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유리한 환경에 놓였을 때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

사상과 철학 / 안재휘 기자 / 2024-03-10 02:02:36
<264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누가 우리를 대신해 작은 성취에 도취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런 참모가 없다면 스스로 자기를 끌고 가는 참모가 되어 작은 성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채찍질 해야 한다.

 

 

<건괘>가 들려주는 네 번째 효는 "혹약재연(或躍在淵)"이다. 한 번 더 뛰어 올라야 한다는 거다. 작은 성취에 현혹되지 말라는 거다. "석척약"의 반성은 근본적으로 작은 성취를 부정하고 넘어서서 큰 성취를 이루는 데까지 가야 한다. 九四"或躍在淵(혹약재연)하면 无咎(무구)리라"이다. 용이 '깊은 못에서 혹은 뛰어오르기도 하니, 허물이 없다'로 읽는다. 깊은 연못은 용이 활동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자이다. 용의 덕을 갖췄다면 유리한 환경에 들어왔다고 해서 함부로 도약하지는 않는다.

 

주저앉을 것이냐 날 것이냐, 그 선택의 기로에 왔다. 이제 연못을 벗어나 뛰는 것을 혹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긴 꼬리는 아직도 연못 속에 있다. 뛴다는 것은 두 발이 이미 땅을 떠났지만 아직 날지는 않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뛰는 것은 허물이 생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뛰어라! 뛰면 허물이 없다. 유리한 환경에 놓였을 때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작은 성취는 큰 성취를 이루어 내는 밑거름이 될 수 있지만 거기에 만족하면 작은 성취는 큰 성취의 걸림돌로 변한다.

 

양이 네 번째 九四初九, 九二, 九三의 상황에서 쉼 없이 덕과 기량을 닦아 내괘(선천)에서 외괘(후천)로 넘어 온 상황으로, 자기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용덕(龍德)을 갖추어 스스로를 시험하여 성공하면 九五 대인(大人)의 역량을 발휘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허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九四 효가 변하면 양이 음으로 바뀌어 내호괘가 태()가 되니 연못이 나오고, 외호괘는 이()로 밝은 덕을 갖춘 상이며, 외괘가 손()이니 九五 대인이 되어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혹 연못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이다. 九四가 음 자리에 양으로 있어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도약하여 승천하는 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九四의 메시지는 유리한 환경에 놓였을 때 거기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거다. 이상수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라는 책에서 읽은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한다. 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절인 고려 말, 중렬왕의 아들 충선왕은 어머니가 원나라의 왕족이었다. 그는 몽골-고려 혼혈아로 원나라 왕실이 외갓집이었다. 충선왕은 고려의 정치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원나라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한동안 원나라에서 국내로 편지를 보내 원격 정치를 했다. 그를 수행한 이제현은 나라를 비우고 원나라에 머물고 있는 충선왕에게 한시라도 빨리 고려로 돌아갈 것을 간청했다.

 

충선왕은 원나라에 머물 때 자주 가던 술집의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고려로 돌아갈 즈음 충선왕은 그 여인에게 연꽃 한 가지를 선물로 주었다. 그 여인을 잊지 못한 충선왕은 이제현을 보내 그 여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오도록 했다. 이제현이 그 여인의 숙소에 갔더니 여인은 며칠째 먹지 않아 말도 제대로 하지 모할 지경이었다. 겨우 몸을 추스른 여인은 억지로 붓을 놀려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이제현에게 주었다.

 

보내주신 연꽃 잎

처음엔 한 잎 한 잎 붉더니

가지에서 떨어진 지 오늘이 며칠

마르고 시들어가는 것이 내 모습과 같구려

 

이제현은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충신왕에게 이 시를 보여주었다가는 또 귀국 날짜를 늦추고 당장 여인에게 달려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충선왕에게 거짓말을 했다. "제가 술집에 가서 보니, 그 여인은 다른 젊은 청년들과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어 저와 이야기를 나눌 겨를도 없었습니다." 충선왕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땅에 침을 뱉았다.

 

충선왕이 고려로 돌아 온지 한 해가 지나 생일잔치를 벌였을 때였다. 이제현이 충선왕에게 술을 한 잔 받고 물러나더니,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다며 죽여달라고 했다. 충선왕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현은 그 여인이 지은 시를 왕에게 올리며, 1년 전의 일을 사실대로 고했다. 충선왕은 시를 읽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해 전 그날 이 시를 읽었더라면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다시 그 여인에게 돌아가려 했을 것이오. 경이 나를 사랑하여 말을 꾸민 것이니, 이는 진실로 충성을 다한 것이오." <<용재총화>>에 실려 있는 이야기라 한다. 충선왕은 군주나 리더로서 그렇게 뛰어난 인물은 아니다. 그런 그 조차 이제현의 본마음이 어떠했는지 판단할 분별력은 있었던 것이다.

 

만약 누가 우리를 대신해 작은 성취에 도취 당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런 참모가 없다면 스스로 자기를 끌고 가는 참모가 되어 작은 성취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고 채찍질 해야 한다. 원대한 인생을 어찌 작은 꿈 속에 구겨 넣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스로 작은 안락의 유혹에 이겨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상우 저자는 <<한비자>>의 한 토막을 소개하였다. "서문표는 성미가 급했기 때문에 늘 부드러운 가죽을 옆에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려고 애썼고, 동안우는 마음이 느긋했기 때문에 늘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재촉했다. 그러므로 넉넉한 것을 가지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장점을 들어 단점을 잇는 사람을 밝은 군주라 한다." (<<한비자>>, <관행>)

 

서문표는 중국 전국시대 치수 사업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끌어올린 위나라의 정치가이고, 동안우는 춘추시대 말기 진나라의 실권자인 조간자의 가신으로, 축서술로 이름을 떨친 정치가라 한다. 허리춤에 매달린 부드러운 가죽을 보며 서문표는 '한 템포 늦추라'는 메시지를 읽고, 반대로 동안우는 팽팽한 활시위를 보며 '늘어지지 말라'는 메시를 들었다는 거다. 급하거나 무른 성격을 바로잡아주는 상징물이 있을 수 있다면, 작은 성취에 만족해 거기 머물지 말라고 일깨워주는 상징물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작은 성취에 쉽게 도취되지 않도록 일깨워줄 누군가가 없다면 스스로 이런 상징물을 만들어 가까운 곳에 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의 저자 이상수의 주장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안락의 유혹에 이겨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면,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바다를 건넌 이야기를 소환해야 한다. 세이렌이라는 바다의 요정들은 암초가 많은 곳에 살면서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해 바다에 뛰어들게 하거나 배를 난파시키는 매우 위험한 존재들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세이렌(Seirên), 또는 세이레네스라 불리기도 하고, 라틴어로는 시렌(Siren, 사이렌)이라 한다. 이 말은 휘감는 자,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는 자, 묶는 자라는 뜻의 옛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이는 세이렌이 내는 소리가 영혼을 매혹시키는 힘이 있어 한번 들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는 고대인들의 믿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 문헌들에는 세이렌이 아름다운 목소리 뿐 아니라 피리 소리, 리라(Lyra, 고대 발현악기) 소리로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해 잡아먹거나 배를 난파 시켰다고 나온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살아 남은 뱃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기심 넘치는 오디세우스는 세상에서 가장 애절하고 아름답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너무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목숨을 바칠 수는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아 세이렌의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 자신은 세이렌의 노래를 들어야 하므로 귀를 막지 않았다. 대신 선원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고 세이렌의 바다를 다 지날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절대 풀어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세이렌의 바다를 지날 때 오디세우스는 너무도 아름다운 세이렌들의 노랫소리에 홀려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몸부림쳤다. 밧줄을 당장 풀라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밀랍으로 귀를 막은 선원들은 그의 사전 지시대로 세이렌의 바다를 벗어나서야 그를 풀어주었다. 그 덕분에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도 살아남은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 세이렌의 유혹에 빠져 풍랑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선택을 한다면, 그는 한동안 자기를 삼키기 위해 달려드는 비정한 세상의 폭풍우와 싸우며 매우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할 것이다. 너무 빨리 좌절을 맛보거나 평생 비틀어진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게 될 수도 있다.

- 선원들처럼 오디세우스가 시키는 대로 밀랍으로 귀를 틀어막고 노만 젓는 방법이다. 이것은 외부의 권위가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

- 오디세우스처럼 귀는 열어놓되 몸만 돛대에 꽁꽁 묶고 가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잠룡과 현룡의 시기를 통과하는 방법이 아닐까?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낼 만큼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그래서 자신을 돛대에 꽁꽁 묶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지녔다. 그러나 그는 귀까지 틀어막지는 않았다. 그는 이런 지혜를 발휘한 덕분에 세이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세이렌의 바다도 통과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잠용과 현룡의 시기를 주체적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다음 두 가지를 다 인정하여야 한다. 하나는 내가 세상을 잘 모른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세상에 대해 귀를 완전히 틀어막을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세상을 잘 모르니, 자신을 치명적인 유혹에서 보호해줄 장치는 반드시 마련하는 거다. 그럼에도 세상과 담을 쌓거나 귀를 틀어막지는 않는 거다. 그러면 자아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그렇게 2월은 간다." 그래도 오늘은 4년만에 얻은 덤이니, 더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야 할 하루이다. 내일이면 벌써 3월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장자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했다. 그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가는 세월/서문인

 

 

나를 유혹하는

그대의 빛깔에

깊은 정 젖어 드는데

 

무정한 세월아

아서라

꽃잎 떨구지 말아라

 

너는 어이해

내 빈 가슴속에

둥지도 틀지 않고

새처럼 훌쩍 날아가 버리는가

 

발 동동 구르며

서러운 이별로

가는 세월아

 

이리와

술 한잔 받고

쉬었다 가거라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아니면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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