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문화·예술 / 안재휘 기자 / 2025-11-09 00:16:56
2017년 ‘라요하네의 우산’ 이후 8년 만에 내는 두 번째 작품집
한층 단단해진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관계망에 대한 감각을 조명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다정’과 그 ‘다정’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천천히 탐색
-문학평론가 이경재 “존재의 단독성과 윤리적 실천이 만나는 서사의 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공감과 연대의 생명 길을 아로새겨”
인간 내면의 온기와 윤리, 그리고 뜻밖의 구원을 다시 한번 증명

 

     

인간관계의 미세한 결을 밀도 있게 그려내는 서사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는 소설가 김살로메(58) 작가의 신작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아시아)가 출간됐다2017라요하네의 우산이후 8년 만에, 소설집으로는 두 번째 선보이는 이번 작품집에는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내 모자를 두고 왔다’, ‘뜻밖의 카프카’, ‘안개 기둥’, ‘무거운 사과등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에 오랫동안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한층 단단해진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관계망에 대한 감각을 조명한다.

 

김살로메 작가는 ‘2025년 경북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 사업일환으로 출간된 이번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에서 소설을 허구의 틀로 진실을 발설하는 불온한 매혹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소설 속 모든 인물이 자신의 분신이라며, 이들을 통해 복합적인 내면을 변주하며 삶의 진정성을 묻는다고 말한다. 메시지 대신 아프고 저릿한 질문을 쌓아가던 그는 결국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성찰로 귀결된다고 강조한다.

 

뜻밖의 카프카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관계의 균열과 회복, 타인에게 닿으려는 인간의 무의식적 몸짓을 통해 제대로 살아내기위한 근원적 질문에 사로잡힌다. 작가는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다정과 그 다정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를 천천히 탐색한다.

여덟 편의 단편에는 타인과의 연결을 꿈꾸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상처를 지닌 채 누군가를 보듬고, 때로는 오해와 단절을 겪으며, 다시 서로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개별자의 고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쇠우리에서 벗어나는 작가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출구가 제시된다는 점에서 표제작인 뜻밖의 카프카는 단연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다. 마흔이 코앞인 주인공 로사는 쇠우리와 같은 일상의 소외와 고독에 힘겨워하는 여성이다. 이 작품에서 놀라운(어쩌면 당연한) 것은, 그러한 소외와 고독을 낳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로사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로사와 미희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로서, 젊은 시절 가출한 미희는 로사의 집에서 오랜 시간을 스스럼없이 함께 지내기도 했다.

 

뜻밖의 카프카원룸에 도착해서 로사가 한 일은 미희의 팬티를 치우는 일이었다라는 뜻밖의 문장으로 시작될 만큼, 미희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로사에게 가장 먼저 부탁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 미희야말로 로사에게 치명적인 독과도 같은 존재였음이 밝혀진다. 로사는 미희와 연관되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진실과 마주하고야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사가 택한 길은, 오롯한 결단을 통해 관계에 구걸하지 않는 단독자가 되는 것이다. ‘뜻밖의 카프카의 주인공인 로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결기는, 그녀가 대학 시절 독서 모임에서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읽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로사는 카프카를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고 오롯한 단독자로 살다가 간인물로 이해해 왔던 것이다. 로사는 카프카를 체코 사람이면서도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썼으며, 동시에 독일인도 체코인도 유대인도 아닌 오직 카프카로 살았을 뿐인 진정한 단독자로 규정했던 것이다.

 

결국 로사는 제 안의 카프카를 인정하고 불러내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로사가 이해한 대로라면, ‘단독자로서의 카프카를 불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로사의 결단은 단독성(Singularity)의 철학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 단독성이란 고유한 것으로서,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단독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 위에서만 참된 관계는 시작되고 그로부터 윤리와 정치도 가능해질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경재는 해설 결정된 세계와 그 너머에서 김살로메의 소설은 존재의 단독성과 윤리적 실천이 만나는 서사의 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공감과 연대의 생명길을 아로새긴다라고 평했다.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체계가 아니라, 자신 안의 선한 충동을 따라 움직인다. 타인을 향한 시선이 곧 자기 구원의 가능성이 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은 연민이 아니라 책임의 문학으로 읽힌다. ‘뜻밖의 카프카속 인물들은 일상의 균열 속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작가는 그것을 거창한 구원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의 텀블러를 대신 찾아주는 손길, ‘모자로 상징되는 예술혼 또는 문학 정신을 일깨우는 시선 같은 세밀한 장면들을 통해 인간다움의 온도를 복원한다. 일상의 언어로 써 내려간 그녀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그 여운은 깊고 오래간다.

 

김살로메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온기와 윤리, 그리고 뜻밖의 구원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김살로메 작가는 경북 안동 출신으로 경북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폭설이 당선돼 등단했다영남일보 문학상과 천강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집에는 라요하네의 우산’,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엄마의 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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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 대표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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