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29화 노림과 꼼수

인문학 / 김백 기자 / 2026-10-14 08:39:00
싸우기 전에 적의 눈과 귀, 보급로부터 끊어라
황하의 천 척 군선, 누군가 노리고 있었다

 

 

요 며칠 새 염탐꾼들이 저마다 전갈을 보내왔다.

“진(晉)이 군사를 움직였나이다.”

“총수는 순림보(旬林補)이며 선곡(先穀)이 부장이라고 합니다.”

“병거 6백 승에 대략 6만입니다.”

“따로 보급부대 3, 4만이 따라붙었습니다.”

“황하에는 전선 천여 척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진(晉)의 선봉이 그제 황하에 도착했습니다.”

적의 동태는 조각조각 부분적인 상황에 불과했고 내용조차 달랐다. 5만이라는 자도 있었고, 6만, 또는 10만이라는 자도 있다. 정보가 저마다 엇갈려 왕은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북방의 강대국 진(晉)의 군대가 두려운 것은, 그들이 성복전쟁처럼 언제라도 천하를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문공 사후 30년이 넘은 지금도 진군(晉軍)의 실력이 변함없을까? 들쭉날쭉한 몇 가지 정보만으로 어떻게 상대의 규모와 사기를 짐작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왕은 심지 굳은 장수급 인물을 적진 후방에 투입해야겠다고 생각을 다졌다. 바야흐로 천하의 눈길은 진초(晉楚)대결의 전장으로 치닫고 있다. 초장왕은 칼자루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

“흐흐흐, 대붕은 한 번 날갯짓으로 구만 리를 난다고 했겠다?”

저녁나절에 왕은 장수들을 불러들였다. 그는 평소 이런 종류의 회합에 인색한 편이었다. 아첨할 생각밖에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보다 침묵의 어둠 속에서 신하들을 지켜보기를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회합은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았고 다소 긴장된 분위기였다. 왕은 알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면서 불쑥 물었다.

“결국 진(晉)의 대군과 맞닥뜨리게 되는구나. 군사를 돌릴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가장 벼슬이 높은 자염백 손숙오가 나섰다. 그는 푸른 수염만 그럴듯해 보이지 왜소한 몸에다 이따금 쑤시는 관절 때문에 걸음걸이조차 어색해 보인다.

“우리가 정(鄭)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면 그래도 진(晉)과 싸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충분히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 그만 군사를 돌리는 것이 순리입니다.”

온건한 손숙오다운 말이었다. 그는 신중하면서도 노련한 전문 관료로서 전쟁이나 전략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못했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대왕의 표정에 순간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뿐, 노련한 왕은 이를 내색하지 않고 다른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이때 구석 자리에서 막사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윤의 말씀은 옳지 못합니다!”

너무나 단정적인 일갈에 좌중이 모두 놀랐다. 말석에 앉은 오삼이란 아장(牙將)이다. 아장은 중랑장에도 못 미치는 평민 출신이다. 오늘 참석한 것도 정보를 담당하는 중간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싸움을 피해 군사를 물린다면 정은 또 배신할 것입니다!”

오삼은 8척 장신에 어깨는 우람하고 몸이 날렵해 사람들이 삽시호(揷翅虎, 날개 달린 호랑이)라고 불렀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장수였지만 전장을 누빈 햇수가 녹록지 않다. 마침 석양빛이 장막 안을 비추는 바람에 활촉에 찢긴 뺨에 상흔이 푸르죽죽하였다. 대신 졸지에 면박을 당한 손숙오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애송이가 있나!”

오삼의 눈에 당황한 빛이 완연했다. 그러나 이 젊은이에게는 호방한 기질이 있다.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내니 이래서야 어디 장수라 하겠소이까?”

오삼의 말본새가 과격하다 못해 핀잔까지 섞였다. 손숙오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와 논쟁을 삼가기로 하고, 대왕에게 바로 말했다.

“우선 적정부터 살피시옵소서.”

오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선 적의 기부터 꺾어놔야 합니다.”

한 마디씩을 내뱉은 둘은 곧 조용해졌다. 새삼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왕의 존재를 깨달은 것이다. 왕이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다. 오삼이라고 했는가? 성급하게 나대지 마라. 생각이 흐트러진다. 모두 물러가라.”

그날 밤이었다. 왕이 오삼을 따로 불렀다.

“네가 싸우기를 주장하는데 무슨 계책이라도 있는 것이냐?”

“소장이 알아본바, 진군(晉軍)의 총수 순림보는 이번에 새로 대장군이 된 사람입니다. 이미 늙어 빠진 퇴물인데다 장졸들에게 신망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장 선곡이란 자는 성복에서 싸운 선씨 가문인데, 그 또한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랍니다.”

“흐음, 그래서?”

“병사가 10만이라고 하나 여러 가문에서 긁어모은 군사들이라 누가 총수가 되더라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은 자신도 모르게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오삼이야말로 적정을 살피는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나이가 많은 총수에 대해서는 왕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이란 비단실 한 가닥으로 돌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과 같다. 바람을 받아 돌이 움직일 때마다 비단실은 끊어질 듯이 흔들린다. 그 끊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얼마만큼의 역할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들어 소심해지면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대를 유격(遊擊)으로 임명한다. 별동대 팔백으로 적의 후방에 침투하라. 날이 밝는 대로 떠나라. 적은 중원의 강자 진(晉)의 대군! 장부가 목숨을 걸기에 부족함이 없는 적수이다. 앞으로 과인에게만 보고하라!”

오삼은 기세 좋게 일어나 두 손을 가슴 앞에 붙이고 군례를 올렸다. 적진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은 이런 큰 싸움터에서는 결국 그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결사의 자리이다. 그래서 불귀군(不歸軍, 돌아오지 못하는 군대)으로도 불린다. 막사를 나가는 어깨에 자랑과 긍지가 있었다. 여인은 본인을 예뻐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 줄을 내려놓는다.

날이 밝자 왕의 본대는 말머리를 필(邲) 땅까지 물렸다. 초장왕는 성복 전쟁 당시 진문공이 ‘삼사(三舍)를 물리겠다’는 술자리 에피소드를 빌미로 함정을 파서 초군을 격파한 사실을 알고 있다. 이제 전장을 택하고, 천하의 역사를 새로 쓸 북채를 쥔 자는 자신이다.

 

 

▲AI 생성 이미지

왕이 전장으로 고른 필(邲)의 들판은 은(殷) 왕조 시절에 산성이 있었던 구릉을 끼고 있다. 지난 세월 영화를 자랑하던 주춧돌 위로 거침없이 한 줄기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곳곳에 들꽃들이 지천으로 널려 하늘거리고 스산한 폐허는 을씨년스럽다. 왕은 잠시 지형을 살피더니 야트막한 언덕 위를 진영으로 삼고, 전방과 양옆으로 통나무 방책을 쳐서 둘렀다.

한편, 이때 진(晋)의 10만 대군은 9월에 강주(絳州)성을 떠나 황하에 이르고 있었다. 원래 7만으로 출정하였다가, 도중에 시양졸(施養卒)을 보강하여 어언 10만의 군세로 자랐다. 과연 총수는 순림보로서 전통 호족 출신이며 부장 선곡은 성복 전쟁에서 활약한 선진의 손자이다. 남방의 오랑캐를 여지없이 까부순 성복전쟁은 중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를 부추겼다. 세상에 흩어진 이야기들은 전장의 전모가 아니라 파편에 불과하였고, 이 파편을 다 모아도 전체 윤곽이 그려지지 않았다. 처참한 죽음과 아우성이 담긴 전쟁의 참사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이다. 이번 출정에 앞서 그는 쾌재를 불렀다.

“흐흐흐, 전쟁이라고! 그것도 초를 상대로! 하늘이 무심치 않아 이 몸에도 기회를 주는구나. 아무렴, 그래야지. 천하의 선곡이 이렇듯 하릴없이 늙어가면 쓰나?”

그럭저럭 진(晉)나라 주력 군사는 황하를 건넌 지 이틀 만에 필(邲)의 들판에 당도했다. 양쪽 군사는 잡목과 비탈이 뒤섞인 개활지를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의 형세로 마주하였다. 서로 상대 진영의 위치를 가늠할 수는 있으나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는 거리였다.

순림보는 병거의 수레들을 방책 대신 전방에 배열하고, 그 사이를 녹각과 통나무로 빈틈없이 채웠다. 6백 승의 푸르고 붉고 누렇게 화려한 병거가 두 겹으로 늘어서서 전방을 향하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진영을 배치하고 상대를 탐색하는 데만 꼬빡 이틀이 걸렸다. 그 시각 초나라 진영에서 채구(蔡鳩)가 사자로 왔다. 채구는 훤칠한 키에 끝이 휘어 위로 솟구친 용의 수염을 길렀는데, 늘 웃는 얼굴인데다 ‘좋지, 좋아!’라는 말을 달고 다녀 호호(好好)선생, 또는 소면룡(笑面龍, 미소 짓는 용)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총수 순림보에게 왕의 친서를 올렸다.

“과인의 군대는 굳이 싸울 맘이 없다. 진(晉)은 북방의 패자, 그에 비해 과인의 초는 남쪽 한동(漢東)에 있다. 가히 풍마우불상급(風馬牛不相及)이라고 할 것이다.”

이때의 풍(豊)은 암수가 서로 부르는 소리로 해석한다. 곧 암수 우마가 불러도 닿지 않을 정도로, ‘서로 노는 물이 다른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 서로 군사를 돌리자.’ 이쯤으로 해석이 된다. 일찍이 진문공과 초성왕이 우호조약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다. 순림보는 진심으로 반갑게 맞았다.

“본관의 뜻도 크게 다르지 않소이다. 이는 진(晉), 초(楚) 양국의 복이 될 것이외다.”

그런데 곁을 지키고 선 선곡의 생각은 달랐다.

“너희가 우리 속국을 빼앗더니 이제 화평을 청하는구나. 물건을 훔치고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심보와 다를 게 무엇이냐? 이 선곡이 있는 한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허허, 그런 것이 아니고!”

“배상금을 내놓고, 우리 임금에게 사죄하면 용서해주겠다. 이도 저도 아니면 네놈들 오랑캐를 한 놈도 빠짐없이 쳐 죽이고 말 것이야. 돌아가서 너희 족장에게 전해라. 목숨을 건지려면 속히 달아나라고 말이다!”

한바탕 욕을 먹고도 채구는 변함이 없었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귀라도 먹은 듯 같은 대답만 늘어놓았다.

“허허…, 과연! 과연! 그런 뜻이 아니고….”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순박한 얼굴이다. 이걸 보고 약이 바짝 오른 젊은 장수 몇이 칼을 뽑아 채구의 콧잔등을 겨누며 을러댔다.

“이놈아! 다시 오는 날이면 이 칼이 가만두지 않겠다!”

이윽고 진영을 벗어나자 채구는 소면룡(笑面龍)답게 혼자 낄낄 웃었다. 그날 해 질 녘에 유격 오삼이 보낸 전령이 왔다. 오삼은 이제 막 황하에 도착하여 적진의 동향을 보고하였다.

“황하에 매어놓은 적선 천여 척에 밑창을 뚫었나이다.”

이미 강을 건넌 진(晉)의 군사 10만을 먹여 살릴 군량미와 말먹이 건초의 운송 길이 막혀버렸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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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 /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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