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병환] 이것이야말로 가스라이팅이다

기고 / 안재휘 기자 / 2021-08-24 23:26:41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북한에서 누군가 한마디 하면 경청하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북한이 더 이상 가스라이팅을 시도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그간 진행된 가스라이팅을 하루바삐 척결하는 것이 긴요하다.

 

 

김준형 전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3월 출간한 저서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에 중독되어 왔다.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 현상과 닮았다라며 미군 철수는 한반도 평화 체제의 구축 과정이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심리에 오랜 기간 교묘하게 영향을 주어 상대방을 종속 또는 의존케 만들어 상대방을 통제 또는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북한은 금년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취소를 요구하고 나아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였다. 북한은 배신’, ‘안보 위기등 표현을 사용하며 거의 협박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여권으로부터 이러한 북한의 주장 또는 입장에 대해 호응하는 언행이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가스라이팅의 결과 아닌가?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일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요구하고 10일에는 미군 주둔 자체를 비난하며 철수를 주장하였다. 11일에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전쟁 연습운운하면서 안보 위기를 거론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주장에 대해 2일 통일부 대변인은 훈련으로 긴장이 조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3일 국정원장은 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이 상응 조치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5일에는 범여권 의원 70여 명이 북한이 평화협상에 나올 것을 전제로, 훈련 연기를 검토해달라며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또한,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내정자는 한미연합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 훈련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을 북한에 알려야 한다라고 했고,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직을 맡고 있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본 훈련을 취소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결국, 금년에도 한미연합훈련은 야외 기동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도상훈련으로 치러졌고, 훈련 참가 인원도 대폭 축소되어 과연 이것도 훈련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연합훈련 말고도 북한의 말에 따라 우리 정부가 행동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206월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우리에게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요구하자 통일부는 불과 4시간 지나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청해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민주당은 김여정 하명법논란 속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대북 전단 금지)을 추진하였다. 지난 5월에는 김여정이 탈북민들의 전단 살포를 통제하지 않은 남조선 당국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하자 경찰청장은 바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반응에 따라 외교안보 부처 장관이 바뀌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작년 6월 김여정의 예고대로 북한이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이튿날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겠다라며 떠밀리듯 사의를 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5년 임기를 함께할 것으로 보였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김여정 데스노트에 이름이 오른 지 한 달 만에 교체됐다. 그리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작년 6월 김영철 당시 당중앙위 부위원장의 비난 담화 2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물론 이러한 장관 교체가 북한의 말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많은 사람이 개운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남한의 정치인과 고위관리들이 북한의 눈치를 보는 지경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이 가스라이팅이라는 생소한 표현을 썼는데 쉬운 우리말로 하면 길들이기이다. 한미 관계에서 그간 사안에 따라 일방통행식 소통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남북관계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는가? 그가 말하는 가스라이팅은 그간 북한에 의해 소위 진보정권을 상대로 진행되어 온 것 아닌가? 현 정부가 북한에 대해 과도하게 저자세를 취하고 있음은 우리나라에서 주지의 사실이며, 국제사회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북한에서 누군가 한마디 하면 경청하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무시하거나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호응하는 현상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무엇보다도 가스라이팅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북한의 남한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북한이라는 적 앞에서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북한이 주장하는우리 민족끼리는 한국 사회의 감상적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한국 사회가 북한의 적화 기도에 대해 무감각해지도록 만들려는 고도의 술수이다. 가스라이팅으로 설명해야 할 것은 결코 한미 관계가 아니고 남북한 관계이다. 북한이 남북한 기본합의서가 규정한 대로 민족공동체 의식을 갖고, 평화적 통일을 향하여, 남북한 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게 하려면 우리 정부와 사회가 북한이 더 이상 가스라이팅을 시도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그간 진행된 가스라이팅을 하루바삐 척결하는 것이 긴요하다.


<필자 소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주러시아 대사관 경제공사 등 4차례에 걸쳐 11년 간 러시아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외교관이다현재는 각종 매체에 한·러 관계와 러시아에 관해 기고하고 있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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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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