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위정자들 한가한 거북이 놀음
유·초·중·고 교원 89.1%가 '교권 침해 사항 학생부 기재' 찬성
![]() |
▲ 대전 초등학교 교사 추모 공간 앞에서 오열하는 유족 -교사가 재직하던 유성구 한 초등학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
“학교 안에서는 대통령도 임금도 무조건 교사에게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정년 퇴임한 어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교단의 권위가 존중되지 않는 학교에선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단언이었다. 많아야 두 명밖에 안 낳는 가족 형태가 가져온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의식과 아동학대처벌법·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의 환경변화가 초래한 교육계의 대변란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빨리 법·규정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 위정자들은 여전히 한가한 거북이 놀음이다.
교권 침해를 당한 초등학교 교사가 또 세상을 떠났다. 대전에서 학생생활지도를 시비하여 학부모로부터 소송을 당했던 40대 교사가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 끝에 숨졌다. 이 교사는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등으로 인해 지난 4년여간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충북 청주의 30대 초등교사도 같은 날 생을 마감했다. 참담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서울·전북 군산 초등교사, 경기 용인 고등학교 교사에 이어 최근 열흘 새 5명의 교사가 숨졌다.
지난 2019년 3월 대전에서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고인은 한 학생의 수업 태도가 불량하고 팔로 다른 친구의 목을 졸라 학부모에게 가정 지도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이후에도 수업 중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학생을 발로 차거나 꼬집기도 했고, 2학기가 시작되고부터는 친구의 배를 발로 차는 일도 발생했다. 11월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의 얼굴까지 때리자 고인은 본인 혼자서는 지도가 어렵다고 생각해 아이를 교장실로 보냈다.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지막 글 가슴을 에게 만들어
그리고는 사달이 났다. 다음날 학부모는 교무실을 직접 찾아와 교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병가를 냈으나 학부모는 국민신문고, 경찰에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시 교육청에서 나온 장학사는 조사 후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학교폭력위원회도 해당 학생에게 학내외 전문가로부터 심리상담 및 조언을 받으라는 1호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2020년 2월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교사가 학생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며 아동학대 사례로 판단했다.
고인은 같은 해 10월 검찰에서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론이 나기까지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 어떤 기관에서도 법률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고인은 “이 기간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잃고 우울증 약을 먹게 됐다”며 “3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서울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되살아나 울기만 했다”는 글을 남겼다. 고인의 글 중에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대목은 가슴을 에게 만든다.
서울 서이초 선생님의 불행한 선택으로 인해 일파만파 확산한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교실과 협박성 갑질을 일삼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핵심 병폐로 떠올랐다. 교권을 지키지 못하는 열악한 현장의 속살도 낱낱이 노정됐다. ‘교권 침해’를 저지른 쪽은 반드시 합당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엄정한 규칙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잘못되었거나 부실한 법·규정도 제대로 손보는 게 맞다.
백가쟁명 제아무리 화려해도 ‘입법’ 뒷받침 없이는 모두 다 공염불
쏟아지는 백가쟁명이 제아무리 화려해도 ‘입법’의 뒷받침이 없이는 모두 다 헛소리요 공염불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교권 회복을 위한 4대 법안 개정 작업부터 더 속도를 내야 한다. ‘교권 회복 4법’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 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민원 처리 책임을 학교장이 지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일컫는다.
핵심 중의 핵심은 현장 교사들에게 교권 침해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고유 권한을 주는 일이다. 학교를 상대로 한 소송전이 다수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장 교사들은 교권 침해 사항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유·초·중·고 교원 3만29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1%가 교권 침해 조치사항 학생부 기재에 찬성했다.
교육 전문신문 베리타스알파의 설문에서도 교권 보호를 위한 방안으로 ‘대입에서 학생부 정성평가 반영 강화(학종 확대, 정시 학생부 반영)’에 무려 79.2%가 찬성했다. 학생이 학생(아이)을 폭행하는 ‘학폭’은 기재하면서 학생이 교사(어른)을 폭행하는 경우는 빼자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은 옳다. 정상적인 생활 지도마저도 무조건 ‘아동학대’로 몰아가는 풍토 속에서 ‘교권 확립’이란 한낱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 지도를 ‘아동학대’로 모는 풍토 속 '교권(敎權)'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교육 현장에서 횡행하는 다양한 교권 침해사례를 살펴보면 그저 말문이 막힌다. 모범적인 행동을 한 학생을 칭찬했다고 다른 학생의 부모가 “내 아이는 칭찬을 안 했으니 아동학대를 한 것”이라고 고소를 했다는 기막힌 사례도 있다. 고기를 안 먹는 자기 아이에게 고기 피자를 사주었다고 고발한 부모의 사례는 또 어떤가.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한 것을 놓고 ‘사생활 침해’라고 고발한 경우는 허탈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22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에 나온 교권 침해사례는 참으로 다양하다. 몸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을 학년연구실로 데려갔더니 교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실습용 톱을 던지면서 위협한 일도 있었고, 고등학교 학생이 여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할 목적으로 교탁 아래에 휴대전화를 놓아 몰래 촬영한 사건도 있었다. 초등학교 학부모가 수업 중인 교실에 찾아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에게 폭언, 욕설, 폭행을 가한 일도 발생했다.
2021년을 기준으로 교사에게 ‘모욕 명예훼손’을 가한 통계는 학생 1203건(57.3%)이고, 학부모 등 68건(39.8%)이다. 학생은 ‘상해 폭행’ 231건(11.0%), ‘성적 굴욕감 혐오감 일으키는 행위’ 200건(9.5%),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 93건(4.4%)으로 집계됐다. 학부모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이 29건(17.0%), ‘협박’이 19건(11.1%), ‘공부 및 업무방해’ 15건(8.8%) 등이었다.
교권 침해 성격의 쟁의나 소송 교육 당국이 전담해주는 장치 필요
교육부가 내놓은 ‘학생생활지도 고시(안)’을 한번 들여다보자. 교사와 대면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는 사전 예약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도 방법은 조언, 상담, 주의, 훈육·훈계 등 단계별로 나뉜다. 학생이 반복적인 주의에 불응하면 훈계 조치를 받을 수 있고, 학부모에게까지도 교칙 준수의 의무가 부여된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교사들이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도록 막아내는 장치를 완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교사는 ‘법적 시비’에 취약하다. 소송이 제기되면 일상생활마저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해진다. 원칙적으로 교권 침해 성격의 쟁의나 소송은 교육 당국이 전담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극히 일부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녀에 대해 과잉된 보호 의식을 가진 초 이기주의적인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현상을 철저히 막아주어야 한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 지도에 대한 ‘아동학대 면책권’을 확보하는 입법은 그 출발점이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교권 침해 행동이 곧바로 자녀의 불이익으로 귀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반대하고 있는 야당의 ‘갈등 요인 조장’ 주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한 한가한 논리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빚어낸 모순의 협곡에서 연일 무고한 교사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판이다. 비상한 병증에는 비상한 처방이 필요한 법 아닌가. 위정자들은 더 이상 미적대지 말고 교사들을 ‘우울증’의 지옥에서 빠져나오도록 구출해야 한다. 그게 진정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참다운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 미디어시시비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