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 -호르헤 카리온

문화·예술 / 이영 기자 / 2024-10-12 23:17:48
전 세계 크고 작은 서점을 직접 발로 누비며 문화사적으로 탐구한 책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침대, 휴대용 스토브, 도서관 마련
문턱의 모토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

 

       

신간 서점: 세계를 이해하는 완벽한 장소(이봄)는 저명한 문화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호르헤 카리온이 전 세계 크고 작은 서점을 직접 발로 누비며 문화사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부터 뉴욕 스트랜드 서점과 샌프란시스코 도그 이어드 북스, 포르투의 렐루 앤드 이르망 서점, 서울 교보문고와 상하이수청 서점, 도쿄 마루젠 서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독보적인 서점이 종횡으로 경계 없이 펼쳐진다.

 

아테네에서 뉴욕까지, 파리에서 카라카스까지 세상의 모든 책이 거기 꽂혀 있고, 시대의 사상가와 예술가는 서점에 모여들었다. 전 세계 서점 순례기이자 회고록, 비평이자 문학인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서점이 인류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그곳들을 거쳐 간 지성의 탐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포르투의 렐루 앤드 이르망 서점은 신고딕과 아르데코양식이 섞인 건물이다. 영화 해리 포터의 무대로 유명하다. 서점 한구석에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평가한 작가 엔리케 빌라 마타스의 헌정 글이 걸려 있다.

 

파리의 서점 수백 곳 가운데 저자는 콩파니, 레큄 데 파주, 라 윈 세 곳을 최고의 서점으로 꼽았다. 라 윈 서점 비상구에는 바닥에 앉은 뒤라스의 모습이 그라피티로 그려져 있었고, 그림 왼쪽에는 그녀가 말한 유명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한 단어를 한 구절의 아름다운 연인으로 만들라.”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조이스 등 세계의 문인이 찾은 살롱으로, 파리를 찾는 이라면 누구나 꼭 방문해보고 싶어하는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조지 휘트먼은 미국의 기준으로 볼 때 항상 불편한 인물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미군을 상대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같은 금서를 팔았다.

 

영업 첫날부터 서점에 침대, 음식을 데울 휴대용 스토브, 책을 사지 못하는 이들이 빌려서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마련했다. 서점과 숙소의 결합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그 때문에 휘트먼은 모르는 사람들과 내내 함께 살면서 사생활을 희생했다. 지난 60년 동안 그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약 10만 명에 달한다. 문턱 중 하나에 이곳을 지배하는 모토가 적혀 있다.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라.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모르니.’

 

중국조차 예외가 아니다. 청록색 화려한 외관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가게 목록에 속하는 명성을 지닌 베이징의 서점 더 북웜은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비롯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반체제 도서나 금서로 분류되던 책을 고객 앞에 선보이고 있다.

 

 고어 비달 같은 북아메리카의 작가들이나 폴 모랑 같은 유럽 지식인들, 아민 말루프 같은 아랍의 지식인들이 탕헤르를 방문할 때마다 어김없이 여행의 종착지로 삼는 콜론 서점도 있다. 콜론 서점은 반프랑코주의 저항의 참호가 되어 출판을 고취하고 망명자들을 불러모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도그 이어드 북스는 예술과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단연 흥미로운 서점이다. ‘도그 이어(Dog Ear)’란 접은 책 모퉁이를 가리키는 말인데, 모양이 마치 개의 접힌 귀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 이 서점에 진열된 책에는 책마다 손글씨로 쓴 코멘트가 달려 있다. 도그 이어드 북스는 1992년부터 미션 디스트릭트 주민들과 진정한 공감의 기류를 형성해왔다. 잡지와 책, 음반, 그래픽 작품 외에도 서점이 독자 고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애정과 존중의 유대를 잘 보여주는 것을 구석의 진열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30년대 뉴욕에서는 고담 북마트가 공고히 자리 잡아,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 소개를 전문화하고 각종 문학 강연과 축제를 조직해, 유럽에서 망명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1950년대에 샌프란시스코의 시티 라이츠 서점은 당대를 가장 잘 드러낸 일련의 책들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도서를 소개하고 낭송회를 열었다. 시티 라이츠 서점 벽면에는 이 서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학적 만남의 공간’ ‘환영합니다. 자리에 앉아 읽으세요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1960년대 맨해튼의 더 팩토리는 앤디 워홀이 이끄는 영화 스튜디오, 미술 작업실, 마약 축제의 본거지로 유명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는 나이트클럽 스튜디오가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세계의 서점은 지금도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해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서점도 있고, 양질의 웹페이지를 운영하는 서점, 주문형 인쇄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인쇄 센터 근처에 자리한 서점들도 있다. 커피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내놓거나, 시음 강좌를 여는 훌륭한 와인 가게처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는 작은 서점들도 있다. 청소업체에 맡기지 않고 서점 운영자가 직접 일일이 책의 먼지를 터는 서점들도 있는데 이는 희귀본, 소수 판본, 수공예본, 유행이 지난 서적 한 권 한 권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대형 서점 체인에서는 자리를 갖지 못하는 책들을, 독립 서점의 주인들은 신간 매대나 진열대에 제대로 배치해, 눈에 띄도록 만들 줄 안다. 다음엔 어느 서점으로 가야 할까.

 

 서점은 세계를 축약한다. 당신의 나라와 언어를 다른 언어권 나라들과 이어주는 것은 항공로가 아니라 서가들 사이의 통로다. 건너가야 할 것은 국경이 아니라 한 걸음(단 한 걸음)이며, 그 한 걸음을 내디디면 지형과 지명, 시간이 바뀐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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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 문화예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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