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소설 춘추오패] 제21화. 성복대전, 거대한 전쟁의 종말

인문학 / 김백 기자 / 2026-09-16 08:23:12
성복의 들판에 어둠이 내리고, 진문공의 시대가 드디어 시작되다

 

 

진작부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던 채나라 장수 곽인(郭靭)도 마음을 바꾸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코끼리 함정부터 건너야 하니 곱게 군사를 물리기는 글렀다. 그는 일찍이 눈 하나를 잃어 독목룡(獨目龍)이라 불리는 녹림 출신으로 원래 유성추(流星錘, 쇠줄에 추를 매달아 상대에게 던지는 무기)가 전문이었지만, 줄 달린 철퇴가 집단전에 적합하지 않기에 오늘 싸움에서는 방천화극(方川畫戟, 창날이 곁가지처럼 여러 갈래인 창)을 뽑아 들었다.
백병전에 익숙한 그는 기세 좋게 적진을 헤집고 들었다. 처음으로 마주친 적장의 얼굴을 창 자루 끝으로 내려찍었다. 무거운 갑주로 무장한 군사는 머리와 어깨에 하중이 실려 충격을 받으면 쉽게 자세가 무너진다. 찍힌 자는 상체가 뒤집히면서 그대로 굴렀다. 하나! 뒤이어 댓잎 창을 꼬나든 보졸 몇이 앞을 가로막았다. 습관처럼 가로질러 첫째를 도륙하고, 연속 동작으로 삐딱하게 치켜올린다. 동시에 둘과 셋! 주로 노리는 목표는 상대의 갑옷이 들리는 겨드랑이 밑이나 무릎과 발목 부분, 겉으로 드러난 얼굴과 손목 부분이다. 넷! 비켜서 내려치는 칼을 눕혀서 받으면서 그대로 다섯! 순식간에 적 다섯을 해치웠다.


그때 키 작은 졸개 하나가 앞을 막아섰다.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그를 찍었다. 그런데 창날 가지가 갑주의 이음새 얼개에 물려 빠지지 않고 질척거렸다. 집단전은 찌르고 나면 재빨리 창을 빼야 한다. ‘찌를 때 삼 부, 뺄 때는 칠 부’라는 힘의 배분 원칙이다. 순간적으로 창끝이 걸리적거리는 통에 단말마의 손에 창대를 잡혀버렸다. 아차차!, 경험 많은 곽인은 순간적으로 창대를 놓고 윗몸을 제치며 짧은 칼로 적의 손목을 잘랐다. 평소 아끼는 방천화극을 놓쳤지만 그래도 여섯! 반사적으로 말안장에 매어둔 유성추를 끄집어내는 찰나였다. 말의 거친 숨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순간 쫘악 소름이 돋쳐 힐끔 돌아보니 기수가 팔을 위로 뻗친 동작으로 덮쳐오고 있었다. 먼빛으로 본 진(晉)나라 장수 난지이다. 곧바로 눈앞에 개산대부(開山大斧, 자루가 긴 큰도끼) 도끼날이 떨어졌다. ‘헉!’
말 두 마리가 엇갈리는 순간에 곽인은 납죽 엎드렸다. 도끼날이 머리 위를 스치더니 그대로 말의 굵은 목동을 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말 목이 부러지고 발굽이 꺾였다. 균형을 잃은 독목룡은 스스로 말에서 떨어졌다. 다급한 순간에도 소싯적부터 싸움터를 누빈 감각이 있어 몸이 깔리는 사태만은 모면했다. 어느 틈엔가 손을 바꿔 유성추를 거머쥐었다.
“흐흐흐. 아무렴, 혼자 죽을 수야 없지.”
산전수전 다 겪은 데다 망나니 근성까지 갖춘 그의 철퇴는 적의 면상을 향해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난지의 개산대부도 바람을 갈랐다. 유성추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이 난지의 뺨을 베면서 미끄러졌다. 대신 개산대부는 그대로 곽인의 이마를 갈랐다. “흐억!” 단말마의 신음이었다. 인생의 반은 실력이요, 노력이라지만 나머지 반은 행운이다. 그런 데다 싸움터의 운은 그대로 생사로 이어진다. 외눈박이 독목룡 곽인이 평소 녹림의 호걸로 이름을 날렸지만, 졸개 여섯을 베고는 전사하였다. ‘히이잉….’ 기겁을 한 주변의 말들이 그대로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와아’ 졸개들이 분분히 달아났다. 마침내 남군의 좌익이 함몰되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햇살은 높았고 숲 그늘이 깊었다. 눈 부신 햇빛을 드문드문 가려주는 성긴 숲 사이로 나무들은 이미 녹색이 아니었다. 사람의 신체는 피를 가득 담은 가죽 주머니와 같아 쓰러진 뒤에도 꾸역꾸역 피를 토해낸다. 나무도 풀도 핏물로 칠갑을 하고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감돌았다. 간간이 등에 떼가 날아다니는 소음이 땅바닥에서 들리는 것이 대낮인데도 귀기가 넘쳤다. 중상자들의 상처 위로 파리와 벌들이 윙윙거리며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비참한 광경에 아랑곳없이 새들은 날아들고 곤충은 제멋대로였다.
오후의 싸움은 코끼리 함정으로 승기를 잡은 중원군이 먼저 도발하였다. 난지, 서신, 호언같이 이름 있는 장수들이 달려와서 초군을 에워싸고 두들겨댔다. 전장은 오래전부터 전체로서 통솔을 잃었고, 단위 부대의 장수들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대세를 판가름하는 이런 위급한 판국에 남군 장수들은 어느 구석에 쳐박혔는지 하나도 도우러 오지 않았다. 이 전쟁은 예사로운 땅따먹기 싸움이 아니라 천하의 방백을 가리는 위신과 명예의 다툼이다. 그런 만치 어느 쪽이든지 한발 물러나는 즉시 판가름이 난다. 쉽게 물러날 수도 없는 형편이라 성득신은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에워싼 적장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덤벼든다. 이리저리 찔러보고 부딪혀봐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었다. 차츰 이 시점부터 남군의 깃발은 하나둘 쓰러져 자취를 감추었다. 격전은 해가 뉘엿하면서 급격하게 기울었다. 전장이 빠르게 정리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진문공이 급히 사람을 선진에게 보냈다.
“적의 퇴각로를 열어주어라. 쫓지 마라.”
대장군 선진도 명을 내렸다.
“남쪽을 터라! 길을 열어라. 달아나는 적을 쫓지 마라.”
산비탈마다 엄청난 무기와 갑옷이 버려지고 주인 잃은 말들이 전장을 배회하였다. 화살을 등에 꽂고 ‘히힝’거리며 울고 있는 놈, 안장만 얹힌 채 빈 고삐를 질질 끄는 놈들이 서성거린다. 쓰러진 말들은 네 다리로 허공을 긁으며 버둥거렸다. 괴로운 숨결을 헐떡대는 덜 죽은 병졸들도 첩첩이 쌓였다. 어느덧 싸움도, 날도 저물어 갔다. 참전한 군사만도 20만이 가까운 성복대전은 이렇듯 쉴 틈도 없이 종일 싸워 승패를 갈랐다.


진문공은 오늘 하루 전차 바퀴가 만든 고랑 길을 따라 걸었다. 드문드문 핏덩이가 굳어 고랑을 메우고 있었다. 단말마의 신음 가운데 낯이 익은 시위 군졸이나 장수들의 주검도 보였다. 똥을 퍼질러놓고 죽은 병사들도 많았다. 똥에는 피아의 구분이 없었다. 분노와 공포, 증오 속에서 죽은 자들이라 피 냄새는 비렸고, 똥 냄새는 구렸다. 임금은 쓰러진 병사들의 시체와 똥을 피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불어와 죽은 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날렸다. 살이 쪄서 어린애 주먹만 한 메뚜기들이 그 얼굴에 달라붙었다. 메뚜기들은 검은 침을 흘리며 입 벌리고 죽은 시신의 입 속이나 콧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후에는 까마귀, 까치며 독수리 떼가 새까맣게 모여들어, 싱싱한 고기를 파먹었다, 산비탈 쪽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태깔 고운 모시나비 수백만 마리가 모여들어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사람 피의 향연을 즐겼다. 치우지 못하고 땅바닥에 버려진 시신은 중원 쪽 군사만 해도 8천이 넘는다. 물론 초나라 군사의 피해는 그보다 훨씬 컸다.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죽고 상한 남군은 2만이나 되었다. 정신없이 부딪친 난전의 싸움이라 수급은 서로 거두지도 못했다. 진문공이 왼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네가 죽었구나, 너도, 너도!”
아비규환의 광야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살아생전 누군가에겐 적이었지만, 또 다른 누구의 아들, 누구의 남편과 아비로서 그럴 수 없이 소중했던 신체에 늑대며, 까마귀, 너구리, 하다못해 들쥐며 도마뱀까지 재재거리며 몰려와 떠들썩한 잔치를 벌였다. 때는 서력으로 BC 632년, 그해 여름도 저물고 있었다.

 

▲AI 생성 이미지


최초로 황하의 세력과 장강의 나라들이 맞붙은 성복의 전쟁에서 승리한 진문공은 제(齊), 진(秦), 송(宋) 등 우방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주고 각별하게 전송하였다. 바야흐로 세월은 진문공의 시대였다. 죽은 시체에서 귀를 잘라 천신과 토지신에게 바치고 장졸들을 전공에 따라서 포상했다. 적의 시체를 모아서 불태우고 거대한 무덤을 만드는 일을 경관(京觀, 전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쌓은 무덤)이라 하는데, 이런 과시적 풍습은 고대로부터 있었다. 진문공은 이런 잔인한 행동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전장이 대강 정리되자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내일 해가 뜨면 회군한다. 방향을 정(鄭)나라 쪽으로 돌려라.”
심복 조쇠가 임금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정(鄭)이라 하셨습니까? 돌아가는 길이라 멀기도 하거니와 험하기까지 합니다. 군사의 이동을 신속하게 합니까? 아니면 평소대로 움직입니까?”
“평소대로, 아니, 좀 더 느긋하게, 우리 군대의 진군을 떠들썩하게 하라. 정(鄭)이 어쩌는지 좀 봐야겠다.”
다들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지나간 시절 정나라는 공자 중이에게 모욕을 주었다. 과연 소문대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은혜는 은혜로 갚고,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위주가 내용을 아는 체 덧붙인다.
“신정성은 유랑 시절에 성문을 닫아걸고 우리를 들이지도 않은 과거가 있습니다. 이번에 남군으로 참전하여 혼쭐이 났으나 옛 빚을 받은 건 아닙니다. 소신에게 맡기십시오.”
“못난 사람!. 과인이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이러는 줄 아는가? 왕실을 받들고 천하 백성의 안위를 위함일세. 아예 유랑 시절이니, 옛 빚이니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놓지 마시게.”
진문공은 눈을 가늘게 뜨고 껄껄 웃었다. 편리하다면 이처럼 편리한 논리도 없으리라. 존왕양이의 명분을 내세워 본인의 원한부터 풀려고 하면서도 행동과 양심 사이에 괴리는 없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자부심으로 시대의 논리를 각색하고 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위선이나 거짓도 없었다. 중신들은 새삼 군주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달처럼 무표정했다. 조쇠와 호언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신하라기보다 진문공에게 매료된 신봉자들이다. 누군가의 꿈에 함께할 때 그 꿈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이후 진군(晉軍)은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대면서 떠들썩하게 움직였다. 정나라는 진의 대군이 다가온다는 소식에 놀랐다. 신정성에는 난리가 났다는 흉흉한 소문이 곰팡이처럼 번져 골목마다 피난하는 수레가 넘쳐났다. 정문공은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중이란 자가 저리도 끈질기구나. 어쩌면 좋겠는가?”
“한시바삐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옵소서.”
“그게 될 말인가? 초는 성복에서 패하여 도망치지 않았던가?”
“초가 패한 게 아니라 성득신이 패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요청하면 오히려 원수 갚을 생각으로 바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대부 곽회(郭淮)가 말을 끊고 나섰다.
“안 될 말! 안 될 말입니다. 주군! 어쭙잖은 잔꾀를 부리기보다 사직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달리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우리가 초를 섬기는 것도 다 사직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초를 섬기든, 진을 섬기든 다를 게 없습니다. 차라리 지난날 홀대했던 일을 사죄하고 조공을 맹세하는 것만 못합니다.”
몇 해 전, 애지중지 키우던 두 딸을 초성왕의 노리개로 내어준 정문공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초왕이 오기 전에 조율차 방문한 사자가 말했다. 사직을 유지하려면 정문공이 아끼는 두 딸을 인질로 내놓아야 한다고! 그 두 딸은 지금 초나라 쌍미전에 있는데, 진(晉)은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약소국의 애환이다. 곽회가 다시 재촉한다.
“주군! 부디 신의 충언을 흘려듣지 마십시오.”
결국 항복의 사자를 보냈다. 진문공은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정나라 땅인 천토(踐土) 땅에서 천자를 모시고 회맹을 개최하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말이 좋아 돕는 것이지 천자와 제후들이 머물 별궁과 제반 시설을 도맡아 준비하고 물품을 조달하는 집사 역할이다. 그래도 정문공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쩔 수 없다. 중이의 말대로 하자. 과인의 어깨 위에는 우리 백성의 생사가 걸려 있다. 이로써 과인은 결정했다. 과인이 굴욕과 수고를 감당하겠노라.”
오늘따라 새삼스레 사설이 긴 것은 생각할수록 쓰라린 본인의 마음부터 달래고 싶은 심정이다. 천토 땅에는 부랴부랴 임시 별궁이 지어졌다. 이 시절부터 회맹의 체제는 국제적인 착취로 변질하고 있었다. 진문공은 소탈한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타산적 계산과 집요함이 있다.

 

한 완 (韓 莞) 작가

 

저자 한완은 계명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1974-1982 영천시 교육청에서, 1985-2014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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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 / 편집국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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