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의 시시비비] '존경받는 대통령' 추구하면 망한다

안재휘의 시시비비 / 안재휘 기자 / 2023-10-19 20:01:15
대통령실, ‘경청하는 대통령’ 이미지로 홍보개념 확 바꿔야
‘당당(堂堂)’과 ‘오만(傲慢)’은 일란성 쌍둥이
‘존경받는 대통령’ 아닌 ‘사랑받는 대통령’ 추구해야 성공
현대인들, ‘똑똑한 사람’ 아닌 나와 비슷한 ‘편한 사람’ 좋아해
강서구 선거 김태우 출격은 상궤(常軌) 벗어난 치명적 패착
‘겸양(謙讓)을 인정받는 지도자의 정치는 실패한 적 없다’
'혁신의 기개’ 놓지 말되, ‘오만’ 이미지 서둘러 탈피해야

 

 

계신공구(戒愼恐懼)’중용(中庸) 첫머리에 나오는 이 말은 끊임없이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문은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못한 바를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못한 바를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라(是故君子,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요약하자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첫째도 둘째도 겸양(謙讓)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힌다.

 

강서구 보궐선거 참패로 인해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입방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집권당에 대한 그립(Grip 통제/지배)이 워낙 강한 지도자인 만큼 실패에 대한 원망을 가장 크게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국민의힘을 일러 용산 대통령실의 출장소라고 손가락질하는 비아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봉숭아학당으로 불리며 놀림감이 된 지도 오래다.

 

강서구에서 김태우는 왕의 남자라고 떠들어댄 것은 형편없는 바보짓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생명 연장과 권력 쟁취에만 함몰된 정치꾼문화에 찌든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형편이고 보면,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하나를 놓고 윤 대통령만을 저격하는 건 야박한 비평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서구 보선에 김태우를 굳이 세운 배경이 대통령실이라고 알려진 바에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홍역이다. 정치가 제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내놓는 궤변의 산물이어도 상식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새겨야 한다.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대법원판결의 하자를 명분으로 걸고 김태우를 다시 내세운 것은 상궤를 넘어선 패착이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선거운동을 온통 김태우는 왕의 남자라고 떠들어대면서 했으니 유권자들의 심기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 형편없는 바보짓이었던 셈이다. 강서구 유권자들의 투표행태 속에 윤석열 정권이 곱새겨야 할 귀한 교훈이 들어있다. 현대사회에서 국민은 왕의 남자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여당 국회의원들, 야당이 총을 쏘면 대통령에게 날아가는 총알 구경만 해

 

물론 나라의 미래걱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하는 정치행태가 이 나라 정치문제의 핵심인 건 맞다. 불법 비리 부정 의혹 백화점이 되다시피 한 일그러진 영웅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폭풍 속에서 정신 못 차리고 초라한 방탄 정당으로 추락한 더불어민주당 쪽이 먼저 그렇다. 하지만 복지안동(伏地眼動 엎드려 눈알만 굴리는)의 자세로 총선에서 공천받을 궁리에만 갇힌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소인배적 동태도 전혀 다르지 않다.

 

굳이 비유하자면, 작금의 여당 행태는 야당이나 재야 진보세력 누군가가 탕하고 총을 쏘면 그 앞을 막아서는 여권 인사는 아무도 없고, 총알이 곧바로 윤 대통령에게 날아가도록 두는 형국이다. 물론 대통령실의 자업자득이다. 여당 정치인들은 총알 구경이나 하는 꼴이니 바라보는 국민은 늘 아슬아슬하다. 당의 파상공세로 형성된 검찰 공화국’, ‘검찰 독재라는 선동을 반격할 논리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의 모습은 참 딱하다.

 

나서서 제아무리 똑똑한 소리를 해봤자, 유권자에겐 불쾌한 기분만 남겨

 

이 시점에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정확하게 해야 할 일은 존경받는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는 착각을 버리는 일이다. 개인 개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편안한 사람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대중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여 제아무리 똑똑한 소리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앞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박수를 보내지만, 돌아서면 마음속으로 되게 잘난 척하네!” 하는 불쾌한 기분만 남긴다.

 

 

대중의 이런 변화는 해묵은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 보수 텃밭에서 변변한 공약 하나 내놓지 않고, 선거운동 기간 내내 그저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절만 열심히 해댄 민주당 후보가 광역단체장에 당선된 사례는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장을 찾아가 악수만 하고 돌아다니는 캠페인이 아니라, 장바닥에 엉덩이 내려놓고 함께 앉아서 장사꾼들의 푸념만 줄창 들어준 총선후보가 선거결과 넉넉하게 당선된 사례도 있다.

 

행사장서 늘어놓는 금과옥조 같은 말씀, ‘오만(傲慢) 이미지만 쌓아

 

윤석열 대통령은 결코 오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매사에 진정성이 가득하고, 열정은 황소 같고, 기성 정치인들처럼 음흉한 구석도 없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부지불식간에 쌓이고 있는 오만(傲慢)한 이미지. 연일 행사장에 참석해 목에 힘주고 늘어놓는 금과옥조 같은 말씀들만 나오는 뉴스가 겸허(謙虛)’ 이미지를 시나브로 갉아먹고 있다.

 

학창 시절 윤 대통령의 논문 지도교수로 유명한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한 충고에 답이 있다. 송 교수는 늘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라고 조언한다고 밝혔다. 그는 겸손하고 포용하면 사람들, 특히 중도파가 대통령과 현 정부를 알아주고 따라올 것이다. 정치적 쟁점 때문에 견해를 달리하시는 분도 많겠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면 더 많은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국민 자주 만나되 머리아닌 가슴으로 만나 감동 일으키는 자세 중요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정신과 의사인 K 박사도 들어라. 그리고 져주라는 고언을 내놨다는 소문이 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경계 없이 오만에 빠지기에 십상인 자리. 모든 정보가 책상에 올라오고, 부려서 움직여줄 막강한 손발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을 가장 많이 알고, 세상을 가장 힘있게 움직일 수 있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신만만한 언행을 늘릴수록 지지율은 떨어지는 얄궂은 역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실은 대국민 메시지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어디에 가서 무슨 훈화 지시를 하셨는지를 시시콜콜 알리는 게 홍보의 핵심이 아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무슨 말을 들었고, 어떤 공감을 나눴는지를 중점적으로 홍보하는 게 훨씬 더 이롭다. 소통은 척하는쇼를 벌이며 인심 쓰듯 사진이나 찍어주는 이벤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는것이다. 국민을 만나되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는 감동적 자세가 중요하다.

 

당당오만은 일란성 쌍둥이당당오만으로 비치는 것은 순식간

 

현대정치에서 존경받으려고 하는정치는 망한다. 겸허한 자세로 사랑받는지도자만 살아남는다. 지식과 정보에서 대중의 수준은 최상급으로 치달아 있다. 정치지도자들과 대중의 차이가 별로 없다. 답은 분명하다. 정치에서 성공하려면 사랑받기 위해노력해야 한다. 존경받으려고 잘난 체하고 으스대는 정치는 무조건 실패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필하는 대통령실의 참모들은 개념부터 확실히 바꿔야 한다.

 

예로부터 백성들로부터 겸양(謙讓)을 인정받는 지도자의 정치는 실패한 적이 없다. 지도자의 겸손은 필경 민초들의 사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당(堂堂)’오만(傲慢)’은 일란성 쌍둥이다. ‘당당오만으로 둔갑해 비치는 것은 순식간이다. 절대다수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불복(不服)’ 심리에 기인하는 한없는 발목잡기티 뜯기행태가 고약한 악어 늪이 되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직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 ‘혁신의 기개’는 절대로 놓지 말되, 계신공구(戒愼恐懼)’의 교훈에서 그 열쇠를 찾아서 덧씌워진 오만(傲慢)’ 이미지를 하루빨리 벗겨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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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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