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중국에는 불로장생하여 신선이 되는 이론이 많았다. 첫째는 호흡이나 수련을 통하여 내공을 쌓는 방법이요, 둘째는 신비한 약초나 영단을 복용하는 비법이요, 마지막으로는 남녀의 교접을 통하여 하늘과 땅의 기운을 흡수하는 방중술의 묘책이다.
굴무는 이 중 방중술의 신봉자였다. 그가 중점적으로 연구한 서책이 팽조가 썼다는 《채녀경(采女經)》이다. 팽조는 전설 속 인물로서 956년을 살았는데, 늙어서도 초롱초롱 눈빛이 맑았고 안색은 어린아이처럼 홍조를 띠었다고 한다. 700살 되던 해에 드디어 채녀(采女)라는 평생의 짝을 만나 진정한 남녀의 교접을 시연하게 되었다. 채녀는 ‘나물 캐는 여인’이란 말이니 아마도 둘은 어느 봄 들판에서 만났을 것이다. 나물 바구니를 끼고 들에 나온 여인이야말로 수시로 불뚝불뚝 정욕이 솟구치는 사내들의 로망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나물 캐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이런 구절이 있다.
경녀는 고사리를 캐는데 경녀채미 (驚女菜薇)
사슴이 어떻게 돕는가? 녹하우 (鹿何祐)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이 시에서 고사리 캐는 여인의 주변을 감싸고 도는 사슴은 사내를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예절’이라는 족쇄를 채우기 전에 남녀의 사랑은 밭 갈고 씨 뿌리듯, 들판에서, 논밭 고랑에서, 솔숲에서, 또는 낟가리 위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기에, 그 시절의 남녀는 서로 눈이 맞았다 하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흘레붙듯 서둘러 몸을 섞었다. 그 후 채녀도 256세까지 살다가 둘은 한날한시에 죽었다. 팽조가 채녀와 함께 나눈 다양한 남녀관계의 방법과 체위를 기록한 책이 《채녀경(采女經 나물 캐는 여인의 가르침)》이다.
오래전에 굴무가 진(陳)에 사신으로 갔다가 먼발치에서 하희를 본 적이 있었다. 절색의 미모에다 특별한 신체의 소유자라는 말을 듣고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던 터라 얼씨구나 하고 나섰다.
“신하 된 몸으로 군주를 시해하였다니 참으로 난신적자라 할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 남방을 일러 오랑캐라 하지만 이런 걸 보면 오히려 중원 쪽이 막돼먹은 오랑캐입니다. 즉시 출병하여 군주 시해 사건을 바로 잡고 천하의 기강을 바로 세우셔야 합니다.”
왕으로서도 근래 진(陳)나라가 북쪽의 진(晋)과 가깝게 지내는 게 고깝던 차였다. 차제에 굴무를 대장으로 삼고 문책성 정벌에 나섰다. 먼저 격문부터 보냈다.
“하징서라는 난신적자가 군주를 시해하였다. 이는 공영과 의행보, 두 대부가 증언하고 있다. 벌은 오로지 죄지은 자만이 받을 것이니, 진(陣)의 군사와 백성들은 길을 열어라.”
진(陳)은 황하와 장강 사이에 위치하여 남만의 강국 초(楚)의 군사력과 잔인함을 두려워했다. 누구 하나 목숨 바쳐 초군을 막으려는 사람이 없어 불과 며칠 만에 도성까지 함락되었다. 붙잡힌 하희가 초장왕 앞에 끌려왔다. 하희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기가 꺾이지도 않았다.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자세로 모로 앉아, 사람들의 곁눈질을 받아내고 있었다. 넓은 조당에 번지는 야릇한 여인의 체취에,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느라 코를 실룩이며 헛기침을 해댔다.
“발칙한 년! 어느 안전이라고 고개를 쳐들고 핼끔거리느냐? 당장 꿇지 못할까?”
“천첩의 목숨은 오로지 대왕에게 달려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노비로나마 거두어주시면 망극하겠나이다.”
붉은 입술 사이로 뱉어지는 여인의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리드미컬하였다. 초장왕도 대번에 그 진가를 알아보았다.
“영도에 비빈이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이만한 여자를 못 보았다. 이제라도 내가 데려가야겠다.”
굴무가 다급하게 말했다.
“이번에 대왕께서 진(陳)을 정벌하신 것은 천하에 기강을 바로 세우시기 위함인데, 이제 계집을 취하시게 되면 오해를 부르게 됩니다.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절대 군주의 여자 욕심을 대놓고 말리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굴무가 오늘 급하긴 급했나 보다. 순간 왕의 얼굴이 잠시 상기되었다. 다행히 왕은 할아버지 초문왕이 여인에게 빠져 중원 패권의 야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비사를 떠올리면서 표정을 풀었다. 왕에게는 ‘군림 천하’라는 필생의 과업이 있다.
“신공의 말이 옳다. 그렇다고 죽이기도 아까운 일이니, 차라리 친정으로 돌려보내라.”
이때 연윤(連尹, 궁노수를 지휘하는 장수) 벼슬에 있는 양노(襄老)가 벌떡 일어났다. 육십이 넘은 나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왕을 닮은 외모에다 기개가 있었다.
“신이 얼마 전 상처를 했나이다. 그녀를 신에게 내려주시면 아내로 삼겠습니다.”
“그래? 그것도 좋겠구나. 그렇게 하라!”
굴무가 또 한 번 당황했다. 먼빛에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여인을 또다시 놓치게 생겼다. 그렇다고 대놓고 반대할 명분도 없어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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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제비들 날고 연연우비(燕燕于飛)
오르락내리락하니 힐지항지(頡之頏之)
그녀 시집가는 날 지자우귀(之子于歸)
멀리 나가 전송하고 원우장지(遠于將之)
바라봐도 보이지 않으니 첨망불급(瞻望不及)
우두커니 눈물 흘리다 저입이읍(佇立以泣)
공자의 시경 국풍 중 패풍 편 연연 (燕燕, 제비)
이튿날, 하징서는 5형의 형벌을 받았다. 5형이란 다섯 가지 형벌을 차례로 집행하는 벌이다. 우선 이마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고, 코를 베어버리고, 다음으로 성기를 자르고, 발목조차 잘라버리니 여기까지가 네 가지 형벌이다. 마지막 순서는 요참(腰斬)이다. 말 그대로 허리를 베는 형벌로서 쉽게 숨이 끊어지지 않고 더없는 고통을 느끼면서 죽는 극형이다. 열국의 군주는 왕을 시해한 신하에게는 관용이 없었다. 신분제로 왕위를 이어받은 군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바로 ‘하극상의 모반’이다. 모반은 또 다른 모반을 낳기에,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두려워하고 가차 없이 응징하는 것이다.
초장왕은 당초 공언한 대로 진(陳)의 사직을 보전해주고 군사를 단속하여 백성을 다치지 않게 하였다. 소와 말을 잡고 창고를 열어 주린 백성까지 구휼하였다. 남의 창고 물건으로 선심을 쓴 셈인데 백성들은 성 밖까지 몰려나와 눈물로 전송하였다. 공영과 의행보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불과 몇 달 후 멀쩡하던 공영이 하룻밤 사이 피를 토하고 죽더니 며칠 후에는 의행보도 친구를 따라 죽었다. 진성공이 암암리에 이 둘을 정리한 것이다.
하희의 남편이 된 양노는 1년이 채 못 되어 황하와 장강이 또 한 번 격돌한 필(邲) 땅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며칠이라도 남자 없이 못 견디는 하희는 그동안을 참지 못하고 양노의 아들 흑요(黑要)와 살을 섞었다. 흑요는 이름 그대로 피부가 새까매서 하희에게 새로운 기분을 선사하였다. 양노는 필 땅에서 전사하였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비의 시신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하희의 치마 속만 찾았다. 소문은 패륜아 흑요보다 오히려 하희를 요물이라고 욕했다. 마흔이 가까운 하희는 겉보기에는 갓 스무 살로 보였다. 사람들이 요물이라고 부를 만도 했다. 어지간한 하희도 부끄러운 평판을 견디기 어려웠다. 여인의 매력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게 어째서 죄가 되는 것일까? 이래저래 사람들의 구설수가 싫어진 그녀는 친정인 정(鄭)나라로 내뺄 궁리를 하였다. 원래 하희는 정나라 공주 출신이다.
이런 사정을 먼저 알아챈 굴무가 사람을 시켜 소식을 전했다.
“굴 대부께서 마님을 매우 사랑하고 있습니다. 정(鄭)나라로 가기만 하면 바로 뒤쫓아 가시겠답니다.”
하희도 굴무의 은근한 눈빛을 내심 짐작하고 있던 터라 곧바로 정나라로 달아났다. 뒤에 남은 굴무는 한시가 조급하고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남자 없이는 단 며칠도 견디기 어려운 하희가 새서방이라도 만들게 되면 또 한 번 남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 앞뒤 가릴 새도 없이 짐을 정리하여 여자를 따라나섰다. 실로 가문의 명예와 평생의 족적(足跡)을 모두 버린 절절한 선택이었다.
여전히 하희는 봄의 신록같이 여리고 싱싱했다. 세월의 힘도 그녀를 어쩌지는 못했다. 풋풋한 아름다움일 수야 없겠으나 대신 찰지고 농염한 매력이 더했다. 굴무는 곧 바로 정나라 임금 정양공에게 하희와 결혼을 청원했다. 《춘추》의 해설서 《춘추좌전》에서는 이들의 도피행각을 상중지희(桑中之喜, 뽕나무밭 사이의 기쁨)라고 했다. 잎이 부드럽고 울창한 뽕나무숲은 예로부터 남녀가 밀회를 즐기는 좋은 장소가 된다.
굴무는 이제야 그토록 꿈에 그리던 하희를 품에 안았다. 생각해보면 ‘죽도록 사랑하자!’의 의미는 죽자는 게 아니고 사랑하자는 이야기이다. 생애를 통틀어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떳떳함이 있다. 굴무는 그 목표가 팽조의 《채녀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한 이불에 들자 곧바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아! 이 사람이었구나! 이제야 만났다.”
어느 순간, 하희의 몸은 햇살을 받은 황옥이 빛나듯이 아롱거리는 발광체로 변했다. 꽃잎 같은 입술로 쉴 새 없이 교성을 토해내면서 휘영청 허리를 들어 올린다. 까무룩, 까무룩… 헐떡거리기를 거듭거듭 숨이 넘어갔다 다시 돌아온다. 입으로는 쉴새 없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옹아리를 조잘거린다. 사지를 버둥대는 모습이 마치 생의 괴로움을 몸으로 구현하는 듯 절절하였다. 황옥의 반딧불로 변할 때 그녀의 영혼은 구름 위를 노닐었고 여체를 밝히는 빛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며 깜빡거렸다. 어지간한 굴무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희열을 느끼면서,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마음껏 탐닉했다. 그날 이후 남녀는 먼 길을 돌아 이제야 만나게 된 운명이 못내 아쉬운지 열흘간이나 붙어 지냈다.
굴무는 그 후 북방의 강국 진(晋)나라로 망명하였다. 진의 임금 진경공(晉景公)은 적국의 기밀에 밝은 그에게 형(邢) 땅을 식읍으로 내렸다. 그런데 초장왕이 죽고 그 아들 초공왕이 즉위하자, 젊은 왕은 여자에게 빠져 고국을 버리고 망명한 굴무의 일가친척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하희와 정을 통한 흑요도 죽이고 재산도 다 몰수하였다. 관대하던 초장왕에 비하여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굴무는 앙심을 품었다. 이후 그는 장강 하류 강남땅에 터를 잡은 신생국가 오(吳)에게 병거의 운용과 진법을 전수하여 초나라에 대적하게 하였다. 그러고 보면 하희와 굴무의 로맨스는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 남방의 패권 다툼 오초(吳楚)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여인의 사랑에 평생을 바치고 어쩌면 우화등선(羽化登仙,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고 하늘로 올라가다)을 꿈꾸었을 굴무는 팽조의 전설을 본받지는 못하여 진(晉)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관계를 통하여 스스로 젊어지는 신비한 여인, 하희도 세월의 풍파를 온전히 거스르지는 못하여 눈가에 주름이 잡히고 있었다. 굴무가 하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랬다.
“넌 내 꺼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따라와요!”
천생의 몸짝을 잃은 여인은 내리 사흘 밤낮을 울다 스스로 굴무의 묘에 순장되어 죽었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시공간을 건너뛰고 부활하여 수많은 하희들을 세상에 배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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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완 (韓 莞) 작가 |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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