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사상과 철학 / 안재휘 기자 / 2024-01-21 18:19:36
<26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의 삶도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다.
-류시화 시인…“왜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각자의 등에 붙어 있는 투명한 스티커를 알아보지 못한 채 성급히 판단하는가?”
-진심으로 듣는 것은 괄호로 묶기. 즉 자신을 제쳐주는 것이므로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문화 자본은 어릴 때부터

 

 

오늘 아침은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류시화 시인의 책,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서 얻은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약속 장소를 향해 서둘러 운전해서 가는데, 앞에 가는 차가 거의 거북이 수준이었다. 경적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를 깜빡여도 속도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려는 찰나, 차 뒤에 부착된 작은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장애인 운전자입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남자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급함도 사라졌다. 오히려 그 차와 운전자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약속 장소에 몇 분 늦게 도착하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두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좌석 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근처에 있는 두 아이의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쳐다보면 다정한 미소를 짓고, 그러면 아이들은 다시 장난을 치느라 바쁘고, 남자는 계속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곤 했다. 다른 승객들은 아이들의 장난기에 화가 나고, 아이들 아버지의 태도에도 짜증이 났다.

 

밤이었기에 때문에 다들 쉬고 싶었다. 보다 못한 한 사람이 남자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대체 어떤 아버지이길래. 아이들이 이토록 버릇없이 행동하고 있는데 제지하기는커녕 미소로 부추기고 있군요, 아이들에게 잘 설명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 아닌가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아내가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어제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중인데, 이제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무리 해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생의 가장자리에 서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전율하며 그 떨림은 우주에 공명한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삶을 경험하고 하였는지, 경험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누구의 삶도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다. 당신의 삶도, 나의 삶도. 80억 명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오늘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영혼이 뼈와 만나는 저 안쪽에서 어떤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저마다의 가슴에는 있다.

 

류시화 시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왜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각자의 등에 붙어 있는 투명한 스티커를 알아보지 못한 채 성급히 판단하는가? 다음과 같은 예들을 들어 주었다. "일자리를 잃었어요." "병과 싸우고 있어요." "이혼의 상처로 아파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 등등.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스티커를 등에 붙인 고독한 전사이다. 그 등은 어떤 책에도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고 다닌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참고' 친절해야 한다.

 

오늘 아침 화두는 '판단 중지"라는 말이다. 스캇 펙(Scott Peck)'괄호로 묶기"라 했다.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 이전에 행동하던 것과 달리 행동하는 것은 모험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괄호로 묶기"라는 훈육이며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확대와 결국에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원리는 좋은 부모가 되는 데에도 필수다.

 

아이들의 말을 잘 듣는 데에도 똑같은 괄호로 묶기로 자신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런 변화에 따른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이고자 용기를 발휘해야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모도 이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 성장하는 아이에게 배울 의사가 없는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노쇠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것은 대개의 삶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이다.

 

종교학에서 말하는, '판단 보류의 영성'라는 말은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 하자'는 것이다.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다. '판단 보류', 나도 이것을 실천하려고 늘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한 데, 잘나면 얼마나 잘났을까. 인간이 한 세상 사는 동안 서로 연민하며 사는 것밖에 없다." (이해인 수녀님)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겸손, 자기의 약점을 항상 자랑할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이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다 비슷비슷하다.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잘 안되지"라며 연민의 정을 갖는 거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낫냐" 며 당당해 하는 거다.

 

그리고 판단 중지하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표현이다. 진심으로 듣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육이다. 나는 '판단 중지'라 말한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 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합일은 실제로 우리 자신을 확장하고 확대하는 것이어야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늘 새로운 지식은 획득된다.

 

더욱이 진심으로 듣는 것은 괄호로 묶기. 즉 자신을 제쳐주는 것이므로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고 듣는 이에게 마음속에 간직했던 것을 개방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2인 춤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괄호로 묶는 훈육과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데에는 에너지가 아주 많이 필요해서 단지 사랑으로, 다시 말해서 서로의 성장을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로만 달성될 수 있다.

 

진심으로 듣는 것은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므로, 결혼생활에서만큼 이것이 적합한 데는 없다. 그러나 가슴을 열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시간과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력을 해야 한다. 진심으로 듣는 능력은 연습을 하면 차츰차츰 향상된다. 그러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사랑이다. 이런 관심의 가장 중요한 표현 방법이 듣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건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말이다. 사랑은 노력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음의 본질은 게으름이다.

우리의 일상 삶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예컨대, 좋은 취향(bon goût, 프랑스어 봉구)과 교양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다. 관심과 경험으로 사는 거다. 돈보다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는 '문화 자본'이라고 한다. 예컨대, 돈 있다고 갑자기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비싼 걸 입는 게 아니라, 자기 스타일과 의복에 대한 교양을 아는 거다. 멋진 차림새는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에 맞게 옷을 입는 거다. 그리고 색의 조화를 잘 맞추어 입는다. 젊을 때 문화 자본을 쌓지 못하면, 부자가 돼도 촌스러움을 버리지 못한다.

 

과거 귀족들이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을 무시한 건 그들 특유의 계급 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졸부들에겐 문화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돈이 많으면 여행을 쉽게 다닐 것 같지만, 여행은 늘 용기와 실행의 문제이다. 부자가 되었다고 원래 그런 게 없던 사람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이 있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문화 자본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많으면, 돈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그리고 인문 운동가는 문제가 있어서 패러다임이 붕괴된 상황을 두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이런 위기가 닥쳤을 때 더 이상 붕괴하지 않는 더 튼튼한 시스템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건너가기'를 감행하는 자이다. 제로 베이스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위기가 기회로 작동되게 하려면, 우선 현 상황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판단하는 것을 중지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판단 중지'라고 한다. 이를 나는 '멍 때리기'라고 한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멍 때릴 필요가 있다는 거다. '멍 때리기'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판단 중지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니 생각을 멈추기 위해, 자기방어 기재로 쓰는 거다. 자기만의 진공 상태를 만드는 거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하기 직전에, 노아의 방주처럼 진공의 배를 만드는 거다. 멍하다는 말은 외국어로 번역이 안 된다.

 

 

괄호처럼/이장욱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내가 거기서 너와 함께 살아온 것 같았다.

텅 빈 눈동자와 비슷하게

열고

닫고

 

저 너머로 달아나는 너를 뒤쫓는 꿈

내 안에서 살해하고 깊이 묻는 꿈

그리고 누가 조용히 커튼을 내린다.

그것은 흡.

내가 삼킬 수 있는 모든 것

 

오늘의 식사를 위해 입을 벌리고

다 씹은 뒤에 그것을 닫고

그 이후 배 속에서 일어나는 일

몸에 창문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한 일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아도

 

길을 걷다가 조금씩 숨이 막힐 것이다.

발을 헛짚어 뚝.

꺼지는 구덩이가 되어

이제 모든 것이 너를 포함할 것이다.

가만히 제 눈꺼풀을 열어보는 사람이 되어

무서운 어둠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너의 모든 것을 품고 싶은 것이다.

커다란 기념 수건으로

잠든 네 입을 꼼꼼히 틀어막는

이 기나긴 시간처럼)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 박한표 교수

<필자 소개>

 

박한표 교수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경희대 겸임교수 )

 

공주사대부고와 공주사대 졸업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석사취득 후 프랑스 국립 파리 10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 문화원 원장대전 와인아카데미 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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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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