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지인 재안민'(在知人 在安民), 진문공이 보여준 부국강병의 길
중이는 강주성에 입성하여 그날로 진(晉)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문공(晉文公)이다. 이내 호언과 위사를 보내 고량 땅부터 정리하였다. 달아났던 진회공 어(御)도 목이 잘렸다. 이로써 호언은 늙은 아비의 원수를 갚았다.
중이의 망명 생활은 19년, 그중 5년은 아버지 진헌공의 치세이고 나머지 시간은 이오의 재위기였다. 이른바 농민 혁명에 성공했으나 14년간 쌓인 전 정권의 폐해는 깊었다.
어느 아침나절에 조쇠가 진문공을 찾았다.
“주군! 혹시 두수(斗首)를 기억하십니까?”
“두수? 그게 누구더냐? 초야에 묻힌 현자를 추천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지난 시절 수레를 끌고 도망간, 그 두수 말입니다. 두수가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금은 난감했다. 묻어둘 수도 있었던 일이다. 감을 잡고 조쇠가 고쳐 말했다.
“제 발로 찾아왔나이다. 드릴 말씀이 있다기에.”
중이는 한때 수레를 몰던 그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았다. 괘씸한 심정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두수가 아니더냐? 뻔뻔한 놈이로구나. 당장 물러가거라.”
“주군께서는 여이생 일당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조정에서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무리를 지어 쑥덕거리고 있습니다. 공신들이 받고 싶은 땅을 모두 계산하면 진(晉)의 땅이 몇 배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모자라는 땅 때문에라도 자신들을 숙청할까 두려워합니다.”
“허허… 거참! 내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이 수레를 훔쳐 달아났기 때문에 주군께서는 많은 고생을 하셨나이다. 강주 백성으로서 그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신이 다시 임금의 수레를 몰 수만 있다면, 모든 관원이 의심을 풀어버릴 것 아니겠습니까?”
“으응?…!! 그래?”
임금은 두수가 모는 수레를 타고 강주성을 한 바퀴 돌았다. 과연 유언비어는 그날로 자취를 감추었다.
민심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진(秦)의 희영을 데려오게 하였다. 책나라에서도 진(晉)문공의 즉위를 축하하는 사절을 보내면서 망명 시절의 부인 계외(季隈)를 모시고 왔다. 그날 밤 진문공이 계외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
“부인은 청초한 자태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려. 금년에 나이가 몇이나 되시었소?”
“주군께서 떠나신 지 8년입니다. 신첩은 이제 서른셋이 되었나이다.”
“20년을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나마 천만다행이구려.”
제나라에서도 제강을 보내주었다. 제강은 싫다는 중이를 억지로 수레에 실어 보냈던 바로 그 여인이다. 술 취한 중이를 이불째 조쇠에게 맡기고 그녀가 당부했던 이야기는, 자신의 입으로 한 번도 뱉은 일이 없으나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뵙고 싶었나이다. 아주 많이요.”
제강은 밤새 울면서 신음을 질렀다. 원래 그녀는 암내 피우는 고양이 같은 울음으로 감흥을 표현하는 여인이었다.
새삼을 캐러 원채당의 (爰采唐矣)
매 땅으로 가다 매지향의 (沬之鄕矣)
누구를 그리워하나 운수지사 (云誰之思)
어여쁜 강씨네 맏딸 미생강의 (美孟姜矣)
뽕나무 숲에서 나를 만나 기아호상중 (期我乎桑中)
뽕나무 다락에서 나를 맞아들이고 요아호상궁 (要我乎桑宮)
기수 강가에서 나를 보내주다 송아호기지상의 (送我乎其之上矣)
공자의 시경 국풍 중 용풍 상중 (桑中, 뽕나무 숲)
잎이 무성한 데다 부드러운 뽕나무숲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이른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이치이다. ‘어여쁜 강씨네 맏딸’은 제나라 공실 강씨성 쓰는 여인이란 말이다. 이 시의 강씨 여인이 진문공의 제강인 줄은 확실치가 않다. 어쩌면 이맘때쯤이면 제강이라는 이름이 예쁘고 성적인 매력이 충만한 여인의 대명사가 된 것일까?
주례(周禮)의 예법에 따르면 천자는 여인을 81명까지 취할 수 있었다. 이른바 3궁(宮), 6원(院), 72비빈(妃嬪)으로서 그중 3궁과 6원, 도합 아홉을 정실로 불렀다. 제후국의 군주는 그 반절에 못 미치는 39명의 여인을 거느리게 된다. 직위는 3궁, 36비빈으로 정실이 셋인데, 진문공은 희영과 계외, 제강 이 셋을 부인으로 삼았다. 그 순위는 진(秦)나라 공주인 희영이 주장하여 그대로 정했다.
가장 신분이 귀하다 할 제강이 제1부인이 되고, 나이가 많은 계외가 다음 순위, 희영은 한번 출가한 본인의 처지를 생각하여 스스로 마지막 순위로 정했다. 현명한 희영은 이런 일로 더욱 진문공의 사랑을 받았다. 진문공이 재위 동안 여색에 대한 염문이 없었던 것은 젊고 예쁜 데다 현명하기까지 한 세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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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중이는 망명 시절에 보고 들은, 세속의 이치에 따라 나라를 다스렸다. 크게 군주의 자질을 공부한 적도 없었고 무슨 특별한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각성은 현실에 있었다. 중원을 떠돌던 유랑을 통해 그는 백성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어떻게 국정을 살펴야 하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통치의 본질이란 게 별다른 게 아니었다. 천하 사람들을 너그러이 자유롭게 맡겨둔다는 말은 들었어도, 천하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다. 무위(無爲)의 정치를 행하라는 것은 아무런 통치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세상을 다스리되 다스림이 없는 방식으로 다스리라는 것이다. 지도자 본인의 아집과 독단에 의한 ‘인위’와 ‘억지’의 다스림을 지양하고 자연의 흐름에 따르고 순응하는 정치이다. 약한 자를 구해주고, 과부를 보호하며, 고아를 먹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정치, 마소(馬 牛)며 가축들의 흘레가 순조로워 숨벙숨벙 새끼를 떨구듯이 남녀가 자연스럽게 교접하여 아이들이 여럿 점지되고, 무지렁이 백성조차 전통과 예절을 숭상하도록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게 그야말로 정치가 아니었던가!
능력 있고 어진 사람을 천거하여 일을 맡기고, 형벌은 가볍게 하였다. 농토에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세곡은 반으로 줄이고, 통상을 권하며 산업을 장려하였다. 부패한 벼슬아치는 일벌백계로 다스리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배필을 구해주는 사회 복지 제도까지, 실사구시의 이념을 현실에 구현한 것이다.
진문공의 정치를 개괄하면 법치는 가볍게 하고,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며 실용을 근본으로 하였다. 굳이 시쳇말로 이야기하자면 ‘실용을 우선하는 작은 정부’이다. 백성은 성군을 갈망한다. 역사적으로 군주나 관리가 백성에게 이익을 준 적이 거의 없었다. 백성은 관리를 도적 보듯 하였고, 가능하면 도망칠 궁리만 했다. 특히 정통성을 가진 군주일수록 마음껏 수탈한다. 간섭을 적게 하고 해를 덜 끼치는 이가 성군이 되는 것이다. 하급 관리는 급여랄 것도 없이 백성에게 적당히 수탈해서 배를 채울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보니, 어디까지가 세금이고 어디부터가 수탈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너나없이 백성에게 기생하고 뜯어먹는 ‘곳간의 쥐’ 같은 존재이기에 덜 먹는 쥐가 그나마 낫다는 쪽이다.
조카의 군위를 찬탈한 진문공은 정통성이 결여된 만치 백성에게 유화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외세의 도움으로 독자 노선을 표방하였던 군주를 몰아내고 임금이 된 인물이다. 그도 모자라 젊은 조카며느리까지 빼앗는 패악을 저질렀다. 그의 성공담은 말하자면 집권 과정의 약점을 뛰어난 정치 성과로 보완한 경우이다. 진문공이 내건 법령은 간단명료했다.
“열심히 일하라!”
“나쁜 짓은 하지 말라!”
“사람들을 선동하지 말아라!”
열심히 일하고, 범죄를 막는 것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윤리규정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선동하지 말아라’는 왜곡된 집단 여론에 대한 사전 경고장치이다. 황하 연안에 자리한 진(晉)은 원래 하북과 하남이 지역주의에 빠져 국력을 분열시키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하북은 대별산맥을 끼고 앉은 산악지대이고 대신 하남은 평야가 많은 농경사회었다. 말씨도 지역문화도 관습도 다르다 보니 서로 이질적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는 관계에 있었다. 종래는 국익은 뒷전이고 지역이기주의가 우선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따지고 보면, 세자 신생의 죽음, 여희의 피살, 이극의 숙청 등 어느 하나 지역주의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런 특별한 조항까지, 통치이념에 포함한 것은 스스로 체득한 집단 사회구조와 대중 심리에 대한 이해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위정자가 짚어야 할 일이 무엇이었던가?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에서 꼭 짚어 말하였다.
“재지인(在知人), 재안민(在安民).”
사람을 알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통치의 최고 경지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故善者因之, 고선자인지)’이라고 했다. 둘째는 ‘이익으로 백성을 이끄는 것’이요, 셋째는 ‘가르치려 드는 것’이요, 넷째가 ‘가지런히 일사불란하게 바로잡으려 하는 정치’인데 이때부터 독재로 들어간다. 가장 못난 정치는 ‘백성과 더불어 싸우는 것(最下者與之爭, 최하자여지쟁)’이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실패한 정치는 백성의 민심을 거슬린 독단에서 비롯된다.
훗날 맹자는 이런 실용의 이념을 일러 ‘유항산이 유항심(有恒産而 有恒心)’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하였다. 배불리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 못하는 백성에게 예의와 염치를 강요할 수 없으며, 예의와 염치를 모르는 나라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의식주가 해결돼야 백성이, 나라가, 뱃심도 좋아진다.’는 경세 치국의 기본 원리이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 민생이 최우선이 된다.
이로써 원래 큰 나라였던 진(晉)은 나날이 국력이 일취월장하여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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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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