문은 목적 없는 질문이다. 그건 의미 없는 혼잣말이다. 실제로 살면서, 알맞은 때와 내용으로 하는 질문이 쉽지 않다. 그래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고수(高手)'이다. 고수란 '장기나 바둑에서 수가 높은 사람'을 뜻하지만,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사실 별생각 없이 살다 보면, 질문이 없다. 다 안다고 생각하고, 질문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게 있어야 질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질문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로나 19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물어야 한다.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근태는 이 사자성어를 "수치불문(羞恥不問), 모르면서 묻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하라"로 바꾸었다. 그렇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만 듣는다고 했다. 우리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앞에서는 도망친다. 사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대답하기 좋은 질문보다는 대답함으로써 고통스러워지는 질문, 대답을 자꾸 미루고 싶은 질문, 대답 자체가 곤란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질문들은 대답하기 힘든 것들이 더 많다. "왜 "호모 데우스"를 꿈꾸며,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추월하려는 소위 '4차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이 시대에 코로나19가 창궐하는가?" "우리가 진실로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정여울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든 더 나은 대답을 내놓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고 했다. 내 생각으로도 대답하기 어렵거나 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답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질문하지 않는다. 학회에 가 보면, 예상 질문을 가져오라고 한다.
질문을 잘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최고라고 하는 사람에게 질문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질문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토대(質, 바탕)을 단단히 하고, 새로운 오르막 길의 문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것과 같다. 학문(學問)이란 한자의 의미는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음(問)을 배우는 것, 즉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훌륭한 학자는 남들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다.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1시간 있고 그 해결책에 내 인생이 달려 있다면, 나는 우선 어떤 질문을 제기하는 게 적합한지 판단하는데 55분을 쓸 것이다. 일단 적절한 질문을 알기만 한다면 문제 해결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로 오늘 아침 글쓰기를 마친다.
본격 휴가가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내 일상은 여전하다. 덥다 못해 뜨거운 날씨도 여전하다. 세상을 다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스마트폰도 날씨는 어떻게 못 한다. 자연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문명의 인간 세계는 좀 더 낫게 변화시켜보고자, 어젠 삼겹살 불판같이 뜨거운 낮의 햇살을 뚫고 맨발 걷기를 나갔다. 그 길에서 나무가 나에게 말했다. 나무처럼 살라고.
나무처럼 살기/이경숙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 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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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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