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한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작가 '서도호'

기고 / 오성철 기자 / 2021-08-23 09:49:58
설치미술로 풀어낸 개인과 집단의 관계
▶서도호, ‘유니폼/들:자화상/들:나의 39년 인생’, 169×56×254cm, 200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끝났다. 그나마 금메달을 못 땄다고 국민에 죄송하다며 죄 지은 듯 고개를 숙이고 눈물 흘리는 선수가 없어서 다행이다. 물론 ‘국가대표’ 자격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출전했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 못지않게 선수 개인의 성취와 노력에 대한 결실도 중요하다. 메달 색깔이나 국적을 떠나 선수들이 거둔 결과를 인정해주고 순수하게 경기 자체를 즐기는 시대가 됐다. 올림픽을 계기로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됐다. 작가 서도호가 떠오른 이유다. 그의 작품은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 공동체 사이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서도호, ‘Some/One’, 높이 205cm 가변 크기, 2001,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글로벌리즘과 노마디즘
먼저 2006년 작 ‘유니폼/들 : 자화상/들 : 나의 39년 인생’을 보자. 제목 그대로 작가 나이 마흔을 앞둔 서른아홉 살에 만든 작품이다. 옷 열 벌이 줄지어 나란히 붙어 있다.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 ‘서도호’라는 이름이 박혀 있는 걸 보면 작가가 직접 입었던 유니폼(제복)으로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과거 대다수 한국 남성들이 입어야 했던 제복들, 교복→교련복→군복→예비군복→민방위복으로 이어지는 유니폼 변천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유니폼은 개인이 아닌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특히 죄수복이나 군복 같은 유니폼은 낙인 효과와 익명화, 획일화를 조장하고 나아가 통제와 감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작가는 유치원 시절부터 성인이 돼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까지 자의 반 타의 반 소속됐던 집단의 기억을 유니폼으로 회상한다.
서도호는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 2001년 제49회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대표로 참가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익히 알려진 대로 역사가 가장 오래됐고 권위 있는 비엔날레로 손꼽힌다. 그래서 ‘미술계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당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금메달(황금사자상)을 딸 것으로 예상됐던 출품작 ‘Some/One’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주제는 앞선 경우와 비슷하다. 개인의 정체성과 집단의 기억. 갑옷을 입을 것처럼 보이는 인물 형상은 속이 텅 비었다. 전시장 바닥까지 옷자락이 펼쳐진 장엄한 모습의 이 작품은 군인들이 착용하는 인식표 약 7만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들었다. 군인 인식표에는 이름, 군번, 혈액형 같은 한 개인의 사회·생물학적 정보가 숫자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가상의 글자와 숫자를 기록한 가짜 인식표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 내용이 판독되지는 않는다. 실제와 달리 불명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대인의 익명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주제의식은 초기작부터 드러났다. 작품 ‘Floor’가 좋은 예다. 관객은 이 작품 위를 걸어 직접 다닐 수 있다. 관객이 딛고 선 유리판 아래엔 합성수지로 만든 8cm 크기 인형 18만 개가 유리판을 떠받치고 있다. 그 인형은 인종과 성별이 제각기 다르다. 두 손으로 힘껏 유리판(관객)을 지탱하는 인형의 표정은 권력에 짓밟히고 억눌린 군중의 아우성처럼 보인다. 반대 입장도 경험할 수 있다. 유리판 위에 올라서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걷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연약한 군중 위에서 군림하는 권력자가 된 듯 섬뜩하고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Karma’라는 제목의 작품도 비슷한 맥락이다. 거인국과 소인국이 등장하는 <걸리버 여행기>를 연상시킨다. 전시장 천장을 뚫고 나온 거대한 크기의 발과 그 아래 조그맣게 뭉쳐 있는 인간 군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반짝이는 구두와 잘 다려진 양복바지를 입은 거대한 두 발은 자본가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발바닥 아래에서 떼를 지어 앞으로 달려가는 군중은?
 

▶서도호, ‘Karma’, FRP, 389.9×299.7×739.1cm, 2003, 아트선재센터 설치 장면
▶서도호,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합성섬유, 금속 프레임, 15.3×12.83×12.97m, 20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설치 장면


부전자전 혹은 청출어람
1962년 태어난 서도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1991년 미국으로 유학해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우리나라보다 해외 미술계에서 먼저 두각을 보였고 뒤늦게 국내에 알려진 경우다. 이른바 세계화와 연관된 개념으로 ‘다문화’와 ‘유목민적 문화이동(노마디즘)’이 중요하게 거론된다. 동서양 문화와 다양한 장르를 경계 없이 아우르는 서도호의 모습이 그러하다.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그는 지금도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오가며 전시를 한다. 가벼운 천을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든 대형 입체설치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는 2020년 타계한 동양화가 산정(山丁) 서세옥(1929~2020) 화백이다. 동생 서을호도 건축가로 널리 알려졌다. 유족은 산정의 작품과 그가 수집했던 컬렉션 등 3200여 점을 성북구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준희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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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철 / 문화예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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