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집단적 태만’-기후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순
“과거에는 생존의 도구였던 본성이 현대에는 위기의 근원이 됐다”
-문제의 해법으로 ‘제도 설계를 통한 본성 활용’을 제안=>생태계에 부담을 덜 주는 방향으로 소비문화가 전환될 수 있다

‘우리는 왜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한 시대에 살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할까?’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교수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신간 ‘인간 본성의 역습’(위즈덤하우스)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과학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음모론에 휘둘리며 사회적 갈등은 깊어만 간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지 않고 불필요한 소비를 계속한다. 그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인류 본성과 현대 사회의 괴리’에서 찾으며,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세 가지 인간 본성-순응주의, 종교성, 부족주의-을 해부한다.
저자는 이 모든 위기의 뿌리를 ‘오늘날 세계가 망가진 이유는 인류 본성과 현대 문명 간의 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대 문명이 순응주의(집단을 따라가는 성향), 종교성(초월적 존재를 믿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 부족주의(집단에 충성하는 성향)라는 세 가지 본성에 기대어 성장했다고 분석한다.
집단 학습과 모방은 수렵채집 시대 생존의 열쇠였지만, 오늘날에는 ‘모두가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집단적 태만’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를 인지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현대인의 모순이 대표적이다. 초월적 존재를 향한 믿음은 농경사회에서 제도화된 종교로 진화했으나, 이제는 민족·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와 결합해 내부 결속과 외부 배척을 동시에 강화한다. 소집단 간 충돌과 정복 전쟁은 고대 문명의 확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주의로 나타나 사회 분열을 심화시킨다.
“과거에는 생존의 도구였던 본성이 현대에는 위기의 근원이 됐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 본성들은 선사시대 소집단 활동을 했던 인류에겐 생존을 이끈 핵심 동력이었지만, 거대한 문명인 오늘날엔 분열과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게 저자의 진단이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간 순으로 전개된다.
1부에서는 세 가지 인간 본성을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2부에서는 각 본성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확장시켰는지 알아보고, 3부에서는 본성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변천됐는지 설명한다. 특히 3장(사회적 접착제)과 6장(부족과 전쟁)에서는 부족주의의 기원과 문명 팽창 과정이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선사시대 작은 집단에서 시작된 ‘우리 vs 적’의 본능은 문명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현대에는 민족, 국가, 정당으로 재편되며 분열을 촉발한다.
저자는 문제의 해법으로 제도 설계를 통한 본성 활용을 제안한다. 예컨대 ‘마이어스(MyEarth)’ 앱은 사용자의 탄소 발자국을 추적해 집단 규범에 민감한 순응주의적 본성을 자극함으로써 환경 보호 행동을 유도한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평생 보증이 제공되는 고품질 제품과 소비 수명이 짧은 저가 제품의 장기적 이점을 비교해주는 앱을 활용하면, 소비자는 보다 지속가능한 상품을 선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태계에 부담을 덜 주는 방향으로 소비문화가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제도 설계를 통해 본성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낸다.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미 갖고 있는 본성을 활용해 ‘더 협력적인 미래’로 이끄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가진 본성을 협력적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하비 화이트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인류 역사 데이터뱅크’ ‘세샤트(Seshat)’의 공동 설립자로, 전 세계 방대한 역사 자료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인류학자다. 40년에 걸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첫 대중서가 바로 이 책 ‘인간 본성의 역습’이다. 이 책은 화이트하우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정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성공과 실패를 통찰력 있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찬사와 “수십 년간 쌓아온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야심 찬 역작”이라는 ‘가디언’의 평은 이 책이 가진 학문적 깊이와 대중적 설득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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