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한국강단사학자 모두 ‘정한론’ 위한 역사침략 파트너"

민족·역사 / 하성호 기자 / 2021-12-05 10:08:47
빛고을 ‘가야사바로찾기聯’, 『이덕일 교수초청 시민역사특강』
"가야史로 모였지만 식민사학, ‘한국재점령’에 대한 궤멸이 목표"

 

빛고을 가야사바로찾기’, 이덕일 교수초청 시민역사특강

 

"가야로 모였지만 식민사학 한국재점령에 대한 궤멸이 목표"

"일본 극우·한국강단사학자 모두 정한론위한 역사침략 파트너"

김대중 전 대통령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고 지도역사관 확실

일본서기기년 등 전혀 맞지 않은 소설 같은 책 속 기문국남원

이용중 위원장 남북한은 21세기 홍익인간 깃발 들고 세계 선도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한 최대저항의 지역 집단을 이루기도 했던 광주광역시에서는 사맹(史盲)화되어가는 또 다른 절반 남은 일제 잔재 제2의 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는 식민사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왜곡 저항에 대한 삽질을 시작했다.

 

지난달 18식민사관으로 왜곡된 가야바로잡기 전국연대(위원장 이용중. 이하 약칭 가야바로잡기)’에서는 광주광역시의회 4층 대회의실에서 이덕일 교수 초청 시민역사특강을 실시했다.

 

이 자리에는 대동문화재단 이사장 조상열, 세대혁신 박민영 공동대표, 전주경실련 이점수 남원지역집행위원, 더불어민주당 석성민 청년명예국회의원과 시민 등 다수가 참석하여 한국의 유일한 민족주의 대표사학자 이덕일 교수의 가야사와 가야분국 임나사주제 강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먼저 이날 이용중 가야바로잡기 전국연대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50년보다 앞으로 20년이 더 급격하게 변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그 사이에 미·중의 패권주의뿐만이 아니라 남북의 질서, 세계의 질서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1909년 간도를 분할했고 1945년 한민족은 남·북으로 나뉘어졌다이제 우리는 남·2국시대를 한민족 1국시대였던 단군조선 시대로의 귀환 통일이란 깃발을 펄럭이며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야사 바로잡기는 제2의 광주항쟁이고, 24·3항쟁,2의 동학혁명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우리 민족 단군조선 시대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화세계를 확립·실천하는 길만이 지구촌 전체를 밝게 빛낼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이 되어서 그 깃발을 들고 바로 서야 남북이 통일되고 또 남북통일이 되어야 지구촌이 평화로워진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이덕일 교수의 가야사와 가야분국 임나사란 주제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이하 특강 요약)

 

 

 

권력 약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역사관 확실했던 지도자

 

반갑습니다. 광주는 제가 올 때마다 감회가 새로운데요.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동교동 자택 앞에서 잠시 노제를 지낼 때 카메라가 집안으로 들어가 서재를 비춘 적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김 전 대통령은 독서광이셨지요. 그때 서재의 고조선 지도를 한 장 비추었는데, 그 지도를 보니까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라는 책의 고지도 한 장을 크게 클로즈업했던 적이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역사관이 확실하게 있던 지도자이셨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단지 권력이 너무 약했지요. 당시 입법·사법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 권력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반반씩으로 나눴잖아요. 그래서 권력이 약해가지고 고조선의 대륙지배라는 부분까지는 손을 못 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가야사 문제를 놓고 이렇게 시끄러운데 만약에 지금 대통령이 김대중이라는 분이라면 국가권력하고 저희 민족주의 사학은 같이 가는 거잖아요. 민족주의 역사관으로 갔을 게 확실할 거라는 아쉬운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 재점령을 꿈꾸는 일본 극우파와 한국 강단사학자들

 

우리가 가야사를 가지고 모였습니다마는 식민사관 하나를 비판하다 보면 그 자체가 가야사가 됐든 신라사가 됐든 백제사가 됐든 전부 이 황국사관하고 만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황국사관이란 무엇인가? 단군을 부정하고 삼국사기 초기기록도 다 불신하고 한국사회의 시작은 서기 369년에 야마토왜가 갸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일본부 =고대 일본의 야마토정권이 369년 한반도 가야 지방에 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여 지배했다고 하는 주장을 말한다. 이는 광개토왕비문을 왜곡한 왜가 신묘년(369) 이래 백제와 신라를 쳐서 식민지로 삼았다라는 부분에 대해 한국 서예가 김병기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비문 1775자 가운데 다른 글자들과 형태가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변조라고 본다를 세운 이때가 한국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황국사관입니다. 일본서기=720년 편찬자 모름. 일본서기 편찬 원칙 1. 일본사의 시작을 1천 년 정도 끌어 올린다-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조작, 일부는 주갑제 적용. 2. 상국 백제를 제후국으로 격하시킨다. 3. 고구려·백제·신라·가라가 야마토 왜에 조공을 바쳤다고 서술. 메이지 이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황국사관 경전으로 격상는 전 세계 사학계가 인정하는 가야사를 왜곡한 2단체 일본 극우파와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를 100%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강단사학자들만이 마치 성서처럼 떠받드는 일고서(日古書)입니다. 물론 이 2곳의 단체는 황국사관, 즉 한국 재점령을 꿈꾸는 단체들입니다.

 

늘 서론과 본론이 다른 말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강점기(대일항전기對日抗戰期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시기 일본이 우리에게 강요한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왜곡시키고 한국인에게 열등감을 조장했다. 사실 그들이 임나라고 부르는 곳은 고대 한반도의 가야지역에 해당한다.” -김태식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쟁점, 역사비평사 2008.

 

밑줄 그은 말들을 그들이 임나라고 부르는 곳은 가야가 일본열도에 진출해 세운 분국에 해당한다이렇게 쓰면 간단히 맞는 말들이에요. 결국 앞 문장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해 놓고 밑줄 그은 뒷 문장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핵심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이 사학계를 완전 장악하고 자기들끼리 북장구 치고 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지요.

 

일본열도내 분국설(1963)로 충격을 준 북한사학자 김석형

 

“(일본인들)의 평가는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기에 걸쳐 야마또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했다는 그릇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기원전 3~2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는 천년의 초기 조일관계사가 조선사람들의 적극적이고도 계통적인 일본렬도 진출과 소국들의 형성, 일본력사 발전에서 한 조선소국들의 통합 후에는 그 정권 내에서의 백제사람들의 우월한 지위 등을 기본내용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견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초기 조일관계사(1988))

 

일본학자들도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고 하니까 이런 사실을 자기네 본국의 일로 볼 수가 없다고 봅니다. 광개토대왕도 조공을 바쳤다고 하니까 도저히 사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일본열도 내 분국설은 북한의 역사학자 김석형이 1963년에 처음 주장한 학설이에요. 임나일본부설로 대표되던 당시 일본사학계를 초토화시켰죠. 김석형은 초기 조일 관계를 통하여, 삼한 및 삼국시대 사람들이 북규슈를 중심으로 일본열도 전역에 분국(分國)을 설치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김석형은 조희승과 초기 조일관계사를 집필하여, 분국설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 없지만, 남한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며 역사의 보편타당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거지요. 황국사관은 분단사학이에요. 민족주의 사학은 통일사학인 거죠.

 

왜에서 가야를 임나로 불렀다는 남한의 김태식 남한학계는 임나=가야설을 주창했다. “비교적 신빙성이 인정되는 다수 용례를 중심으로 볼 때, 임나는 6세기 한반도 남부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신라나 백제에 복속되어 있지 않은 소국들의 총칭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대가야를 중심으로 파악되는 5~6세기의 가야연맹을, 왜에서는 무슨 이유에선가 임나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김태식, 미완의 문명700년 가야사1

 

일본서기에서는 가야=임나이고 임나는 한반도 남부라는 얘기죠. 이는 마치 메이지 시대 일본국 참모본부와 같은 동일한 인식을 가진 것입니다.

 

일본서기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자는 한국 강단사학자들

 

가야=임나라고 보는 사람들인데 이들을 보세요. 일본서기의 내용대로 역사를 바라보자. 이 말은 무엇이냐 하면 일본서기의 내용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분국으로 보면 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전부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12,000억 대한민국세금을 가지고 매국하는 일에 쓰고 있는 거예요.

 

1962년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가 왜곡해서 쓴 기문반파국의 주장한 대로 남원을 기문으로 쓰자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남원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일시적으로 제동이 걸린 것입니다.

최재석 교수, 임나=가야설 비판

필자가 아무리 읽어도 일본서기에서 가야와 미나나(임나)가 동일한 나라라는 기사를 찾지 못하였으며, 또한 가야는 물론이려니와 이른바 임나가 일본부의 지배를 받았다는 기사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야와 임나가 동일국이라는 주장은 일본인 학자들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왜곡주장은 삼국사기가 조작·전설이라고 하는 주장과 함께 한국사학계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학계의 통설 내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병도·김정학·이기동·김현구처럼 가야와 임나가 동일하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러한 공언은 하지 않더라도 양자가 동일하다는 전제로 논리를 전개시키는 사람도 있다. -최재석,임나 왜곡사 비판, [통일신라·발해와 일본의 관계]

 

최재석 교수는 고대 한일관계사 논문 300, 학술 저서 30권을 보유한 고대 한일관계사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학자예요. 그런데 이분은 삼국사기, 일본서기원문을 한문으로 다 외운 분이에요. 그러니까 최재석 교수가 보아도 가야가 임나라는 기사가 안 보인다는 겁니다.

 

독도,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일본 땅으로 패배 확실

 

가야사가 일본 극우파와 국내 강단사학자들의 주장대로 일본서기의 내용대로 남원을 기문국으로 합천을 다라국으로 하게 되면 가야사의 문제만이 아닌 역사 전반의 문제가 된다는 심각함을 우리는 빨리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례로 독도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리는 패배가 확실합니다. 왜 패배하냐 하면 제1차 사료로는 물론 우리가 이깁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관들이 언제 한국 사료 공부해가지고 독도가 한국 것인지 일본 것인지 판정하겠습니까? 바로 한국과 일본의 독도 전문가들의 견해가 판단의 근거가 될 게 확실합니다.

 

일본 극우파들이 엄청나게 뿌려놓은 자금을 받고 영혼을 팔아먹은독도는 일본 땅이다라고 씌어진 수백 편의 논문은 수북이 쌓여 있어요. 독도 연구자 거개가 사실상 일본 땅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한국의 어느 쓰리스타(三星) 해군 제독은 실제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합니다.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을 많이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예전에 경상북도 공무원 초청 강연을 갔는데 제 바로 앞에 강연한 분이 서울대 법대의 정 모 교수인데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했는가 봐요. 그래서 주최관계자들을 불러서 아니 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사람을 불러다 초청 강연을 하느냐고 면박을 주니까 죄송합니다.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라며 한국에서는 당연히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할 것으로 생각하고 초청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현구 서울대교수초청 강연 들은 대학생들, “독도가 일본 땅일 수도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냐 하면 저하고 재판했던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가 우당 이회영 선생기념사업회 초청강연을 갔어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나 사회자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임나일본부로 박사학위를 받고 왔다며 임나일본부 뿌리부터 뽑은 분입니다라고 소개했는데 김현구 명예교수 강의를 듣고 있던 청중 한 분이 뭐가 이상한지 질문을 했습니다. “독도가 한국땅 입니까? 일본땅 입니까?”라고 물었죠. 그러면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한결같이 간단히 대답하겠죠.

 

그런데 김현구 명예교수가 답하기를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부분은 답변할 수 없습니다라더니 제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인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서울대 법대 교수를 모셔다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초청 강연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강연 들은 학생들이 독도가 일본 땅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답변을 했습니다라고 말을 했답니다.

 

김현구는 식민사학자다주장식민사학자써도 무죄대법원판례 만들어

 

제가 이런 얘기는 잘하지 않습니다마는 여기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제2의 역사광복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동지의 입장이라서 하겠습니다.

 

김현구는 식민사학자라고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저서에서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김현구 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저를 고소했습니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3단독 나상훈 판사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과 3심이었던 대법원판결에서 명예훼손 혐의 무죄판결을 받고 나왔습니다마는 혹시나 제가 실형을 선고받았다면 캐나다로 망명을 갔을 겁니다. 그래서 캐나다 쪽에 알아봤지요. 역사학자가 저서를 써가지고 실형선고를 받았다면 그냥 편도 티켓만 끊어 가지고 오시라고 하더군요.

 

만약 제가 캐나다에 망명했다면 온라인으로 식민사학과 사생결단을 했을 터인데 다행히 2심에서 뒤집어지고 최종심 대법원에서 판례까지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지금 감옥에 가 있던지 아무튼 제가 고소·고발되어 있는 건수가 100여 가지는 넘을 거예요.

 

329년에 임나일본부? 고작 서기 670년에야 일본이란 이름 생겨

 

10여 년 전에 언론에 뭐가 나왔느냐 하면 한국사학자들이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한 것처럼 나왔어요. 그것은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를 안 쓰기로 했다고 하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임나일본부라는 용어가 성립될 수 없는 게 임나일본부설의 요체는 서기 369년부터 562년까지 야마토 가 가야를 점령하고 임나일본부를 세웠다는 것인데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은 670년에 처음으로 생겨요. 그러니까 임나일본부라는 말을 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공9년이면 서기209년인데 여기다 자기들 마음대로 120년을 플러스해가지고 329년 이렇게 쓴 거예요.

 

신공왕후 9년에 신라왕이 동쪽에 일본이라는 신국이 있다는데따위의 일본서기는 다 거짓말인 거지요. 일본이라는 국호는 670년에 생겼는데 서기 329년에 일본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코메디죠. 어떻게 329(자기들 맘대로 120년 더하기한 년도)년에 신라왕이 5~600년 뒤에 생길 나라 이름을 미리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임나일본부라는 말을 쓸 수가 없죠. 그래서 한일 식민사학자들이 모여서 임나일본부설을 쓰지 않기로 합의를 한 거예요. 그것을 마치 임나일본부설을 해체한 것처럼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겁니다. 그 이후로 임나일본부에서 일본부를 빼고 임나는 가야다이렇게 쓰는 거예요.

 

고구려 2만 대군 꺾은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 에 충성?

 

여기서 보자면 삼국사기는 짤막하고 간결하게 쓰인 사서이고 일본서기는 기년을 1,000년이나 앞당겨 쓴 사서예요. 거기에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무령왕의 지석이 나왔는데 52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1차 사료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데 삼국사기는 중세에 쓰여 못 믿고 일본서기는 고대에 쓰여 믿을 수 있다는 황당한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백제 근초고왕 때를 단면시대로 떼어 양 고서를 비교해 보자면, 일본서기이에 백제왕 초고(肖古)가 야먀토 왜에서 온 천웅장언과 고사산(古沙山)에 올라서 함께 반석 위에 거했는데, 이때 백제왕이 맹세해서, “만약 풀을 펴고 앉으면 불에 탈까 두렵고, 또 나무를 취해 앉으면 물에 떠내려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반석 위에 거해서 맹세하는 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이에 지금 이후로는 천추만세까지 끊어짐이 없고, 다함이 없이 항상 서번이라고 칭하면서 춘추로 조공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일본서기》 〈신공49〉〕」

 

삼국사기에서는 24(369) 가을 9월에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이끌고 오자 왕이 태자를 보내서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을 사로잡아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1월에 한수(漢水) 남쪽에서 군사를 크게 사열하였는데, 깃발은 모두 누런색을 썼다. ……양 고서를 비교해 보면 고구려 2만 대군을 꺾은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 왜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이 될까요?

 

임나를 경남·, 충남·전남까지 지명 비정한 국사편찬위

 

아유카이 후사노신은 방대한 문헌고증을 통하여 임나의 지명 비정 범위를 경남·경북 및 충남·전남까지 확장시켜서, 임나는 경주지방 부근과 부여·공주 일대를 제외한 한반도 남부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서기에 왜의 한반도 내 지배영역이었다고 상정된 임나의 범위를 넓혀 잡기 위해 그가 문헌 비교 및 언어학적 추단을 거듭함으로써 얻어진 연구 결과였다고 여겨진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7, 삼국의 정치와 사회III-신라·가야-명성황후 시해한 야쿠자에게 바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헌사

 

친일반민족행위자명단에 죄질 나쁜 이병도·신석호 빠져

 

한국의 국고로 운영되는 국사편찬위원회란 어떤 곳인가요? 우리나라 식민사학계의 두 태두가 이병도·신석호가 아닌가. 그런데 예전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가 고려대 강만길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었죠. 그런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인사 명단에 이병도·신석호가 빠졌어요. 역사학자로는 이능화 씨만 들어 있었죠. 그래서인지 어느 기자한테서 저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의 친일인사 명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요. 그래서 제가 역사 분야만 보면 이능화 씨만 들어갔던데 아마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다고 명단에 들어갔다면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사람들을 명단에 다 집어넣든지 해야지. 이병도·신석호도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사람들이죠. 그중에서 일부만 선별해서 넣으려면 죄질이 나쁜 사람만 선별해서 이병도·신석호도 넣었어야죠. 그런데 이 두 식민사학의 태두인 이병도는 서울대 출신들이 교수여서 보호한다고 빠지고, 신석호는 고려대와 성균관대교수 였고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도 재직해서 보호하려고 또 빠지고이능화 씨는 뭐냐하면 식민사학자도 아니에요. 조선여성고, 조선무속고등만 썼어요.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하니까 그 기자가 잘 몰랐습니다그래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이병도·신석호를 포함시키자고 하니까 강만길 위원장을 비롯해서 역사학과 출신 위원들이 이병도·신석호를 집어넣으면 우리 모두 사퇴한다고 난리를 쳐서 빠졌다고 하더군요. 이 식민사학자들이란 게 얼마나 똘똘 뭉쳐있고 뻔뻔한지를 여러분들도 운동하다 보면 절실하게 느낄 거예요. 누가 한 얘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식민사학자들은 그런데요. “이덕일이는 근·현대사로 보면 우리와 같은 시각인데 고대사로 가면 다르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 얘기는 근·현대사는 진보적으로 같은데 고대사로 보자면 그쪽은 일본총독부사관인데 같을 수가 있겠어요?

 

단재 신채호는 3자로 말하면 또라이”, 4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니

 

한국학진흥연구원에 한국진흥사업단이라고 있는데 여긴 국고를 년150~200억대를 떼어가는 조직인데 그 조직의 단장이 공식적인 역사 학술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를 3자로 말하면 또라이’, 4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말했어요. 그 자리에서 한 사람도 말도 못 했대요. 이게 과연 나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그 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저에게 알려준 거예요. 결국 한국이니까 그런 사람이 밥도 잘 먹고 잘살지 과연 프랑스같은 나라에서 그런 위대한 민족주의 사학자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면 그 사람 어떻게 되었겠어요? 못살고 당장 패가망신은 시간문제이겠지요.

 

어차피 역사의 문제도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해결의 뿌리는 정치의 몫이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자유당 정권 때 극좌계열과 극우인 한독당을 모두 없애버리고 결국은 자유당의 후신인 국민의 힘과 자유당에서 갈라져 나온 친일지주정당인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이 여야를 번갈아 가며 나라를 이끌어가니 불쌍한 국민들만 죽어라 촛불을 흔들어 봐야 작금의 정치 현실인 진흙탕 싸움이 되는 겁니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민족주의 쪽으로 밭갈이를 조금 해두었는데 지금 가야사 문제를 보면 도로아미타불인 셈이죠.

 

일본의 사학자 나이토 토라지오의 고백

 

원래 아방(我邦:일본)의 고대사 연구가는 일본서기의 기년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유력한 방증(傍證)으로서 조선고사(朝鮮古史: 삼국사기, 삼국유사,동국통감등 한국기록)의 기년을 참고하고 더욱이 그 기사의 내용까지도 조선고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마니시 류(今西龍) 박사가 양국 고사(古史)의 근본적 연구 및 삼국사기가 인용한 지나사적(중국 사료) 등의 연구로부터 종래 연구법을 일변하여 일본 고사(일본서기·고사기에 실려있는 사실(史實)에 무게를 두게 되었다(나이토 도라지로, 이마니시 류의 百濟史硏究 () -일본인들도 안믿던 일본서기를 이마니시 류가 사실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고 실토

 

 

반일주의 넘어 우리 민족이 건너가 세운 후손국과 화해를

 

저는 반일주의자가 아니에요. 일본에서 연구재단을 갖고 있는 재일교포2세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저와 대화를 해보더니 반일 좌파 민족주의라고 들었는데 그런 분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일본은 우리의 선조들이 들어가서 세운 나라인데 왜 싫어합니까?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얘기를 부정합니까? 미국인들이 영국에서 건너갔다는 것을 부정합니까? 그냥 인정하면 다 풀리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아베식으로 나가면 지금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일본은 동아시아의 변방국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일본이 지금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할 수 있는 구조인데, 지금 일본이 과거와 같습니까? 100여 년 전에는 일본만 근대화되어 있어서 일본이 무장결심을 하게 되면 다 침범이 먹혀들어 갔다지만 지금 무장해서 한국을 먹을 수 있나요? 북한을 먹을 수 있나요? 중국을 먹을 수 있나요? 먹지는 못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하고 전부 원수가 되어 가지고 다시 변방국가로 전락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바입니다.

 

지금 일본이 할 일은 제국주의 침탈에 대한 진솔한 반성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세요. 우리도 더 이상 돈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일본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바랄 뿐입니다. 독일은 메르켈총리가 재임 기간 이스라엘을 수십 번 방문했다고 그러잖아요. 아무튼 제국주의 시절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만이 한-일관계가 풀리고 좋아집니다 라고 했더니 그분은 제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합니다 라고 해서 올 5월달에 학술대회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제일교포2세는 교포들 대상이 아니라 일본인 원로정치인들을 상대로 한다는 거예요. 일본측에선 도쿄대 명예교수가 나가고 한국에선 제가 나가서 발제를 하기로 했었고요. 학술대회의 비용은 일본 측은 일본이 알아서 하고 한국 측은 우리가 다 부담하기로 해서 대등한 관계로 한-일의 화해는 역사의 화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선결 조건은 2가지임을 주장했습니다. 첫째, 일본 측에서는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의 선조가 일본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는 제국주의 시절에 피해를 입혔던 피해들을 진솔하게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조건을 인정하면 화해는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것입니다. 일본의 극우와 중국의 동북공정 역사학자들 그리고 남한의 역사학자들 이들이 바로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로막는 핵심주범들이에요.

 

(취재 후담)

장장 2시간여에 걸친 이덕일 교수 초청 시민 역사특강이 끝나자 더불어민주당 청년명예 석성민 국회의원은 식민사관의 심각성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현실정치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주고있는 진행형 사건인 줄은 몰랐다미래에는 더욱 역사 공부에 매진하지 않으면 국가지도자의 자격에서 탈락될 수밖에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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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호 / 민족역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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