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대로 보지 못하고 판단하게 만들어
-행복을 위해 최고(best)'가 되려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better and better)' 거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그러려니' 하는 정상화, '괜찮아' 라고 말하는 타당화, '괜찮아' 라고 말하는 타당화 등 3가지 수용이 필요하다.


1
우리의 문제는 흔히 억지로 안 되는 것들, 슬프고 괴로운 것들을 해결하려고 든다는 데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자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판단하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순간, 수용은 멀어진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수용이 필요하다. 그 건강한 수용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완성된다고 했다
▪ '그러려니' 하는 정상화: 사람은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며, 따라서 내가 이런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용감한 소방대원이더라도 인간인 이상 거센 불길을 두고 무서워서 물러서는 반응은 정상이다. 즉, 내 모든 행동을 정상이며, 나 말고 누구라도 이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상화다.
▪ '괜찮아' 라고 말하는 타당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타당화는 'validation'이라는 영어를 번역한 용어다. 'valid'는 외국에 입국할 때 출입국을 허가하는 입국사증에 찍히는 말이기도 하다. 심리학에서는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수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즉 타당화란 비록 자신이 좀 허접 하고 못마땅하더라도 괜찮다고, 타당하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 자기 확신: 좀 부족하고 힘겹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더라도, 자기 자신이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인정하고 나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9월에는 일상에서 다음을 실천할 생각이다.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다그치기보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마냥, 즐겁게' 작은 노력을 멈추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실행하는 거다. '최고(best)'가 되려 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better and better)' 거다. 이런 식으로 9월에는 마음의 방조제를 쌓을 거다. 그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긍정 자원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거다.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그래야 어떤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자원을 활용해 문제에 대처하고 행복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홍수가 몰려와도 마을이 침수되지 않으려면 방조제를 충분한 높이로 쌓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9월의 기도>를 읽는다.
9월의 기도/이해인
저 찬란한 태양
마음의 문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느끼게 하소서
우울한 마음
어두운 마음
모두 지워버리고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9월의 길을 나서게 하소서
꽃 길을 거닐고
높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보며
자유롭게 비상하는
꿈이 있게 하소서
꿈을 말하고
꿈을 쓰고
꿈을 노래하고
꿈을 춤추게 하소서
이 가을에
떠나지 말게 하시고
이 가을에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하소서
2
일상은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가장 비범한 풍경이 된다고 믿는 김지수 작가의 <<감각 자본>>을 읽는다. 이 책과 함께 변화무쌍한 현실을 읽어내면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힌다. 저자의 시선과 함께 익숙한 풍경을 새로운 각도로 보는 훈련을 하고 싶다.
오늘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살펴본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는 일상 속에는 특별함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의 "감각 자본"을 위해 그 "특별함의 씨앗"을 찾으려 한다. 왜냐하면, 럭셔리의 진정한 본질도 외형이 아닌 안목에서 비롯되며, 거리 도심 속 골목길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의 그늘에 묻힌 작은 이야기 또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면 반짝이는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은 결국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가장 비범한 풍경이 된다. 일상의 소비재 속에 들어 있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려 한다. 실제로 값싼 소비재도 시간이 흐르면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흔한 나무조차 예술의 매개나 술의 풍미를 책임지는 존재로 거듭난다는 거다.
버거 세계에서 '보다 큰' 의미를 위해 부여한 단어가 라지, 킹, 스페셜 그리고 디럭스이다. 난 버거를 좋아하지 않아 이런 용어들을 잘 몰랐다. 디럭스라는 말이 와전되어 쓰인다는 거다. 디럭스의 본래 의미는 대용량이 아니다. '사치, 호화, 고급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luxe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으며, 영어에서도 '매우 편안하고 품질이 뛰어나며 비용이 비싼' 상태나 분위기를 나타낼 때 명사나 형용사로 쓰인다. 흔히 아는 luxury(럭셔리)의 짧고 세련된 표현 또는 프랑스어 원형에 가깝다. luxe 앞에 전치사 de(~의)가 붙어 de luxe(고급의 호화로운)의 프랑스어가 영어로 '디럭스(delux)'를 탄생시킨 거다. 범용 소비재에서는 제품의 퀄리티를 '한 단계 격상해 준다'의 의미이다. 주로 양과 크기를 두 배 이상으로 불려준다는 의미로 쓰이다 보니 본래의 의미가 와전되었다.
'Luxury goods'를 명품이라 번역한 것도 본래 의미와 동떨어진 오역에 가깝다. '럭셔리 굿즈'를 사전 뜻 그대로 하면 '사치품'이다. 그런데 수입 업체가 '명품'이라 이름을 붙였다. 왜냐하면 '사치(사치)'의 뜻은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이기 때문이다.
원래 '명품'을 말 그대로 하면, '이름값 하는 제품'이다. 명인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이루어 냈기에 대량 생산품과 구별되는 희소가치가 있어야 하며, 쉽게 카피할 수 없는 특별한 제작 기술이나 소재의 특별함 그리고 디자인의 미학적 가치가 돋보여야 한다. 즉 제품 자체의 '본연의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정 수량의 와인이나 수십 년 이상을 숙성한 고급 위스키 같은 럭셔리 제품에서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하고, 즐기는 거다. 이 제품들과 연관 사람(와인 메이커, 디스틸러), 환경(지리적 입지, 기후) 그리고 재료(포도 상태, 원주, 효모, 오크통)는 물론이고 디자인과 브랜드 스토리텔링까지 술 한 병을 비우는 동안 하나의 문화 소비재로써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이다.
나는 내 감각 자본을 쌓기 위해 "본질의 가치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고 싶다. 우리는 본질적 가치보다 외부로 노출 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타인의 부러움을 주로 만끽하는 과시적 경향이 짙다. 명품을 제대로 누리는 문화 풍토와 정서가 부족하다.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감각과 취향을 발견해가는 여정의 만끽보다는 타인과의 차별 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앞선다. 남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소유하거나 소비하고, 그것에 행복감을 가지는 것을 탓할 순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존재하는 보편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안목 없는, 감각 자본이 없는 눈 먼 욕망이 들끓을 때 가짜들이 판을 친다.
3
다양한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숙성시킨 위스키는 통마다 다른 개성과 풍미를 지닌다. 공통점이라면 통 내부를 태운 훈연향이 난다는 점이다. 명품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참나무는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수종에 대한 공통 명칭이며 학술적으로는 퀘르쿠스(quercus) 속으로 구분된 나무를 말한다. 주로 북반구의 온대에서 열대에 걸쳐 자라며 종 수가 200-250종에 이른다. 다만 우리가 국내에서 접하는 대부분은 참나무 6인 방인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로 한정된다.
참나무 6인 방을 좀 더 이야기 해 본다.
▪ 상수리나무: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 도토리 묵을 먹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수라상 맨 위에 오른 도토리'라는 뜻의 '상수리'라는 이름 얻게 되었다고 한다. 피난 길에 먹을 것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이 먹던 음식을 임금께 올린 것인데 선조가 이를 아주 맛나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 신갈나무: '새로 난 잎의 색'이 갈색을 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신발 밑창설'도 있다. 옛날 나무꾼들이 숲 속에서 나무를 하다 짚신 바닥이 해지고 닳으면 '신' 안에 이 잎을 깔아서 신었다는 것이다. 다른 잎들에 비해 맨발에 닿아도 부드럽고 잘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이라 사용되었다 한다.
▪ 떡갈나무는 '신'이 아니라, '떡'에 깐 것이다. 시루떡을 찔 때 시루 밑에 떡갈나무 잎을 깔고 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떡갈나무 잎으로 떡을 감싸서 찌기도 했는데, 뒷면의 털이 방부 작용을 해서 이렇게 찐 떡은 쉽게 변질되지 않았다고 한다.
▪ 굴참나무: 나무껍질의 골이 유난히 깊다 해서 '골참'이라 불리다 '굴참나무'가 되었다. 산간 지방에서는 두꺼운 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집(굴피집)을 지을 때 사용했는데, 굴참나무 껍질은 유난히 보온성이 좋고 비가 좀처럼 새지 않아 유용했다고 한다.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도 이 굴참나무 껍질이다.
▪ 갈참나무: 가을이 끝날 때까지 제일 오래 단풍 든 잎을 달고 있어서 '가을 참나무'라는 말을 줄여 갈참나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 졸참나무: 참나무 종류 중 잎과 열매가 가장 작아 '졸(졸)'을 붙여 졸참나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원래 작은 것이 진국인 법이다. 졸참나무 도토리는 다른 도토리에 비해 떫은 맛이 덜해서 묵을 만들면 맛이 제일 좋기로 알려져 있다.
나무 중 참나무야 말로 '아낌없이 주는 너무' 이다. 재질이 다른 나무보다 좋아 옛날부터 곡괭이, 쟁기 같은 농기구나 수레바퀴, 배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태워서는 '참숯'이 되어 끝까지 쓰였다. 이처럼 유독 쓰임이 좋아 '진짜' 나무라는 의미에서 '참'이 붙었으니 다른 모든 나무를 가짜 나무로 만들어버리는 그 패기 넘치는 이름에서부터 조상들의 편애가 느껴진다.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 역시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양식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도토리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전국 곳곳에서 지금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된 것은 그런 연유라고 한다.
초여름에는 '입 하얀 꽃'의 이름을 알아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가을엔 도토리 구별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음 사진을 공유한다.

'털모자 3형제 대 베레모 3형제 구별법'이다. 삐쭉삐쭉 풍성한 털모자를 쓴 건 상수리, 굴참, 떡갈 나무 열매이고, 야무지게 멋 부린 베레모를 쓴 건 신갈, 길참, 졸참 나무 열매이다.
4
와인이나 위스키는 내부를 태운 참나무통에 숙성시킨다. 와인은 오래 담아 놓지 않지만, 위스키는 오래 묵을수록 더 깊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아예 12, 15, 18, 25, 30 등의 숫자를 달아서 숙성 햇수를 표기한다.
참나무는 성질에 따라서 다시 레드 오크와 화이트 오크로 나눈다. 레드 오크는 말 그대로 붉은색을 띠며 기공(구멍)이 많은 반면, 화이트 오크는 색이 더 밝고 기밀성, 내구성, 통기성, 내수성이 무척 좋다. 그래서 공기도 잘 통하고 물도 잘 새지 않는 화이트 오크가 캐스크(오크통) 제조에 많이 사용된다. '퀴르쿠스 알바(quercus alba)라는 이름의 미국산 화이트 오크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위스키인 버번을 숙성하는 캐스크가 바로 이것으로 만들어진다.
유러피언 화이트 오크의 경우 서유럽 전역에 자생하는 꿰르쿠스 로부르(Quercus robur)와 중부유럽의 퀘르쿠스 페트라(quercus petraea)가 위스키 캐스크의 재료로 쓰인다. 특히 스페인의 쉐리(sherry) 와인을 숙성하는 데는 주로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의 스페니스 코크(sspanish osk), 르랑스 리무쟁 지역의 프렌치 오크(french oak)를 사용한다. 이 둘로 만든 캐스크의 가격은 다른 것에 비해 월등하게 비싸고 구하기도 함들다.
와인의 진짜 맛은 오크통에서 나온다. 포도 품종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 와인이 만들어지듯이 오크통도 그 원료인 오크 나무가 어떤 기후와 지형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그 품질과 특성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산 오크를 특 등급으로 쳐준다. 프랑스에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준 것은 이탈리아이지만, 오크(참나무) 통 사용법을 가르쳐 준 것은 프랑스의 골(Gaule) 족이었다. 그전까지는 방수처리를 한 가죽부대나 큰 토기에 포도주를 보관하였는데 점차 오크통이 보관과 운송에 유용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17세기에 유리병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오크통은 주로 포도주의 운송 용기로써 사용되었다. 운송과 보관 모두에 편리한 유리병의 발명으로 지하 창고에 들어앉게 된 오크통이 오늘날 이처럼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오크가 주는 여러 혜택이 속속 발견되면서부터 이다.
오크통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먼저 오크 나무의 통기성이라는 특성을 들 수 있다. 와인은 숙성과정에서 일정한 양의 산소가 필요한데, 이 산소는 아주 미세한 분량이 천천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나무의 자연 조직은 바로 이 미세한 산소 공급을 가능케 해서 와인이 안정적으로 숙성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오크통 속에서 숨을 쉰 와인은 탄닌이 부드러워지고 더 조화로운 맛을 낸다. 스테인리스 스틸 통 안에 있는 와인은 산소와 차단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기계를 이용하여 산소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단시간에 너무 많은 산소가 공급될 수 있으며 와인에 무리를 주기도 한다.
그다음 오크통은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부께(Bouquet, 와인의 2차 향)의 복잡 미묘함을 더해 준다. 오크 나무 조직에 함유되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은 무려 60여 가지나 되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닐린(Vanillin)과 탄닌(Tanin)이다. 바닐린은 직접적으로 부께의 형성에 관여한다. 오래 숙성된 고급 와인의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나무 냄새는 바로 이 바닐린 성분이 와인의 알코올 성분에 의해 추출돼 산소와의 미세한 산화 작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주로 장기 숙성용 고급 와인에 오크통을 사용한다. 또한 오크통은 와인에 나무 향을 베게 하는 역할 이외에 다른 것이 있다. 색깔을 안정되게 하고 거친 향을 부드럽게 하는 작용을 한다. 즉 오크 나무의 탄닌이 와인의 안료인 안토시아닌과 작용하여 색상을 선명하고 깨끗하게 해준다.
오크통은 떡갈나무나 참나무 계통으로 재질이 단단해 가구 등을 만드는 데 많이 쓰이는 나무로 만든다. 흔히 고급 와인은 병입하기 전에 1년 6개월~2년 정도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크의 각종 향이 와인에 스며들어 나무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런 나무 향은 오크통이 새것일수록, 또 크기가 작을수록 그 만큼 더 와인에 영향을 준다. 오크통이 주는 향은 바닐라 향, 볶은 커피 향, 연기 냄새, 구운 토스트 향, 새 가죽옷 냄새 등 다양한 향이 복합적으로 추출된다.
오크통의 사이즈는 생산 지역, 사용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보르도에서는 225리터짜리가 주로 사용된다. 이를 '바리크barrique)'라고 한다. 오크는 와인에 나무 향을 더해주며, 고급 와인의 특성과 개성을 살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요즈음에는 가격과 위생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와인의 온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통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크 나무는 수백 종이 있는데, 크게 하얀 색 계통의 오크와 붉은 색 계통의 오크로 나뉜다. 와인 숙성용 오크통은 대부분 화이트 오크로 만드는데,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는 프랑스의 리무젱(Limousin)산을 친다. 이 밖에 프랑스의 네베르(Never)산도 유명하며 대중적인 와인에는 미국산과 포르투갈 산 그리고 슬로베니아 산 오크가 많이 쓰인다.
만들고자 하는 와인의 스타일에 따라 새 오크통과 헌 오크통의 비율을 적당히 조절해 사용한다. 최근에는 일종의 유행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오크통을 사용해 와인을 숙성 시키는데 보다 세심한 배려와 주의가 따라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오크통의 유익한 효과는 그 속에 들어가는 와인이 품질 좋은 포도로 만들었을 경우의 이야기이다. 오크 나무는 상당히 자체 향이 강한 나무인데다 오크통 제조과정에서 다시 불에 내부를 그슬려 스모키한 향을 강조한다. 따라서 오크통은 장기 숙성용 고급 레드 와인에게 특히 권할 만하며, 특정 지방의 샤르도네나 세미용 같은 화이트 와인도 오크통 숙성을 통해 혜택을 입기도 한다.
5
연중 제23주간 금요일로 말씀은 <루카 6,39-42> "남을 심판하지 마라"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당신을 보려고
당신을 보는
나를 보고
나를 보려고
나를 보는
당신을 봅니다
당신을 보니
당신이 보는
내가 보이고
나를 보니
내가 보는
당신이 보입니다
6
나는 상대방을 위하는 호의와 자애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까?
2026/9/11/연중 제23주간 금요일
루카 복음 6장 39-42절: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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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치유자와 인도자의 눈
우리는 형제의 장점보다 단점을,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을 더 쉽게 발견하곤 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내 판단과 기준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온 결과이겠지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까요? 어쩌면 자신이 빛인 줄 착각하기 때문은 아닐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타인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선입견이나 편견 어린 시선을 내려놓으라는 표현이겠지요. 또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라’라고도 말하죠.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이는 단지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라는 말씀도,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이라는 말씀도 아닐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눈 속의 ‘들보를 빼내고’, 본래 하느님께서 주신 ‘호의’와 ‘자애’의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라는 가르침이시겠지요. 그리하면 형제 눈 속의 티를 빼낼 수 있고,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오늘 하루, 작은 기도 하나 청해봅니다. 주님! 제 눈이 당신의 시선을 담게 하소서. 아멘.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생활성서 2026년 9월호 '소금항아리'에서⠀
[하략]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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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한표 교수 |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 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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