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교수 30.1%(395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고 밝혔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뿐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우리의 삶을 허비하고 있는가?
내 삶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는 ‘지족상락(知足常樂), 수분자안(守分自安)’ 중에 '수분자안'이었다. '지족상락'은 '족함을 알면 늘 즐겁다'는 뜻이다. 족함을 아는 것은 현재에 체념하거나 안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를 긍정하면서 밝은 내일을 위해 즐겁게 노력한다는 밝은 마음이다. 흔히 사람들은 "지족상락(知足常樂), 능인자안(能認自安)"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능인자안'은 '참고 견디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나는 이보다 "수분자안(守分自安)'이 더 낫다고 본다. 이건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말이다.
올 한해도 점점 저물어간다. 매년 이맘때면 교수들이 올 한해의 사자성어를 뽑으며 세태를 비판한다. 교수들은 올 한해를 다음 같이 평가했다. "이로움을 좇느라 의로움을 잊은 한 해"이다. <교수신문>은 지남 10일 전국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교수 30.1%(395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고 밝혔다.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의미다.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과)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마치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이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정치, 정책 등 공적인 영역마저 사익 추구에 잠식당한 상황을 짚은 것이다. 그는 이어 전세 사기, 학부모의 교육 활동 침해 사건 등을 언급하며 견리망의 현상이 “개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로움(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거다. 이익추구로 가치 상실의 시대가 되어가는 것을 꼬집는 거다.
'견리망의' 뒤를 이은 건 제법 익숙한 사자성어인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의 ‘적반하장(賊反荷杖)’(25.5%)이다. 정부가 잘못을 저지르고 남 탓만 한다는 의미로 적반하장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교수들이 많았다. 이승환 고려대 명예교수(동양철학)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비속어와 막말을 해 놓고 기자 탓과 언론 탓, 무능한 국정운영의 책임은 언제나 전 정부 탓, 언론 자유는 탓하면서 기회만 되면 자유를 외쳐대는 자기 기기만을 반성해야 한다”고 적반하장을 꼽은 이유를 교수신문에 전했다.
그다음은 '남우충수(藍芋充數)'가 뒤를 이었다.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뜻의 ‘남우충수’(24.6%)가 적잖은 교수들한테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지 받은 배경도 정부에 대한 실망이라고 본다. 어떤 한 교수는 '남우충수'를 꼽으며 “현 정권이 능력이나 준비가 되지 않은 측근 인사 위주로 발탁하다 보니 국정이 엉망진창”이라고 답했다. '남우충수'는 ‘무능한 사람이 재능 있는 척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실력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한다.
이어 4위는 '흙탕이나 숯불 속에 떨어졌을 때의 괴로움'을 뜻하는 '도탄지고(塗炭之苦)', 5위는 '여러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는 뜻의 '제설분분(諸說紛紛)'이 꼽혔다. 지난해(2022년)에 뽑혔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였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뜻의 "욕개미창(欲蓋彌彰)"이었고, 3위는 "누란지위(累卵之危)"였다. 이 말은 '여러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을 뜻한다.
그 외, 문과수비(文過遂非). 이 말은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 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이다. 이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꾸며 합리화하고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는 것을 뜻한다. 그다음은 "군맹무상(群盲撫象). 이 말은 '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는 것으로,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 한다'는 뜻이다. 작년과 올해 모두 비슷하다. 나라 꼴이 우습게 돌아간다. 2021년에는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다'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 2020년에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된 바가 있다.
그래도 요즈음 유일하게 인문 운동가의 눈에 잡히는 tv 프로그램 중 <싱어게인 3>가 있어 행복하다. 윤정구 교수는 자신의 <페북>에서 이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음악의 민주화"라고 평했다. "출연자들은 기획된 공장에서 찍어낸 가수가 아니라 우리 삶 여기저기에 같이 살고 호흡하던 무명 가수들이다. 목소리만 알고 있던 OST가수들과 목소리는 아련히 기억하지만 이미 이름이 잊혀진 가수들도 초청되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노래로 자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프로그램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가수들 모두 노래에 진심이고 모든 가창에 삶의 고유한 목소리와 이야기가 그대로 묻어 나온다. 토너먼트로 서로 경쟁하는 구도이지만 평가가 끝나면 서로의 성공을 응원해준다. 가수들끼리, 가수와 심사위원, 심사위원끼리도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진지한 대화와 소통이 이어진다. 심사위원단 코멘트도 건설적이고 따뜻하다. 전국노래자랑이 대한민국 노래의 날줄이라면 싱어게인은 씨줄이다. 날줄과 씨줄이 결합해 대한민국 음악의 태피스트리가 새롭게 짜이고 전개되는 것 같다. 출연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노래로 주체적 삶을 살다가 쓰러져 누워있던 시청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이들을 일으켜 세운다. 말싸움 격투장으로 전락한 우리의 정치와 삶도 이런 모습이었으면 한다."
눈앞의 암울한 현실에 움츠러들지 말자. 고난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고난 그 자체는 풍뎅이 한 마리 죽일 힘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뿐이다. 우리 삶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다. 삶의 여정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한 파도가 끝나면 이내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하자. 그 진리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셀라비(c'est la vie)! 언젠가 이설야 시인이 소개한 <무름>이란 시를 그의 '덧붙임>과 함께 공유한다.
무릎/장옥관
1.
새도 무릎이 있던가 뼈와 뼈 사이에 둥근 언덕이 박혀 있다 무릎을 꺾으니 계단이 되었다 꿇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일 적지 않았으리라
2.
달콤한 샘에 입 대기 위해 나비는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접지 않고 어찌 문이 열리랴 금동부처의 사타구니 사이로 머리 내미는 검은 달
3.
사람이 사람의 무릎 꿇리는 건 나쁜 일이다
4.
무릎이 다 닳아 새가 된 사람을 너는 안다 쌀자루를 이고 다니다 무릎이 다 녹은 것이다 나비처럼 너는 언덕을 넘고 싶다 검은 달을 향해 컹컹, 너는 짖어본다
장옥관 "시인은 물을 마시기 위해 샘에 입을 맞추는 나비에게서 무릎을 본다. 나도 무릎을 접어본다. 무릎은 베고 누울 수도 있고, 놀라서 탁! 칠 수도 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꿇을 수도 있다. 무릎과 꿇다 사이에 ‘가지런히’라는 부사를 넣으면 비굴함은 공손함으로 바뀐다. 무릎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공손하게 인사할까?" 그리고 "시인은 ‘쌀자루를 이고’ 다니다가 ‘무릎이 다 녹은’ 한 사람을 보여준다. 나도 시인과 함께 검은 달을 향해 컹컹 짖는다. 무릎 안의 ‘검은 달’을 꺼내서 언덕 위로 밀고 올라간다. 언덕 위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언덕 아래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의 문양이 새겨진 무릎은 눈보라의 기억을, 검게 탄 장판의 기억을, 미끄러운 계단의 기억을 품고 있다. 무릎은 말한다. 당신, 함부로 무릎 꿇지 마요! 검은 달이 죽어요. 파도가 죽어요."(이설야 시인)
우연히 어떤 분의 카톡에서 읽은 이야기를 적어 둔 것이 있다. "저녁 무렵, 젊은 여성이 전철에 앉아 있었다. 창(窓)밖으로 노을을 감상하며 가고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중년(中年)의 여인(女人)이 올라탔다. 여인(女人)은 큰소리로 투덜거리며, 그녀의 옆자리 좁은 공간에 끼어 앉았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밀어붙이며 들고 있던 여러 개의 짐가방을 옆에 앉은 그녀의 무릎 위에까지 올려놓았다. 그녀가 처한 곤경을 보다 못한 맞은편 사람이 그녀에게 왜 여인(女人)의 무례한 행동(行動)에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처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에 화(禍)를 내거나 언쟁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은 짧으니까요. 나는 다음 정거장에 내리거든요."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우리의 삶을 허비하고 있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인 데도 서로를 용서하지 않고, 실수를 들춰내고, 불평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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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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