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라진다고 국민의힘이 이기리라 믿는 건 어림없는 망상
윤-한 지지층 갈등, 결과가 뻔한 자살폭탄-안 멈추면 참상 빚을 것
윤석열-한동훈, 하루빨리 손잡고 “싸우지 말자” 선언해야
2005년에 발표된 ‘웰컴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는 논란이 많았다. 특히 미군 폭격기가 마을을 폭격하는 장면을 놓고 ‘반미(反美) 영상물’이라는 비난이 적지 않았다. 어쨌든 인상적인 장면들이 좀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강한 지도력의 비결을 묻는 불청객 군인의 질문에 촌장 노인이 “어쨌든지 뭐를 자꾸 멕여야지 뭐”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굳이 공맹(孔孟)의 말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섬기는 자를 먹고살게 해주는 일은 정치 지도력 확보에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아버지(?) 이재명 대표에게 내려진 공직선거법 재판 1심 실형(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선고를 놓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의 희희낙락이 지나쳤다. 마치 머지않아 이재명은 수갑을 차고 감방에 들어앉게 되고, 온 국민이 정부·여당을 향해 환호할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있는 듯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그런 기대는 그야말로 추호의 개연성도 없는 정신 나간 망상이다. 열흘 뒤 내려진 위증교사 재판 ‘무죄’ 판결이 이를 증명한다.
이재명의 위기는 곧 더불어민주당의 위기인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야당이 죽을 쑨다고 무조건 여당에 박수를 몰아주는 어릿광대가 아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데는 중대한 요인이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왜 이렇게 늘어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관찰이 없다. 이재명이 형편없는 잡범인 줄 뻔히 알면서도 민주당이 일극체제(一極體制)를 구축할 수 있게 된 비결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는다.
국민의힘, 민주당 지지 늘어나는 이유조차 제대로 분석 안 해
특히 ‘개딸’이라는 이름의 극렬 지지자들이 왜 한결같이 이재명을 숭배하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재명을 아버지라고 여기며 따르는 좌파 지식인들, 문화예술인들은 왜 또 그런 것인가 분석하지도 않는다. 도무지 총선에서 그렇게까지 참패를 당하고도 왜 그런 결과가 빚어지는지 핵심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당당히 권력을 움켜쥔 그들을 그저 ‘정신병자’ 취급이나 하면서 왜 그러는지는 한 번도 제대로 궁리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먹고 살게 만들어 주는 일’에 천착해 왔다. 맞춤형 특별 혜택을 끊임없이 창출했다. 지지층 사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사탕일랑 모조리 챙겨주고, 전국에 수만 개 협동조합을 만들도록 하여 나랏돈을 흔전만전 빼먹도록 한다. 좌파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만들어 눈 딱 감고 마구 퍼준다. 결코 어설픈 블랙리스트 같은 것을 만들었다가 들켜서 망신당하는 멍텅구리 짓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광주 5.18, 제주 4.3 같은 비극적 역사와 연루된 사람들(더러는 아무 관련도 없는 지지 세력을 명단에 포함하여)에게 나랏돈을 마구 퍼주는 일은 또 어떤가. 특별법에 재미가 붙은 좌파 시민단체들은 과거·현재를 따지지도 않고 오만 사건들을 다 끄집어 들고 빨간 머리띠 동여매고 나서서 꽹과리를 친다. 그렇게 민주당 지지층을 확대 재생산해온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다. 그래서 생겨난 암묵적, 노골적 지지 세력은 견고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 지지층 확대 재생산해온 세월 벌써 수십 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 수행취재단 일원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서 평양을 갔을 적에 비로소 알게 된 놀라운 깨달음이 있다. 거기 평양사람들이 광분에 가까울 정도로 열정을 다해 당시 김정일 수령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이 전혀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이 평양사람들에게 김씨 일가가 ‘먹고살게 해주는’ 거룩한 은인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듯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진리는 만고불변이다.
자신들을 ‘먹고살게 해주는’ 지도자나 정당에 대한 충성은 실로 난공불락이다. 잘나가는 기업의 직장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짜고 살아가는 스크럼만 해도 얼마나 완강한가. ‘개딸’들의 충성심이 과연 그들이 내세우는 대로 오직 ‘신념’의 산물일까. 말도 안 되는 잡범이라는 세평을 받고 있는 이재명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건강한 진보 이념으로 무장한 사상가들일까. 단언하거니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좌파 정권 동안 민주당이 그렇게 세력을 무섭게 확대재생산하는 동안 소위 우파 진영은 어떻게 해왔나. 권력 쟁탈전으로 지고 새면서 선거 때만 여기저기 손 벌리며 겸손한 척하다가, 일단 당선되면 오직 저 잘나서 잘된 줄로만 뻐기면서 돌아앉아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살 궁리만 한 게 사실 아닌가. 지지자들에게는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공명심’만 강요하고, 동기부여에는 소홀하기 짝이 없어 온 게 진실이다.
우파 진영, 지지자에 ‘공명심’만 강요하고, 동기부여에는 소홀
오해는 하지 마시라. 우파 애국 세력도 저 썩어 빠진 좌파 세력들을 흉내 내어 온갖 협잡질로 나랏돈 빼먹을 궁리나 해야 한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다. 최소한 저들이 어떤 편법과 선동술로 세력을 확장해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응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고언(苦言)인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엄혹함에도 불구하고 작금 정부·여당의 행태는 어떠한가. 작금 벌어지고 있는 윤-한 갈등은 도대체 뭘 어쩌자는 분탕질인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갈등, 정확하게 말해서 두 지도자의 맹목적 지지자들이 벌이는 흙밭 싸움은 결코 승자가 남을 수 없는 자해극이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그야말로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오는 ‘아욕착해병상오단(我欲捉蟹並喪吾單·게도 구럭도 다 잃는)’ 참상밖에 남을 게 없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하루빨리 손잡고 나서서 대장부답게 “싸우지 말자”고 선언해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는 게 이런 개싸움이다.
이재명 하나 거꾸러진다고 망할 민주당이 아니다. 어쩌면 이재명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명철한 지도자가 나와 지지를 폭발시킬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가뜩이나, ‘지지만 하면 먹고살게 해주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켜켜이 쌓아온 민주당 아닌가. 철옹성 같은 저 지지층은 결코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적어도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분골쇄신의 의지로 당을 바꿔나가야 한다. ‘윤-한 갈등’ 같은 적전분열은 자살폭탄에 불과하다.
‘윤-한 갈등’은 자살폭탄…이렇게 가면 국민의힘은 영원히 질 것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촌장 노인이 말한 “어쨌든지 뭐를 자꾸 멕여야지 뭐”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절대다수 야당이 차고앉아 국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정부를 마비시키는 나라에서 정부·여당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해 내놓고 실행해야 한다. 그래도 될까 말까 한 절박한 상황에 대통령과 당 대표 지지층들이 패싸움을 벌이다니,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이렇게 하면 국민의힘은 또 진다. 아니 영원히 진다.
안재휘(安在輝)
-언론인/칼럼니스트/소설가
-제34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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