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칼보다 강했던 민심…19년 방랑공자, 고국의 문을 열다
비참하게 죽은 아비 호돌의 소식을 듣고 호언 형제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중이도 치를 떨었다. 즉시 장인 진목공에게 고국의 사정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우선 양국의 이름으로 합의각서부터 만들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진(秦)과 진(晉), 진(晉)과 진(秦)은 서로 우호 협력하여 평화를 도모한다. 첫째, 진(秦)은 하서의 다섯 성을 반환한다. 둘째, 진(晉)은 양나라 고토에 대한 진(秦)의 권리를 인정한다.”
서두의 문구는 의례적인 외교적 수사이다. 첫째 조항의 하서(河西) 다섯 성은 용문 전투로 진(秦)에 귀속하였는데 그간 민란이 끊이질 않아, 이참에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말이다. 대신에 양나라 땅은 진(秦)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한마디로 진(晉)은 하서 땅을 도로 찾고, 대신 진(秦)은 양의 합병을 외교적으로 용인받는 합의문이다.
합의문의 내용이 하서 땅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도로 진(晉)으로 복속된다는 소식에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다. 하늘은 활짝 개었고 신기하게도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미 끝물의 봄은 지나고 있었다.
“저분이 중이 공자일세. 어쩜 저리도 온화하실까!”
“멧돼지를 주먹으로 때려잡았다는 위주가 오른쪽 장사인가?”
“어디 위주뿐인가? 조쇠는 주문을 걸어 천둥, 벼락에다 비까지 부른다는데!”
해외파 10걸에 대한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백성은 각박한 현실 대신에 꿈을 좇아 타국을 유랑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판타지를 부여하여 위안으로 삼고 있다. 중이가 비록 하늘을 움직여 비를 오게 하는 신통력이 없다손 치더라도 백성의 민심에 부합하는 정녕 위대한 정치력을 갖추었지 않았던가? 모여든 군중은 농민뿐만이 아니었다. 등짐장수며 떠돌이 유민, 산적 소굴에 숨었던 도적들까지 며칠 사이에 모인 사람만도 몇천을 넘겼다. 어쩌면 이런 게 바로 천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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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생성 이미지 |
19년 만에 귀국하는 중이의 행렬은, 병장기를 들고 따라나서는 백성들로 십 리를 갈 때마다 두 배로 불어났다. 출전 명부를 기록하는 죽간에 이름을 올리는 자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저마다 그럴싸한 무기도 들었다. 열국이 각축하던 시절이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고 싸움 끝난 전장에는 창칼이 산과 들에 버려졌다. 농민군은 다락에 숨겨둔 창대를 둘러매고 떠들썩하게 흥분하였다.
무리가 농경지를 가로지르던 날의 광경은 특히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군대가 지나는 데도 농부들이 아랑곳없이 낫을 들고 보리 이삭을 수확하고 있었다. 밭고랑에서는 들으란 듯이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동요까지 부르고 있다.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았으나 덜 익은 밭보리는 대궁이째 타작마당으로 운반되어 탈곡에 들어갔다. 땅에 떨어진 곡식 낟알을 쪼아 먹는 새 떼들이 바쁘게 설쳐댔고, 활짝 갠 하늘에는 영웅의 출현을 알린다는 자운(紫雲, 자주빛 구름)이 드리웠다. 구름 사이로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솔개가 날고 있었다. 사람이나 축생이나 평화로운 풍경이요, 너나없이 아비고 형 같은 처지들이다.
민중은 겉으로 어리숙해 보이지만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그들은 바야흐로 중이의 시대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깃발로 쓸 광목도 없어 멍석이나 가마니 쪼가리에 ‘중이’의 중(重) 자를 크게 쓰고, 대나무작대기에 꿴 거적을 깃발 삼아 높이 쳐들었다. 거적데기 넝마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썩거려 정권의 조종을 알리는 만장같이도 보였다. 연도의 구경꾼들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손뼉을 치고 환호를 보낸다. 숙영하는 마을에서도 아낌없는 환대를 받았다. 방금 잡은 닭과 개고기를 대접받고, 숨겨 놓은 술까지 얻어 마셨다. 간간이 중이가 백성들 앞에 나섰다. 희멀쑥한 얼굴에 미소를 띤 망명 공자를 보려고 아우성들이다. 환갑 넘은 중이는 사람 좋은 넉살에다 목소리도 컸다.
“오! 여기는 수수밥을 많이도 했구나. 호언은 어디 있느냐? 호언을 불러라.”
“예, 주군! 여기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말먹이도 좀 달라고 이르고, 공출한 양곡은 모두 기록하라. 대가는 나중에 열 배로 갚겠다. 어느 마을, 누구라고만 기록하라.”
조쇠는 세작을 시켜 강주(絳州)성 요소요소에 격서의 형식으로 포고문을 내걸었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그동안 나라의 어지러움이 이와 같을진대 근본을 도려내지 않고는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 대부와 장수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천명을 따르는 길인지 생각이 있다면 지금 당장 혁명군을 영접하라. 기회는 지금뿐이다. 부디 하늘을 거스르지 마라.”
19년 전 숨어서 도강하던 위수(渭水)를 다시 건너는 중이는 감개무량했다. 어느새 황하 남쪽도 초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가 강심으로 들어서자 백마의 피를 뿌려서 하백(河伯, 황하의 신)을 달랬고 삶은 곡식을 던져서 크고 굼뜬 물고기에게 먹였다. 고향 땅 강물을 굽어보면서 새삼 타국을 떠돌던 고초가 떠올랐다. 그야말로 권토중래(捲土重來, 흙먼지가 말려서 올라가도록 힘찬 기세로 돌아오다)의 걸음이다. 강물조차 고향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중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양손을 교차하여 가슴에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맹세하였다.
“내 고국에 돌아가서 그간의 고초를 잊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지 않는다면, 맹세코 나로 인해서 자자손손이 불행하리라. 하늘과 땅의 신령이여! 하백이시여! 이 몸으로 하여금 고국을 영광되게 하소서!”
맹세는 그대로 강심으로 퍼져나갔다. 화답이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서 팔뚝만 한 잉어들이 물 밖으로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물고기 몸통에서 노을빛이 번쩍였다. 참으로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중이의 설렘은 그대로 위주, 조쇠, 호언, 호숙에게도 전해졌다. 빨려드는 심정으로 함께 맹세하였다.
“공자를 받들어 고국의 영광을 지키겠나이다.
옛날 내가 떠나올 때 석아왕의 (昔我往矣)
기장과 피 한창 피더니 서직방화 (黍稷方華)
지금 내가 돌아가려니 금아래사 (今我來思)
눈비 내려 길이 질퍽이다 우설재도 (雨雪載途)
나랏 일 어려움이 많아 왕사다난 (王事多難)
편히 쉴 여유가 없다 불황계거 (不遑啓居)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으리 기불회귀 (豈不懷歸)
임금의 명령이 두렵다 외차간서 (畏此簡書)
공자의 시경 소아편 출거 (出車, 출동하는 병거)
강을 건너자 처음으로 만난 성은 영호성이었다. 유목민을 막기 위해서 바위산 산정에 건설된 철옹성으로 성주는 등혼(鄧惽)이다. 첩첩이 돌로 쌓아 올린 성벽과 우뚝 솟은 성가퀴, 두텁고 단단한 성문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보였다. 그러나 오래 끌 것도 없이 이틀 만에 성문이 열렸다. 등혼은 지나치게 엄격한 데다, 욕심까지 많아 인심을 잃고 있었다. 군졸들에게 목이 잘려 성루에 내걸렸다.
다음 성은 상천(桑泉)이었다. 영호성이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성주가 목이 잘렸다는 소문이 먼저 도착했다. 전의를 상실한 전사들이 지키는 성채는 먼빛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아예 스스로 성문을 열고 마중을 나왔다 행군 중에도 몇십 명씩, 때로는 몇백 명씩 떼거리 동참이 끊일 새가 없었다. 그들이 지나는 연도에는 감격에 눈시울을 적시는 진헌공 시절의 백전노장들까지 줄을 섰다. 이름깨나 있는 부호는 소를 잡고, 그보다 못한 농민은 돼지나 개를 바쳤다. 너도나도 수수며 조를 주먹밥으로 지어 농민군을 대접한다.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부녀자들도 주먹밥과 개떡을 이고 왔다. 밭둑 아래서 남자들은 오래 참았던 오줌을 누었고, 오줌 소리는 작은 폭포처럼 요란했다. 그 소리를 듣고 젊은 장졸들의 어깨 근육을 떠올린, 처자들이 고개를 돌렸다가 수줍게 수수개떡 한 조각을 건넨다. 여자들의 은근한 눈길에 장정들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농민군은 한 달이 채 못 되어 위수 연안의 성채를 거지반 장악하고 있었다.
열광하는 군중들 틈에서 이를 차분하게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진(秦)목공이 특별히 보낸 별동대이다. 평복으로 변장한 그들은 만약의 불상사가 발생하면 바로 개입하라는 특명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중이는 이러한 배려와 고심이 무색하게 너무나 수월하게 진(晉)을 손에 넣고 있었다. 오히려 진(秦)목공은 안심과 우려가 교차하는 묘한 심경이었다.
“내가 범을 산에 풀어놓은 것이 아닌가? 이제는 도로 불러들일 수도 없는 마당인데….”
바야흐로 강주(絳州)성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임금이 극예와 여이생을 불렀다.
“믿는 것은 오직 두 분뿐이라, 흉악한 도적을 막아주시오….”
부랴부랴 달려간 정규군은 여류(廬柳) 땅에서 농민군과 마주쳤다. 일단 숫자는 농민 쪽이 월등히 많았으나, 어수선한 가운데 군율부터 모자란다. 그래도 사기는 높아 날마다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어느 쪽도 섣불리 도발하질 못하고 버드나무 습지를 두고 동서로 대치하는 형국이었다. 밤이면 인근 백성들이 정규군의 진영 안으로 숨어들었다.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누면서, 진헌공 시절의 영광을 추억했다. 북쪽의 여융(驪戎)을 멸하고 이어서 곽(郭), 위(衛), 우(虞), 괵(蟈) 등 여러 소국을 평정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그래! 그때는 싸우면 이겼지. 거들먹거리며 귀성하던 장졸들, 줄줄이 가죽끈에 묶여 끌려오던 포로들과 수레마다 한가득 실린 오랑캐 계집들이라니….”
밤이 깊도록 무용담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진혜공 시절에는 패배한 기억만 있었다. 그나마 그 아들은 즉위하자마자 늙은 대부와 백성을 의심하여 죽이고 숙청하였다. 화톳불 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병사는 새벽이 되자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루하루 군사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때맞춰 조쇠가 투항을 권고하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우리 공자님은 부왕 진헌공의 위업을 잇고자 궐기하였다. 이미 진(秦)으로부터 하서의 다섯 성도 돌려받았다. 한때 힘들었던 시절의 과오를, 누가 원망하고 원수 삼겠는가? 분별이 있다면 즉시 창칼을 내려놓고 천명을 따르라! 기회는 오직, 지금뿐이다.”
군졸은 물론 장수급까지 이탈자가 속출했다. 하북의 대부 난지(灤枝)와 극곡(郤穀)이 몰래 중이를 만나러 왔다. 바야흐로 집단적 내응이 있을 조짐이다. 민심 이반에다 군심(軍心)까지 떠난 마당이라 여이생과 극예는 군대를 팽개치고 도주하였다. 소식을 들은 진회공도 부랴부랴 고량 땅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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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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